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주한 도시는 낯섬으로 가득했다
대한민국 중부를 가로지으는 인구 백만의 대도시. 충청권 제1의 도시. 철도교통의 시대에 교통의 요지로 기능했으며 대덕연구단지가 조성된 과학도시. 정부청사가 위치해있고 주요한 연구기관과 수자원공사, 코레일 등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이 위치해 있다.
여기까지가 대전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일 것입니다.
카이스트와 충남대 한밭대라는 3개의 국립대가 위치해 있고, 관광특구인 유성온천특구가 있으며, 대덕연구단지로 인해 과학기술도시의 이미지를 갖고 있고, 과거 1993년에 대전엑스포를 열었다는 것, 지역을 대표할만한 빵집 - 성심당이 있다는 것은 조금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대전에서 태어났고, 울산에서 유치원을 다녔으며,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어린시절의 가장 긴 시간을 이 도시와 함께 보냈고. 최근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서울에 있었습니다. 이곳에 살고 있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생각, 감정, 판단.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대전이라는 이름의 도시를 마주하면서 낯섬으로 가득한 생각을 글으로 풀어봅니다.
2020년 4월 행안부 기준에 의하면 대전의 인구수는 147만 1650명. 인근의 세종시가 점점 성장을 거듭하면서 인구수가 빠르게 붕괴하고 있고 150만명의 마지노선이 붕괴하였습니다. 이것은 대전만의 문제는 아니며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방도시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지만 그 도시들과 대전의 차이는 명확하게 존재합니다. 이곳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산업의 기반이 없고, 목포/여수/부산과 같은 관광도시로서의 가능성도 없고, 제주도의 경우처럼 변화와 혁신의 움직임도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자영업의 비중이 높기는 한데 대구처럼 전국을 석권하는 프랜차이즈들이 태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공무원/공기업/연구원을 제외하고 산업기반 자체가 부족하다보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대전청년의 입장에서 희망을 갖기 어려운 환경이며 그냥 좋은 일자리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은 꽤나 살만한 도시입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이 많아서 그들이 소비하는 돈이 적지 않고, 뭔가 엄청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해서 딱히 분노할 정도로 거대한 문제가 있는것도 아니라서 사람에 따라 그냥 적당히 만족하며 살기에는 매우 좋은 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언론에서 보도하기로는 위기에 처한 소멸도시 대전이 되었습니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매우 엄청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도시는 예전부터 그러했고, 오늘날도 그러합니다. 어차피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대전의 문제를 하나만 검토해보자면 교통이 불편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외부에서 대전을 방문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때, 서울에서 대전역으로 이동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대전역에서 연구단지쪽으로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전의 주요한 기관들이 밀집해있는 연구단지쪽에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버스터미널인 복합터미널과 유성터미널 또한 마찬가지. 버스터미널이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현재 제일 중요한 용전동 복합터미널이 당연히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도시에서 연결이란 제가 아는 의미가 아닌것 같습니다.
대전의 주요한 대학인 충남대, 카이스트, 한밭대, 한남대 등도 마찬가지. 단 한곳도 이어진 곳이 없습니다. 특히 충남대, 카이스트, 엑스포라인을 버리고 유성온천역을 선택한 것은 이거 정말 뭔가 잘못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성온천에서 충남대까지 가라니, 월평역에서 카이스트까지 가라니.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지하철로 갈 수 있는곳은 시청과 정부청사말고 없습니다. 왜 이렇게 노선이 설정되어 있는지 이상합니다.
그래도 대전에 살다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대전은 자기차량만 있으면 어디든 3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시스템이 불편한 대신 도로교통인프라가 잘되어 있는 편이고 대부분 대전거주민들은 차량이동으로 움직입니다. 어린친구들은 집-학교-시내정도이므로 불편해해도 그것을 잘 모르고 버스타고 잘 다닙니다.
