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맹그로브의 팥빙수는 공짜가 아니었다

운명의 틈새에서 만난 두 번째 징조

by 임서원
Green Modern Weekly Newsletter Email Header.png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깃발을 들어 올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사람을 이끌어본 자들은 안다. 커뮤니티라는 단어가 얼마나 달콤한 기만이며, 동시에 얼마나 처절한 비즈니스의 영역인지를.


나는 커뮤니티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혐오했다. 인간을 애정하면서도 그 악한 마음에 치를 떤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요란한 모임들, 어쩔 수 없이 깃발을 들고 직접 모임을 이끌어야 했던 나날, 강남 한복판의 대형 모임부터 성균관대 창업 프로그램의 실질적 설계와 운영까지 거치며 내가 얻은 결론은 냉정했다. 커뮤니티는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가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자들만이 살아남는 잔혹한 전장이라는 것.


운영자이면서 전문성을 가진 헤비유저의 경험을 모두 거쳐온 내 눈에,


입주 초창기 맹그로브의 커뮤니티 프로그램(MSC)은 그저 자본의 힘을 빌린 위선적인 아마추어리즘에 불과했다. 의도는 좋으나 시스템은 헐거웠고, 바닥에서 직접 사람을 모아본 적 없는 자들의 서툰 열정만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기꺼이 방관자의 자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고, 밤 12시가 되어야 전장에서 돌아오는 일상의 반복.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무너진 채 마모되어 가던 어느 무더운 오후, 나는 우연히 20층 라운지에서 멈춰 섰다. 팥빙수를 나눠준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이벤트였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문을 여는 순간, 난 내가 알던 세상에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그곳에는 생색내기용 대규모 행사가 없었다. 대신 폐쇄된 회의실 안, 2개의 소그룹으로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매니저들이 땀을 흘리며 직접 얼음을 부수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들은 효율이라는 경제적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미리 주문한 기성품을 나눠주는 간편한 방법 대신, 도쿄 오모테산도의 과자 장인을 연상케 하는 집요한 정성을 택했다. 낯선 이방인들의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 환하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거는 매니저의 눈빛은, 영혼 없는 직원의 그것이 아니었다.


지독한 정공법을 추구할때만 나올 수 있는, 순수한 환대.


그 열정이 내 마음을 바꾸었다. 나는 빙수만 받고 떠나려던 계획을 조용히 폐기했다. 내가 알던 어설픈 초창기의 MSC가 아니었다. 맹그로브는 어느샌가 진심이라는 무기를 들고 진화해 있었다. 러쉬(LUSH) 매장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최고급 호텔 컨시어지의 섬세함이 결합된 그 기묘한 바이브는, 미션에 완전히 몰입된 조직만이 뿜어낼 수 있는 날것 그대로의 광채였다.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대단히 훌륭했다. 늦게나마 알게된 상황에 조금 질투심이 나서 말하자면, 이렇게 좋은 걸 아는 놈들끼리만 몰래 즐기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저 이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즐거웠으면 하는, 비젼에 기반한 운영진의 순수한 선의와 열정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되는 광경.


IMG_3773.jpg
collage hfhdfhfh.png


분명 비효율적인 길이다.


수많은 재료를 준비하고, 호스트 역할을 자처하며 낯선 사람들을 이끌어나간다는 것. 그렇게 생각처럼 쉽고 편한 일일리가 없다. 하지만 이게 옳은 방법이다. 적어도 코리빙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과 식탁 앞에 마주 앉아 각자의 삶을 도란도란 섞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이 공간이 증명해야 할 본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접 얼음을 짓이기고 제각각의 토핑을 쌓아 올리며, 완벽하게 개인화된 각자의 팥빙수를 빚어냈다. 낯선 이들과 섞여 드는 대화는 의외로 밀도 높았고, 그 정교한 환대 속에서 나는 모처럼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풍경 뒤로, 나는 기가 막힌 현실을 목격했다.


행사가 무르익고 참여자가 늘어나자, 서서히 고개를 드는 비릿한 풍경들.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는커녕,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기계적인 손길로 빙수만 낚아채 가는 자들. 마치 맡겨놓은 전리품을 찾아가듯 당연하다는 듯한 그 오만한 표정들.


그래. 언제쯤 나타나나 궁금했다. 마냥 좋은 일만 있을리가 없지.

구독형 소시오패스들이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앱 커뮤니티 게시판을 켜봤다.

조용했다.

