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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서원 Jul 05. 2018

탐정리턴즈를 분석한다

허술한듯 보이지만 치밀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저는 통신사VIP회원입니다. 어쩌다보니 VIP회원으로 올라가게 되었는데요. 꽤 괜찮은 혜택 중의 하나가 영화무료관람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봅니다. 이번에 본 영화는 탐정리턴즈였습니다. 권상우가 연기하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있었고 오랜만에 꽤 괜찮게 본 영화였습니다. 저는 언제나 무언가를 분석하고 설계하는 직업병이 있어서인지 영화를 볼때도 밥을 먹을때에도 무언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분석하고 구조를 뜯어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본 탐정리턴즈는 허술하게 보이는 것이 없지않아 있지만 시나리오가 매우 치밀하게 쓰여졌으며 매우 효과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인상깊은 장면에서 몇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1) 주인공인 권상우가 허당기질은 있으나 범상치 않은 인사이트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간접적으로 특정사건에 대해 추리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서 모두가 납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는 치밀한 구성.

2) 권상우의 만화방을 넘겨받아 가게를 연 광규형네 만화방이 약간의 리모델링을 거쳐서 그야말로 대박이 나게되고 권상우는 이에 굉장히 배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그 과정이 납득할 수밖에 없는 꽤 치밀한 과정을 거쳐 설계되었다는 것. 

3) 마지막으로 치밀한 전략의 부재. 준비없는 창업(개업)과 험난한 영업. 아무리 개인적 역량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적 역량일뿐 사업과 고객에 대한 전문가라는 뜻이 아니며 GTM(GoToMarket)의 단계에서 매출을 올리는 것은 험난하다는 것.


저는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1. 권상우는 직접 해보지 않아도 안다. 그것이 인사이트

인사이트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영화는 권상우가 뛰어난 관찰력과 칼날같은 분석력을 가진 인물임을 전단지 돌리는 주방장에 대해 분석하는 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반인은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상황에서 몇가지 단서를 통해 연역적 사고를 전개해 결론에 이르는 모습은 평범하지 않으니까요. 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인사이트'라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화산고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저는 장혁이라고 하는 배우를 좋아해서 영화를 시청했는데 그 영화가 등장인물의 면모를 소개하는 방식은 정말 예상외였습니다. 잠시 영화를 멈추고 제3자의 목소리로 해당 인물이 어떠한 인물이라는 것을 정의를 내려버리죠. 문제는 이렇게 내린 정의를 시청자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영화가 웅장한 음성으로 XXX는 천재다!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고 한들 실제로 그가 영화속에서 보여주는 것이 유아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저 주장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죠.


탐정리턴즈에서 고민하고 추리하는 권상우


스타트업 업계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인사이트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통찰력. 뭐 이런 의미인데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건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꿰뚫어보듯이 정보를 생성해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창업가로서도 인사이트 있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직접 당해사업을 해보지 않아 완전하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거의 사실에 가까운 가설을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근거와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이지 않을까. 영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2. 광규형네 만화방은 라면을 먹으면 만화가 무료! 

이것이 바로 업의 본질을 바꾸는 대중적 관점에서의 혁신사례이다.

저는 스타트업을 멘토링하면서 아이템과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 설명할때 잘 알지도 못하는 어려운 해외사례나 소수만이 알고 있는 IT서비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사례. 누구나 관심있어 할만하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로 설명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라면을 먹으면 만화가 무료!'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김광규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합니다. 만화방을 중심으로 비지니스 혁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화가게라고 하는 것이 등장하지 않았을 시기에는 그냥 책만 사서 철제구조물에 올려두고 소파몇개 구입해서 가게를 차려도 사람들이 방문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린시절 사촌형을 따라가 방문했던 만화방이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비지니스를 둘러싼 외부환경은 항상 변화합니다. 만화방이 잘되는것 같으니 경쟁자가 생기는 것이죠 혹은 만화방은 아니지만 내 고객의 돈과 시간을 똑같이 노리는 오락실과 PC방이 등장합니다. 이제 경쟁에 직면한 것입니다.


당장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질 것입니다. 이 상황은 경험해본 이들만이 그 충격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대응해서 대안을 낼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이 단계에서 자기나름대로 생각해 움직이지만 모조리 실패하고 점점 어두운 기운에 잠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누군가의 말을 듣고 소파를 좋은 것으로 바꾸거나, 가격을 할인하거나, 온라인이나 앱서비스로 마케팅 한다는 회사와 계약하고 종속되거나.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내는 전략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으니 의도를 갖고 접근한 상대방에게 남 좋은 일만 시켜주거나 가격할인이라는 제 살 깍아먹는 방식 외에 대안을 낼 수 없는 것이죠. 


