괴담 : 열 줄 소설 -33-

벽 위의 무늬

by 이사금

33. 벽 위의 무늬

내가 학업이니 뭐니 하면서 다른 지방에 가 있었기에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우리 마을에서 큰 화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때 화재가 난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그 일로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에 돌아오고 나서도 딱히 신경을 쓰진 않았는데 오늘 그 화재가 났던 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실은 의도적으로 오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산책을 하던 중 눈에 띌 정도로 엉망이 된 폐가가 보였던 것뿐이고 그제야 거기가 바로 소문의 화재가 난 터였다는 걸을 알아챈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좀 놀란 것은 불에 타 다 쓰러진 폐가에 그나마 온전히 남아있는 벽과 뭔가 새긴 듯한 무늬라고 해야 할까?


그을음이 많이 남아 뭐가 뭔지도 잘 알아보기도 힘든 그 벽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있던 사람의 손자국은 마치 당시 화재 현장의 참상을 증명하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한동안 벽을 자세하게 살펴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을린 벽면에는 분명 사람이 새긴 ‘살려줘’라는 글자가 마치 무늬처럼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불이 났을 당시 참사 현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이 새긴 글이었을까 아니면 화재가 나기 전 어떤 일을 겪은 누군가가 새겨놓은 것이었을까?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나는 상상하기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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