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을 잡기 위함이다
씨제이의 원류는 제일제당으로 IT업계에 삼성전자가 있다면 식품업계에는 제일제당이 있습니다. 식품부분과 바이오부문, 생물자원 부문을 본래의 주요 사업으로 해왔으며 이 제일제당에서 출발해서 그룹의 이름은 CJ. 이후 유통사업에 진출했으며 우리가 아는 CGV, HMR로 유명한 비비고, 가장 최근의 MCN사업에 이르는 다이아TV등으로 문화콘텐츠 쪽을 향해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해온 식품-유통-문화콘텐츠에 이르는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대기업중의 대기업입니다.
최근 씨제이가 테마파크 사업에 진출한다는 이야기가 본격화되었습니다. CJ문화콘텐츠단지라는 이름으로 리뉴얼되어 고양에 초대형 테마파크를 런칭한다는 계획입니다. 씨제이푸드빌 등 식품사업과 씨제이대한통운드로 대표되는 유통사업, 씨지브이(CGV)라는 영화관사업, 그리고 티비앤과 다이아티비등 문화콘텐츠 사업을 하고 있던 씨제이는 어째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일까요. 저는 그 요인을 오프라인 콘텐츠 소비공간의 부진에서 찾았습니다. 씨지브이(CGV)의 영화산업이 정체되고 지표상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씨제이는 과거부터 식품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여러 사업으로 확장하기 시작했고 문화콘텐츠에서 그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그 축을 담당하는 영화산업과 씨지브이(CGV)가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이죠.
씨제이는 왜 유니버설 스튜디오 이야기를 꺼내며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는 테마파크 사업에 뛰어들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노리고 있는것은 무엇일까. 씨제이의 여러 무브먼트들을 분석해보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밥-술-영화의 공식이 무너졌다
최근 영화관에 가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있습니다. 뭐야 이건. 정말 대박영화가 아닌 이상 그 큰 영화관에 온 손님들은 열명남짓이었고 한때 문전성시를 이루던 영화관을 기억하는 제게 텅빈 빈자리는 너무 큰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졌고, 영화대신 다양한 놀이문화가 생겨났습니다,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 같은 서비스도 있지요. 유튜브라고 하는 공짜 플랫폼은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기까지 합니다.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정리하자면 과거 영화산업을 지탱했던 한국인의 천편일률적인 패턴. 밥먹고 술(차)먹고 영화보는 공식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최근 등장한 웹드라마 등은 이 같은 현상을 가속화합니다. 공짜로 보는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이전시대와 다른 차별화된 고퀄리티 콘텐츠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방탈출카페가 온거리를 점령하기 시작했고 VR방이 새롭게 생겨났습니다. 리테일샵들은 점점 사용자경험을 강화하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었고, 지역의 작은 독서클럽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립니다. 선택지가 영화관 외에 없었던 과거와 다르게 여러모로 사람들의 패턴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냥 예전처럼 롯데시네마나 다른 영화관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 내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롯데시네마랑 아웅다웅하며 싸울때가 아니라 이러다 아차하는 순간 같이 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난감한 상황.
씨제이가 미래가 불투명한 MCN사업에 뛰어들어 자금을 쏟아 다이아TV를 설립하고 제일먼저 앞장서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 봉착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MCN에 투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때 훌륭한 선택이지만 그것이 현재 영화산업과 씨지브이의 대안이 될 수는 없으며 지금의 영화관은 너무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글로벌 지표로 보면 평이한 수준이겠찌만 심리적으로는 일단 제공하는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비쌉니다. 만약 통신사 VIP서비스로 무료로 관람할 수 없었다면 절대 방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콘텐츠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준을 다시 세우고 업을 재정의해야 할 시간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항상 동종산업과 이종산업의 패턴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씨제이와 매우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대기업중 최근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며 2조원대 사업을 벌였다가 극적으로 반전에 성공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바로 이마트와 정용진인데요. 쿠팡/티몬/위메프로 대표되는 온라인 커머스의 기세에 많은 고객을 빼앗기며 오프라인 유통업이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하던 이마트는 SSG닷컴이나 다양한 사업들을 벌리기도 했지만 결국 오프라인 유통업이 가야할 길은 오프라인에서 승부를 보는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교외지역으로 끌어내 승부를 보겠다는 이마트타운전략, 그리고 여기에서 이어지는 스타필드를 과감하게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 위험한 승부수가 고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면서 정용진과 이마트는 일약 화제의 중심에 오르게 되고 화제의 중심-스타필드에서 이마트24, 일렉트로마트, PK마켓등 이마트의 새로운 스타급 플레이어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수한 전략은 벤치마킹해줄 필요가 있지요.
