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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을 통한 소통만능주의는 경계되어야 한다.

대화와 소통에서 상호간의 원칙과 상호간의 존중이 우선

기업, 조직, 공인이 온라인·SNS를 사용해서 반드시 소통해야 한다는 일종의 '소통 만능주의'는 '無소통주의' 만큼이나 위험하다. 일부에선 세상의 모든 갈등이 오직 소통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럴 수 없다. 비정상적인 상황과 비상식, 비이성적인 이해관계자들과도 반드시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는 것도 어렵고 복잡다난한 대부분의 이슈는 대화로 풀 수 있는 상황이 있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상황도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화, 소통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다자간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다자간 커뮤니케이션은 화자(話者)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성패가 좌우되고 온라인에서 진행되는 다자간 커뮤니케이션은 청자(聽者)의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오프라인은 온라인에 비해 청자의 수가 상대적으로 작고 명확한 그룹화(타겟팅)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프라인은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되는 정확한 시점이 대부분 '1:1 형태' (말하기와 듣기의 분절)지만 모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1:多, 多:多 형태' (쓰기와 읽기의 동시성)이다. 오프라인의 '말하기' 개념인 온라인의 '쓰다'라는 개념과 오프라인에서 '듣기'의 개념인 온라인의 '읽다, 보다'라는 개념을 서로 비교해 보면 온라인은 동시다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화자 주도의 커뮤니케이션이 애초에 불가능한 장소다.


만약, 화자 주도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 지려면 일련의 룰과 통제장치들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것들은 온라인 공간의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열린 대화, 소통의 정의와는 상충된다. 기업, 조직, 공인에게 불리한(?) 이런 공간에서의 소통 만능주의는 오히려 갈등과 오해를 유발시키는 독이 될 때가 있다.


대화와 소통은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충분히 듣는 것이 대부분이고 최선인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기업, 조직, 공인의 온라인·SNS의 소통에서 더 중요한 것도 '말하기'보다 '듣기'다. 그것만 제대로 해내도 훌륭하다.


모든 정치·사회 현상을 아름답게 풀어 내려고 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집착하다보면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서로의 경계와 위치를 알려주는게 필요한 순간임에도 모든 것을 설득이나 논리를 기반으로 한 대화나 소통만 중시한다면 결국 계속 원점이다.


기업과 조직, 공인을 위해 철지난 권위를 이야기 하고 대화와 소통과 대화의 가치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화와 소통에서 상호간의 '원칙'과 상호간의 '존중'이 우선이란 이야기다. 그것이 무너진 사회와 그것이 없는 채널, 툴(tool)에서 모두가 원하는 소통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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