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위기관리 비하인드 코멘터리]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대부분의 위기관리는 돈 없이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사장님, 해당 고객이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 배보상까지 300만 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김 상무님, 저는 테러범 같은 고객과 협상할 용의가 없습니다"


이물질이 나온 제품을 구입했다가 피해를 입었다며 해당 기업에게 손해배상을 금액으로 요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해당 고객은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이 유력 언론사 간부임을 강조하며 해당 금액에 원만한 협의가 되지 않으면 언론사에 제보하겠다는 언질을 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고객의 요구를 담당 임원이 CEO에게 보고했고 해당 CEO는 고객이 요구한 협의를 단호하게 거부했었습니다. 위기관리 현장에선 언론과의 관계, 언론 제보를 하나의 무기로 삼는 경우들이 허다하고 언론 폭로만을 강조하며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는 패턴은 블랙컨슈머의 전형적 모습으로 규정화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에도 단순히 블랙컨슈머라 판단했었습니다.


이후 이 이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해당 이슈는 민감한 이물질 사진과 함께 메이저 언론사를 통해 보도가 되었고 해당 기업은 관리 부실과 대응 미흡에 대한 언론과 고객, 대중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금액으로 환산해 본다면 해당 고객이 최초 요청한 배보상 금액보다 갑절 아니 수십 배 이상의 유무형 손해가 발생했다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슈 이후 저에게는 위기관리 과정에서 하나의 트라우마와 같은 고민에 생겼습니다. 정말 어떻게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기업과 고객에게 옳은 것일까? 그리고 합리적인 것일까?

 

최근 넷플릭스 화제작 '더 글로리' 2화에선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합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제라니까?"


나이스한 x, 아니 재수 없죠. 맞습니다. 재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반감도 생기실 겁니다. 특정 상류층의 물질만능주의, 천민자본주의적 의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오해 없이 들어주셔야 되는데요. 때론, 정말로 위기관리 현장에선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이슈가 가장 쉬운 이슈일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실제 사안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다 싶은 위기 이슈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이런 경우 이면에선 돈이 위기 해결의 주요한 영향력을 발휘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이슈인 경우에도 이면에는 돈이 위기 해결의 발목을 잡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위기관리 이면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할까요?


실제 위기관리 현장에서 이해관계자들과 엉킨 실타래를 풀 때 가장 어려운 케이스는 이해관계자가 기업에게 돈이 아닌 강력한 '명분'만을 요구할 때입니다. 돈을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심플할 때가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면 "너희 회장이 나에게 와서 무릎을 꿇어라" 혹은 "사장이 사표를 써라",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회장이 써서 달라" 등의 요구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잘못했는데 이게 뭐가 어렵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기업의 생리와 기업 문화 그리고 한국적 조직 문화를 아신다면 결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사항이 아님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좀 조심스럽지만 '모든 위기는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위기관리는 돈 없이 해결할 수 없다'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같은 이야기일까요? 


위기관리에 기업이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순간 위기는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대표적으로 안전 관리 분야를 들 수 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른바 중대재해법 때문에 기업이 부담을 느끼며 안전 관리 분야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사후 법적 위기관리에 더 많은 준비를 하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현장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안전 시스템 및 구성원 안전 의식 강화 두 가지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전자에는 돈이 들어가고 후자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으니 구성원들의 교육에만 열중하는 모습이죠. 반복되는 안전사고 이면에는 이런 구조적 원인들이 존재하고 알고 있지만 작은 돈으로 위기관리를 하려하다 보니 사고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안전 관리 분야만이 아닙니다. 모든 위기 관리가 큰 비용이 들지 않는 구성원 교육이나 구성원 정신 개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큽니다.


돈 없이 위기관리를 할 수 없지만 당사자와 이해관계자 간 명분 싸움이 첨예한 위기관리 케이스의 경우에는 오히려 상대가 돈을 바라거나 요구하는 것처럼 프레임을 변경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갈등의 겉표면에는 명분이 감싸고 있지만 대부분 갈등의 해결은 돈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은 분명한데 돈이 가장 앞에 나오는 순간 대중들의 판단력은 흐려지고 돈만 좇는 이율배반적인 이미지로 낙인을 찍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보시면 이런 경향의 위기관리 전략이 작동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처음 말씀드린 실제 사례로 돌아가 보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가 제품 이물질로 고객의 클레임을 받았던 기업이라면 해당 고객을 블랙컨슈머라 치부하며 고객이 요구한 배보상 금액을 거부하고 대응해야 할까요? 아니면 고객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위기 이슈를 종결시켜야 할까요? 이 고민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카데믹한 이상적 위기관리가 아니라 현실적 위기관리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 위기관리 비하인드 코멘터리는 위기관리 컨설턴트로서 실제 위기관리 현장의 스토리와 인사이트를 전달해 드리고 있습니다. 단, 위기관리 특성상 민감한 사실관계와 기업 및 개인의 신상정보는 공개할 수 없기에 이슈의 전후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수준으로 각색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탑재한 ChatGP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