MCN에 투자해봤자 위기의 영화산업이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미래를 위한 사업일뿐입니다. 자신들의 본원적인 경쟁력과 본질이 무엇인지. 바꿔야할 맥락이 무엇인지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영화산업이 정체기에 들어선것은 지금뿐. 앞으로는 적자폭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이마트가 유통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것처럼 씨제이는 콘텐츠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본질을 중심으로 철저히 기준을 다시 세우는 것. 고객의 관점에서 접하게 되는 모든 경험들을 흥미롭고 가치있는 경험들로 채워줌으로서 도저히 씨제이가 제공하는 오프라인 공간에 가지 않고는 버틸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합니다.
한때 씨제이의 씨제이 푸드빌이 위태로웠던 때가 있습니다. 사실상 씨제이가 가진 브랜드인 뚜레주르, 계절밥상, 빕스 등은 규모만 크지 농담으로라도 HOT한 브랜드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글로벌 탑원급 브랜드들이 한국에 상륙하고 있고 이태원에서 자라나는 청년들의 푸드스타트업들과 비교해보면 그 수준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HMR사업에서 대박을 터트림으로서 씨제이푸드빌은 고속성장중에 있습니다. HMR으로 사업의 주종목을 변경한 것은 사업의 본질을 고민하고 맥락을 바꾸어낸 결정입니다. 마찬가지로 기존에 갖고있는 경쟁력과 조직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점으로 업을 정의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10배 이상의 고객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 고객은 움직이지 않아
저는 현재 영화관 사업이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존의 오프라인 사업체 전부가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온라인 유통업체의 도전에 거세게 직면했던것처럼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유튜브, 넷플릭스 등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아직 콘텐츠 업계에서 온라인의 전격적 공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시간문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언제부턴가 제 주변에 넷플릭스 결제회원들이 늘어났습니다. 한국어 자막이 제공되는 콘텐츠가 얼마 없음에도 불구하고 속속 넷플릭스를 외치며 결제한다는 것은 언어가 문제 되지 않는 이들이라는 것이죠. 딱히 영어공부를 하려고해서가 아니라 한국드라마 안보고 해외미드만 보다보니 그냥 귀가 열린 케이스입니다.
앞으로의 시대에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접점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입니다. 누가 시장의 끝단에 서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유통파워를 가져가느냐. 과거에는 씨지브이를 통해 씨제이가 그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힘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이제 시장에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소비패턴이 다양화되고 방식이 바뀌게 되면서 전혀 다른 게임의 룰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죠. 영화산업에 흘러들어가는 전체시장의 현금규모는 갈수록 축소되고 새로운 신산업이 생겨날 것입니다. 기존 콘텐츠 소비의 방법에서도 오프라인체험을 대체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가 날이갈수록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현실속에서 거대한 오프라인 사업체를 유지해야하는 영화관 산업은 과거의 영광만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방법은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하지도 못하는 온라인으로 뭘 어떻게 해보려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유리한 곳으로 전장의 국면을 전환하는 발상이 필요합니다. 영상을 보는 소비하는 맥락을 바꾸아야 합니다.콘텐츠를 소비하는 맥락을 바꿔야합니다. 영화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영화관에 오는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2018년의 영화관은 제가 기억하던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를 실감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좋아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미 고객이 너무 빠르게 달라져서 저 멀리에 달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정도 좋아진것으로는 택도 없게 되었습니다. 영화관의 체험적 경험을 강화한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가 중요한 것이죠. 그것이 겨우 대형 스크린에 콘텐츠 틀어주고 음향기기 비싼거 붙여놓는 방식으로 돈을 때려박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건 확실합니다. 지금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콘텐츠 시청하는 것과 비교해 최소 10배이상의 가치와 만족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객지향적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씨제이가 테마파크 사업을 어떻게 풀어갈지.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공지된 정보에 보면 4DX를 활용해 운영한다. 뭐 해외의 이글루 같은 방식을 적용하겠다고 하는것인데 잘 지켜봐야할듯 합니다. VR이 마치 세상을 바꿀것처럼 폭풍을 몰고 등장했지만 겨우 1년만에 이렇게 주저앉은것에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콘텐츠. 콘텐츠와 사용자경험이 언제나 가장 중요합니다.
씨지브이에 가는 것이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경험대비 HIP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분명 오래전에는 영화관에 가는 것이 신나는 경험이었던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이제 별로 HIP하지가 않아요. 새로운 놀거리들이 너무 많이 생겨났거든요. 팝콘이랑 콜라사면 만원넘게 지출하는 현재의 방식과 구조. 지금의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영화가격을 올릴수 없으니 팝콘이랑 콜라 팔아야겠죠. 이해하는데 받아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영화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 공유하고 SNS에 올리는 건 별로 HIP한 경험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