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19-

인형괴담 (3)

by 이사금

#019. 인형괴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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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이가 근처 공원 주변에 있는 노점에서 인형을 산 것은 순전히 변덕스러운 심보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인 아이가 어린애처럼 인형을 좋아할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파는 인형 중 하나에 아이의 눈길이 갔다.


그때 아이의 눈에 들어온 건 미미 인형을 따라 한 느낌이 나는 어설픈 여자 인형이었다. 커다란 눈과 주홍빛 입술이 나름 어여쁜 태를 내려는 것 같지만 얼굴이나 몸의 균형이 전체적으로 안 맞는다든가 드레스의 모양이 어딘가 어설프다든가 하는 어색한 티를 냈다.


마치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소녀 인형들의 짝퉁 같았고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아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 인형을 골라 자기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노인에게 건넸다. 다른 친구들이 보면 그게 뭐냐며 웃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가 그 인형을 산 건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최근에 아이는 성적이 떨어졌고 부모에게 혼나는 일이 많아졌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언니와 사사건건 자신을 비교하는 부모님의 잔소리에 짜증이 치밀었고, 그 짜증 때문에 최근에는 친구들과 다투는 일도 늘어났다. 집에서 언니와 비교당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최근엔 단짝이라고 생각한 가장 친한 아이가 자신보다 다른 아이와 더 친하게 지내려 하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에 아이는 화가 치밀었지만 소심한 성격 상 함부로 드러내지 못했고 그 결과 아이의 속은 조금씩 곪아가기 시작했다.


제웅이라는 저주 인형이 있다고 아이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이가 실제로 사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다.


하지만 함부로 집으로 주문했다가 어머니의 눈에 띄어 한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는 제웅을 대신할 것을 골랐다.


어머니는 딸이 인형을 사서 들어오자 다 커서 아기 흉내를 내냐며 잔소리를 하려다가 말았다. 딸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다지 비싼 인형도 아니었고, 길가에서 인형을 파는 할아버지한테서 사 왔다는 걸 보니 아이가 동정심에 그랬나 싶었다.


여차하면 유치원에 들어간 조카에게 줘도 상관없으니까 굳이 이런 것으로 일일이 스트레스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속내는 달랐다.


아이는 과제를 하다가도, 또는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도 갑자기 화가 치밀고는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인형을 꺼내어 커터칼로 그 얼굴에 스크래치를 냈다.


생각보다 인형의 얼굴은 단단한 재질이라 쉽게 잘려나가지 않았다. 차라리 잘되었다 싶어 아이는 더 거칠게 커터칼로 인형의 몸을 긋기 시작했다.


가끔은 칼이 아니라 펜으로 인형의 몸 여기저기 낙서를 했다. 싫은 인간들이 이 꼴이나 되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는 인형을 그런 식으로 농락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이는 자기 손바닥을 커터칼로 크게 베는 실수를 했다. 깜짝 놀란 아이는 인형을 구석에 집어 던지고 난리를 치며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가족들은 손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아이를 보고 기겁하여 당장 응급실로 데려갔다.


아이는 인형에 대해 일언반구는 하지 않고 칼로 종이를 자르려다 이렇게 된 거라고 둘러댔다. 빨리 병원으로 옮긴 덕에 응급조치는 했고 상처는 제대로 아물었지만 그래도 아이의 손엔 흉터가 진하게 남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이는 인형에게 제대로 싫증이 나 버렸다.


그래서 필요 없어진 인형을 어떻게 처분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집안 쓰레기통에 버린다면 분명 인형에게 한 소행을 어머니에게 들킬 것 같아서 변명거리도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인형을 학교까지 가지고 나왔다가 학교 사물함 빈 곳에 생각 없이 그것을 처박아버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아이는 한 학년 위로 올라갔고 인형 따위는 영영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야아- 이게 뭐야?”


사물함을 정리하던 다른 아이들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인형을 발견했다. 그 인형의 볼품없는 꼬락서니에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뭐긴 뭐야, 인형이잖아.”

“이게 왜 여기 있지?”


인형을 가장 먼저 발견한 아이가 인형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머리카락은 그나마 온전했지만, 얼굴은 얼룩덜룩했고 여기저기 칼자국 비슷한 게 나 있었다. 낡아빠진 드레스에는 핏자국처럼 붉은 얼룩도 묻어 있었다.

아마 그런 흠이 없었더라면 인형은 낡아도 꽤 괜찮은 생김새를 유지했을 것 같았다.


“누가 버리고 간 거 아니야? 대체 어디서 났대?”

“저기 빈 사물함에 있던데.”

“놔둬, 주인이 알아서 가져가겠지.”


인형을 든 아이 주변으로 몰려온 다른 학생들이 각각 한마디씩 했다. 누가 잃어버린 거네, 버리고 간 거네 제각기 떠들다가 인형의 꼬질꼬질한 모습을 비웃는 건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예뻤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추하게 된 건 언제나 조롱거리였다.


“누가 버리고 간 게 맞아, 이런 꼬질꼬질한 인형을 누가 가지고 가?”


얼마 안 가, 그 인형은 주인이 버리고 간 인형이라는 데 아이들의 의견이 좁아졌다.


“그니까 이건 버리고 간 인형이란 말이지?!”


아이들 중 유달리 긴 머리칼을 가진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까 사물함에서 인형을 발견한 학생이다.


“너 어쩌려고?”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실실 웃으며 자기 사물함에 있던 작은 가위를 꺼냈다.


싹둑싹둑-


아이의 가위질에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있던 인형의 금색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부스스한 실밥처럼 인형의 머리카락은 허무하게 바닥에 흩어지고 말았다.


“야아- 너 진짜 너무한다!!”

“안 그래도 꼬질꼬질했는데 더 꼬질꼬질해졌어!!”

“인형 불쌍해~!”


말과는 다르게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머리카락이 다 잘려 나가고 너덜너덜한 인형의 상태를 보며 까르르 웃다가 이제 종이 울린다며 인형을 근처에 내팽개친 후, 뭐라고 떠들며 교실로 돌아가 버렸다.


그 뒤로 인형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누군가 가지고 갔는지 아니며 대신 쓰레기장에 버려 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몇 시간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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