뭐 누군가는 만화방에서 라면을 팔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화방에서 라면을 파는 것'과 '라면을 먹으면 만화가 무료'는 다릅니다. 전자는 마음속에 고객이 없는 막가파식 생각입니다. 만화방의 경쟁이 심해지면 온갖 양상이 출현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것도 있으면 좋고, 저것도 있으면 좋은. 이런 생각에서 라면도 제공하겠다는 발상이 가져온 라면판매인 것이지 고객관점에서 맛있는 라면을 제공하겠다는 마인드를 갖고 접근한 것이 아닙니다. 김광규의 만화방에 있는 라면제공 시스템은 저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장 행복할때는 만화보면서 라면먹을때였다는 기억을 회상하며 철저하게 고객지향적 관점에서 고객에게 가치있는 라면을 제공하고자 주방분위기를 손질하고, 다수의 라면을 한번에 끓일수 있는 시스템과 기타 여러방식을 치밀하게 설계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김광규와 같은 마인드로 운영되는 만화방은 주인아저씨가 직접 최고의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팔을 걷어붙이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화방이라고 하는 곳이 갖고 있는 업의 본질을 라면집이라고 생각했을때만 할 수 있는 시도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화방에서 라면을 팔고 아니 라면 뿐만이 아니라 우동에 만두에 다 팔아도 이 기본적 관념이 낡아있다면, 그러니까 고객을 생각하고 고객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한 것이 아니라면 그 라면은 고객입장에서 먹고싶지 않은 서비스가 될테니까요. 그냥 만화방에 라면이 있을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고객이란 내가 이렇게 장사를 하려고하니 당연히 와서 돈을 지불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라면을 먹을때 고객의 기분이 어떨것인지 어떤 마음이 들 것인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죠. 오히려 왜 우리 만화방도 저집처럼 라면을 주는데 왜 장사가 되지 않는거야!라고 분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 권상우가 김광규에게 자신의 만화방을 넘기고 김광규는 단순한 만화방을 인수받는것에 그치지 않고 업을 재정의하여 만화방의 본질을 '만화를 보여 라면을 먹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포지셔닝하여 만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 라면집을 설계합니다.






3. 스타트업은 GTM으로 말한다 

치밀한 전략이 없는  나름대로의 준비는 위험을 불러일으킨다

이 영화가 재미있으면서도 기억에 남았던것은 허술한것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탄탄한 기획력에 기반하여 제작되었다는 것이 느껴지는 광경이 여럿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권상우를 부각시키기 위해 추리과정을 묘사하는 점과 권상우에게 가게를 넘겨받은 김광규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라면집을 부흥(?)시켰는지. 그리고 영화의 시작편에서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던 탐정브라더스가 개업후 파리만 날리는 상황에 처해 얼마나 사업의 길이 멀고도 험한지 알리는 과정까지.

자신있게 등장했다가 순식간에 반전되는 모습


영화에서 권상우와 성동일은 나름대로 준비를 통해 개업을 시도합니다. 공동창업자인 둘은 서로간의 다른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으면서도 각자의 영역에서 꽤나 괜찮은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권상우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다수의 팬과 지지세력을 갖고 있는 미제사건 카페지기이며 성동일은 실제로 현장에서 경찰업무를 수행한 베테랑 형사출신이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둘 모두 제대로 된 사업의 경험이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아니 정확히 따지면 권상우는 만화방을 운영했으니 점포창업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특성으로 돈을 밝히는(?)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업의 전략을 수립하고 탐정사무소의 핵심고객을 발굴하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그리며

운영하는 능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종합적으로 따지자면 개발자나 기획자,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은 매우 뛰어난데 사업과 고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난에 빠지게 됩니다. 매우 처참하게.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이들이 스스로 영업을 시작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각자 온라인에서 유명한 카페지기이자 베테랑형사로서의 자존심으로 가만히만 앉아있어도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들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고객'은 단 한명도 확보하지 못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영업을 시작하죠. 권상우는 탐정사무소에 일을 맡기려 하는 고객은 분명 경찰서를 드나드는 일반인중에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경찰서 화장실에 '스티커'를 붙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명함을 주는 일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 시도가 맞아 떨어져서 어찌되었든 그 고객은 탐정사무소를 방문하게 되죠. 


저는 스타트업의 고투마켓은 철저하게 시장의 단계에서. 고객을 만나며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의 GTM(GoToMarket)은 철저하게 영업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단 이 영업이 그 영업이 아니라 매우 지능적인 영업이겠지만요. 치밀하게 전략을 수립하고 우리 서비스가 전달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하여 이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 이것을 영업을 통해서 수행한다는 것이죠. 머리는 전략을 끊임없이 짜내고 몸은 시장에서 고객을 만나며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것. 


창업자를 멘토링하는 과정에서 지켜보면 언제나 자주 등장하는 패턴이 있는데 역량자로서의 자신의 능력과 GTM단계에서 필요한 사업과 고객에 대한 능력을 혼동하는 경우입니다. 혹은 지금까지 사업을 해오며 주먹구구식으로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져 소기의 성과를 올린 경우에는 시장과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권상우와 성동일도 자신의 분야에서는 훌륭한 역량자였습니다. 나름대로이지만 꽤나 준비도 했을것입니다. 그러나 탐정사무소의 가치를 고민하고 성장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꽤나 실력있는 인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만 날리는 사무실을 마주하며 고통을 느끼게 되죠. 회사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내도 고투마켓의 단계에서 최초의 고객을 찾아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인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영화란 어벤져스 같이 화려한 볼거리가 등장하는 영화일수도 있겠지만 탐정리턴즈처럼 치밀한 구성력을 기반으로 사소한 사건 하나 하나도 짜임새있게 구성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는 재미있지만 기억해두어야 할것은 창업은 신나고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위험하고 리스키한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치밀한 고도의 계획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름의 준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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