지독할 정도로 고요했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달콤하게 타인의 진심을 소비하던 자들이, 온라인이라는 익명의 그늘 아래서는 단 한 줄의 감사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 정교한 침묵은 나에게 거대한 비릿함으로 다가왔다.


내친김에 지난 커뮤니티 기록까지 다 추적했다.

단 하나의 흔적도 찾아보지 못헀다.

분명 이 정도 퀄리티의 프로그램이 어제오늘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닐 터다. 하지만 게시판 그 어디에도 그들이 흘린 땀방울에 응답하는 글은 없었다.

난 찾지 못했다.

지금 다시 찾아봐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거라 장담한다.


수많은 프로그램이 이 공간을 스쳐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전무했다. 가치가 생성되는 곳은 있으나, 그것을 기억하는 자들은 없었다. 그 지독한 기록의 부재가, 이 프로그램이 가진 진짜 가치를 오히려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인간의 본질이 이토록 빈곤할 수 있는가.


이렇게까지 정성을 다해서 판을 깔아줬는데, 축제의 단물만 빨아먹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입을 씻는 자들. 이른바 '먹고 째는' 인간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나는 참담함을 느꼈다.


그래. 꿀통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그 생각 잘 알았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감사도 표현하지 않는 모든게 당연한 그 무례함이, 오히려 그들의 수준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 팥빙수 사건 이후, 나는 맹그로브라는 공간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민낯도 보게 되었다.


그들의 논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나는 멤버쉽 돈을 냈으니까."


그들은 타인이 미련하게 갈아낸 시간과 정성을 마치 맡겨놓은 전리품처럼 챙겨간다. 이들은 커뮤니티라는 유기적인 생태계를 그저 돈을 넣으면 상품이 나오는 자판기쯤으로 여긴다.


하지만 인생을 걸고 생의 전장에 뛰어들어 본 자들,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지며 자본의 냉혹한 주파수를 체득한 자들은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지불한 비용이 무례를 정당화할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진짜 돈의 무게를 아는 자일수록, 타인이 내어준 배려에 대해 더 정교하고 묵직한 리스펙트를 보낼 줄 안다.


그러나 이 공간의 현실은 잔인할 만큼 기형적이다. 정작 땀 흘리며 가치를 만들어내는 자들은 뒤에 있고, 침묵 속에서 그것을 약탈하는 무례한 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다수를 차지한다. 기껏해야 말로만 고맙다고 떠들어대는, 진실되지 않은 자들의 얄팍한 찬사만이 잠시동안 공허하게 맴돌 뿐이다.


나는 이 지독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문고리에 걸려 있던 그 파란색 망사 주머니.

그 작은 선물이 내게 유독 무겁게 느껴졌던 이유는 명확했다.

세상은 조용하지만 선명한 주파수로 분명히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날.

바쁜 일상 뒤로 비겁하게 숨어버렸던 그날,

바쁘다는 핑계로 문을 닫고, 그 정성을 사소한 해프닝으로 치부하며 대가 없이 소비했다. 정당한 리스펙트를 운운하면서도 나 또한, 그 무례한 빌런들의 공범이었음을 인정한다.


난 알고 있다.

기억하고 있다.

이 공간에는 온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누군가가 지불한 고독한 대가를.


수많은 소음과 불평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공간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라면 스쳐 지나갈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누구보다도 깊게 경험했고, 본질을 꿰뚫어 볼 눈을 가졌으면서도, 진실을 목격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가 정의 내린 내 삶의 근본적 원칙에 대한 직무유기다.


나는 삶의 선택에서 물러서지 않겠다.

불의 앞에 유불리를 따지며 계산하지 않겠다.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나에게 분명한 목적을 띄고 귓가에 속삭이고 말했다.


첫 번째는 문고리에 걸린 파란 망사 주머니였고, 두 번째는 무더운 오후의 팥빙수였다. 나는 애써 외면하고,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그 징조들은 나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이곳에 흐르는 온기를."


나에게 그 팥빙수 행사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세계가 내 비겁한 변명을 부수고, 마땅한 값을 치르게 한 카이로스의 순간이었다.


오늘, 나는 이 글을 쓴다.

그저 내가 받은 정중한 호의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인생의 영수증을 끊어주는 것이다.





Black and White Collage Party Instagram Post.png
Hardboiled Lifestyle Essay of Mangrove


이전 01화어느 날 문고리에 걸려있던 푸른색 망사 주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