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18-

인형괴담 (2)

by 이사금

#018. 인형괴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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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까륵 까르륵-!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교정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직 쌀쌀하지만 맑은 봄날이었다. 여린 햇살이 아이들의 머리 위로 잔잔히 부서지고 있었다.


“김 선생님 수업 다 끝났나요?”

“네, 박 선생님 우리 같이 가요.”


아이들의 수업이 끝난 후 두 명의 교사가 말을 나누는 장면이 돌아가는 아이들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 안녕.”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이 귀엽게 교사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그래 너희도 잘 가렴. 내일 보자.”


교사들은 웃으며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종종 말을 안 듣고 떼를 쓰는 나이대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자신들의 담임을 잘 따랐다.


아이답게 눈치는 없으면서도 교사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했고, 예의범절은 덜된 것 같으면서도 인사는 꼬박꼬박했다.


아이들의 모습이 남은 하나까지 사라지자 교사들은 이번 환경 미화 건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김 선생님 교실에 인형이 바글바글하네요.”

“네, 하하하…. 애들이 인형 같은 걸로도 교실을 꾸밀 수 있다 하니까 죄다 인형만 가지고 온 거 있죠?”

“요새 애들치곤 귀엽다니까요. 생각보다 말도 잘 듣고.”

“그러게요, 저도 이번 환경 미화 때문에 걱정했다가 한숨 덜었어요.”


김 선생의 시선이 교실 안쪽으로 향했다. 그의 눈에 각양각색의 인형들이 교실 안에 늘어진 것이 보였다. 긴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 같은 인형도 있고, 토끼나 곰돌이, 돼지의 모습을 따라 한 인형도 있었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릴 적에 좋아했던 캐릭터의 모습을 따 온 인형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인형들은 죄다 아이들의 애정과 숨결을 스며든 것들이었다. 지금의 낡은 모습도 한때는 아이들에게 사랑받았다는 흔적을 의미하는 거였다.


그런데 묘하게 그중에 이질적인 인형이 하나 섞여 있었다.


새까맣고 빳빳한 털이 부숭부숭 나와 있는 저것은 도깨비의 모습을 형상화한 걸까? 아니면 꼬마 악마를 따라 하기라도 한 걸까?


다른 낡은 인형에 비하면 부숭부숭하고 깨끗한 새 인형이었지만 그 외양은 다른 인형들에 비하면 퍽 사랑스럽다고는 할 수 없었다. 커다란 귀에 커다란 빨간 눈은 마치 어둠 속에 숨어있는 부엉이 같은 느낌을 주었다.


쭉 찢어진 입은 마치 예전 아이들을 놀라게 했던 괴담 속의 빨간 마스크를 연상케 했다. 인형이라 몸매는 둥그렇지만 어설프게 달려 있는 그 팔과 다리는 비쩍 마른 나뭇가지 같아서 볼품이 없었다.


심지어 그 팔과 다리 아래 달려있는 손과 발은 갈퀴처럼 날카로웠다. 도대체 누가 인형의 디자인을 저따위로 했을까?


김 선생은 자기 반의 시우가 그 인형을 가지고 자랑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선생님! 이 인형 공원에 있는 할아버지한테서 산 거예요!”


시우의 말에 따르면 교실 미화를 위해 인형을 가지고 와도 좋다는 얘기를 들은 뒤, 근처 공원에 있는 노점에서 어머니를 졸라 사 온 인형이라는 거였다.


즉, 저 인형은 시우가 애지중지하던 애착 인형 같은 건 아니었다.


여기 마을 근처에 공원에 노점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저 인형의 기이하고 특이한 모습이 아이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원래 그 나이대 아이들이 특이한 걸 좋아할 테니까.


어쩌면 어른들하고 미적인 관점이 다를 수 있다고 김 선생은 나름 추론하면서 교실의 문을 닫았다. 그 인형은 사랑스러운 인형들 속에서 혼자만 따로 섞이지 못하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긴 해도 어떻게 하랴? 아이가 좋아하면서 가지고 온 것을.


교실의 문이 잠기고 자박자박 교사들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소리가 울렸다. 이제 곧 교사들도 사라지고 학교 안에는 적막만이 남았다.


그리고 이내 적막을 깨뜨리는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잠긴 교실 안에서 조금씩 소리를 키우며 울려 퍼졌다.

만약 그 교실을 보는 자가 남아 있었더라면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보고 까무러쳤을지도 모른다.


지금 아무도 손을 대는 자가 없는데도 인형이 움직이고 있었다.


김 선생이 보면서 기분 나빠한 그 까맣고 못생긴 도깨비 인형이 혼자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그 인형은 마치 웃는 것처럼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날카로운 두 손을 앞에 있는 곰돌이의 머리 위에 얹었다. 부르르 도깨비 인형의 몸이 떨리더니 자기보다 배로 큰 곰돌이의 머리와 몸통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쫘악- 뭔가가 사정없이 찢어지는 소리가 교실 안에 울려 퍼졌다.


가엾게도 곰돌이는 머리와 몸이 분리된 형태로 뜯겨 처참하게 교실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이윽고 또다시 쫘악 쫙- 찌이익 천이 찢기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까만 도깨비의 소행이다. 이번엔 옆에 있는 캐릭터 인형을 잡고 몸을 양쪽으로 잡아당겼다. 이번에 잡힌 인형은 팔이 뜯기고 다리가 터져나갔다.


그렇게 도깨비 인형은 살아있는 것처럼 낄낄거리며 주변 인형들을 헤집고 자기보다 큰 인형들의 머리를 무시무시한 힘으로 잡아 올렸다.


짜악 찌이익-!


다른 인형들이 까만 도깨비에게 잡힐 때마다 터지고 찢어지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인형 속의 솜이 너풀거리며 바닥 아래로 떨어지고 찢긴 천이 나풀거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교실에서 도깨비의 인형 살육은 멈추지 않았다.


키득키득 낄낄낄-!


만족스럽다 못해 통쾌하다 싶은 도깨비의 웃음소리가 교실 안에 나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일찍 학교로 나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이 무슨 끔찍한 일일까?


교실에는 아이들이 사랑하던 존재들이 원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악과 공포에 질렸다. 그중에는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때 자신이 애정을 준 존재가 지금은 무참하게 찢겨나가 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들보다 늦게 교실에 들어온 김 선생은 교실이 난장판이 된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지난밤에 강도라도 들었나?!


그러나 대체 어떤 미친놈이 학교에 강도 짓을 하러 숨어들고 또 인형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간단 말인가.


이 황당한 사태에 당황한 김 선생은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사방에 살해당한 시신처럼 늘어진 인형들의 조각을 쓸어 모았다. 환경 미화는 둘째치고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김 선생은 난감해했다.


조금 더 조숙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인형들의 사체 조각을 정리하던 김 선생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갈가리 찢긴 인형들의 조각을 맞추면 얼추 아이들이 가지고 온 인형의 숫자와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울고 있는 아이들 중에는 시우도 있었다. 아마 자기가 가지고 온 인형이 보이지 않는 게 다른 인형들과 마찬가지인 꼴을 당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른의 입장인 김 선생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인형의 파편 중에 시우의 인형은 없었다.


그 기분 나쁜 까만 도깨비 녀석은 어디론가 도망을 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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