그러니까 대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관점은 하나도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전에 사는 사람들이 볼때는 또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거든요. 그리고 대전은 일부구간 제외하고 그렇게 차가 심하게 막히는 도시가 아닙니다. 대전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할테지만 어차피 이 도시에 외부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매우 극소수가 일 때문에 오는 사람들만 있을뿐, 앞으로도 관광으로 방문할 일은 없을테니까요. 이 도시는 공영주차장 같은 기본적인 것 또한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의 연속일테지만 그냥 아무곳이나 주차하려고 하면 또 뭐 할곳은 많습니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이 조금 이상한거 맞는데, 대전사람들은 대전에서 그렇게 불편하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과거 대전의 주요한 컨셉중의 하나가 과학기술도시였었던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 이미 그 시절의 것을 되풀이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성장전략이 패스트팔로우였을때는 기관의 논리로 접근하는 전략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지 모르나 오늘날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러한 상황속에서 기관과 연구소 중심의 인프라 약간 만으로 과학기술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기업이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회사들의 데이터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카카오나 라인과 같은 IT기업의 본사가 있는 것도 아니며,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가 위치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 혁신이라도 하기 위해 규제혁신도시 같은 것을 하면서 블록체인과 같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과학기술도시가 아니라 연구중심도시로서 관점을 피버팅 하면서 오픈이노베이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성장하면 좋은데 이 방향으로 가는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온천에 대한 관점 또한 마찬가지로 아쉽기만 합니다. 여기가 어떻게 온천관광특구 일수 있을까요. 그냥 시민들이 목욕하러 가는 곳일뿐입니다. 대만이나 일본, 유럽에서 온천을 즐기던 사람이 현시대의 유성온천에 온천을 즐기러 올 수 있을까요. 자료를 검토해보면 1970년대 신혼여행지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1970년대의 일인것이죠.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유성온천에 온천을 즐기러 갈 수 있을까요.
과학기술도시, 온천관광특구라고 하는 과거의 유산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미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사람들에게 이정도 수준의 서비스로 만족하라는 제안 또한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여긴 그냥 대전시민들을 위한 복지시설일뿐. 대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있다면. 서울사람들이 저런 서비스를 좋아할까요, 외국인들이 이것을 보고 감동할까요, 한달에 두번씩 해외여행 다니면서 디테일한 서비스에 익숙해진 저 같은 사람이 과연 저런 서비스를 인정할까요. 기업의 논리로 모든것을 글로벌 탑티어 수준으로 해내지 않는다면 과거의 유산은 이제 그만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며, 비판이 아닌 새로운 혁신이 필요합니다. 저는 어째서 아직까지 과학도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왜 자꾸 내가 목욕하러 가는 곳을 온천관광이라는 컨셉을 씌우려 하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시대는 변화했고, 정말로 그것을 지키고 싶다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최고의 전문가를 데려와 전권을 위임하는 방법을 시도해보거나, 그럴수 없다면 현존하는 리소스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대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상공인과 프리랜서. 이곳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업기반이 없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다면 스스로 1인회사가 되어 움직일 수 있는 프리랜서에 집중하면 됩니다. 광주처럼 인근에 공항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대전은 여전히 철도교통의 중심이고 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들에게 이 점은 강력한 유인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혼자 활동하는 1인기업의 형태가 점점 증가하고 있고 새로운 긱경제(Geek Economy)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대도시 기준 비교적 물가가 저렴한 편이고 전국구/글로벌로 활동할 수 있는 강사/작가/창작자들에게 대전은 충분한 매력이 있는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트레일 여행 등 새로운 형태의 여행문화에 집중하면서 혁신적인 가치를 생산하는 공간기반의 비지니스에 관심을 두고 로컬크리에이터, 도전하는 소상공인을 키워야만 합니다.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과 같은 수준의 코스를 대전을 중심으로 개발해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백패킹 여행을 위한 장소로 인프라를 구축해보면 이 도시에 어떠한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글로벌 탑티어 수준의 디테일을 가져야 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에스토니아는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블록체인과 같은 새로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전자시민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세상의 플레이어들을 섭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전이라는 도시가 새로운 비젼을 품고 움직이기를 기대해봅니다.
오늘 내가 하는 고민이,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