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가의 시대를 예고한다
저는 마케팅사이언스를 매우 강조하는 전략가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창업판에 뛰어들어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성장한 이십대의 기억에서 출발합니다. 고생고생하고 맨땅에 헤딩하며 몸으로 체득한 나의 비밀스러운 노하우. 그런데 사실은 그정도 이야기는 필립 코틀러가 자신에 책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써놓았다는 것에 충격받은 날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원시절은 저에게 많은 성장을 준 시간이었고, 또한번 나의 바닥을 경험하며 고통과 좌절을 경험하게 한 날들이었습니다. 선지자의 지식을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나의 역량부족과 통찰력부족을 절실히 느꼈던 나날이면서 지금이라도 깨닫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마음.
저는 마케팅 전략가입니다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마케팅 관련 내용이란 그 깊이는 풍부하지만 사실 기초적이고 알만한 사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종산업 경쟁자의 개념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가장 유명한 '나이키의 경쟁사는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라는 이야기. 비지니스 모델을 설명하기 위한 '면도기-면도기날 이론'등. 전략이라고 해놓고 등장한 사례와 패턴들이 매우 기초적인 형태에 머물러 있기에 어쩌면 우리는 전략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것들은 전략이라기보다는 그저 필립 코틀러 아저씨가 마케팅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이 마케팅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고체계와 생각의 패턴을 정리하여 기초중의 기초를 설명해준 것인데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사실 저 또한 외부 강연을 통해서 이런저런 강사님들의 마케팅 강의를 들을 기회가 종종 있기는 했지만 강사분들마저도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 할뿐 그 이상의 전략과 사례를 이야기하는 분을 강의나 컨퍼런스를 통해 만난적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진정한 마케팅 전략은 비젼으로 기업의 매출을 견인하며 올바른 타겟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마케팅 집행과 관련된 비용을 혁신적으로 줄여주는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네. 혁신적으로요. 고객의 가치가 무엇일지 끝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데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마케팅 전략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강하다고 돌격 앞으로 해서 악전고투 끝에 승리하는 전쟁이 아니라, 완벽하게 내가 승리할 수 있는 전쟁의 조건을 설정하고 이기는 전투만 거듭하여 조금의 피해도 없는 무손실사냥을 하는 것.
기사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국면을 달리하여, 삼성과 애플의 사례로 마케팅 전략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또한 널리 회자되어 사람들의 안주감으로 이야기되는 소재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저 무비판적으로 자극적인 기사소재만을 받아들일뿐 그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궁금해하거나 생각을 거듭하는 분들은 많지 않은듯 합니다. 그저 삼성이 마케팅을 못한다. 애플이 대단하다. 이정도의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이죠.
삼성이 마케팅 비용을 11조가량을 쓴다고 합니다. 이와 비교하면 애플은 마케팅 비용에 거의 돈을 지불하지 않는것과도 같습니다. 그냥 잡스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략에 따라 CEO가 스타처럼 등장해서 '디스 이즈 아이폰!'하면서 우아하게 마케팅하는것 같은 느낌이죠.
애플의 팀쿡과 고동진 사장의 소개와 스피치가 다르다고 하면 그것에 대해서 팀쿡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왜 팀쿡은 저런 스피치를 하고 고동진은 저런 스피치를 하는지 WHY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팀쿡은 '가치'를 우선시 하고 고객지향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니 그의 스피치는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애플의 핵심인재들은 언제나 애플에 충성하는 열혈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가치를 전달할지에 몰입해있는 사람입니다.
반면 고동진은 어떤 사람일까요.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이 기능과 성능을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스마트폰을 단순하게 기계로 생각하는 관점을 가진 이전시대의 인물이지요. 그 또한 고객에 대한 가치와 만족을 고민하겠지만 그와 팀쿡이 갖고 있는 권한과 업무범위의 수준, 방향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요. 이건 그냥 애플과 팀쿡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녀석들은 이전의 마케팅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것입니다. 비용을 끌어모아 매체에 투자해 광고비를 집행하면 매출로 돌아오는 것이 이판에서의 상식인데 TV 등 메이저 매체에 제대로 비용도 집행하지 않고 온종일 알수 없는 해괴한 짓거리를 하면서 돈도 안쓰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바이럴을 통해 매출을 달성하는 말도 안되는 놈들인 것이죠.
TV광고, 매체광고를 통해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삼성의 광고집행 비용이 높은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애플만큼 과학적이고 고도의 마케팅을 실행할 인적조직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니까요. CEO부터 말단조직원까지 비젼으로 일치단결해 있지 않으니까요. 경영진만 마케팅적 관점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부가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조직문화를 갖고 있지 않으니까요. 외신들이 왜 마케팅 분야의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남길까요.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 시대의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TV산업 복합체는 이미 멸망했습니다. 애플의 선전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아직 남아있는 잔해를 붙들고 망령같은 잔영만이 남아 희미하게 숨을 쉬고 있을 뿐이죠.
아니 아직까지는 그래도 어느정도 통하기 때문에 무시하고 있거나 애플과 유사한 전략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재에 대해 파격적 대우가 필요하기에 계속 유예를 거듭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평균 연봉은 높은 편이지만 삼성전자가 경쟁하는 글로벌 회사와 비교하면 절대 높은 수준은 아니니까요.
임원의 연봉만 심한 차이가 있는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연봉 또한 큰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애플의 마케팅은 사장만, 경영진만 회사의 가치를 고민하고 연구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회사의 미래를 고민하고 가치를 나누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화가 기반이 되어 이러한 마케팅이 나오는 것이지요. 애플의 마케팅 전략은 인재가 최고의 대우를 받을 때에만 등장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삼성은 그러한 계산을 하면서 인재를 대우해주는 방식보다는 구시대적 마케팅 방법으로 비용을 집행해 사업을 운영하는 편이 훨씬 더 이익이라는 계산을 하고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수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조직이 마케팅적 관점을 갖고 일을 진행하면 마케팅 집행비용이 혁신적으로 줄어든다
삼성이 마케팅은 매체에 비용을 집행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태우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면 애플은 마케팅이란 온직원이 사장과 같은 마인드를 갖고 제품개발에서부터 마케팅적 관점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결과물을 내는 과정에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문화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직원이 사장과 같은 고민, 생각을 하라는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만한 대우를 해주고 인정해줌으로서 궁극적인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회와 주주들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처음부터 심혈을 기울여 마케팅적 문제를 고민한다면 제품과 서비스가 출시되어 비용을 집행해야 할때 남들은 100만원 써서 광고해야 하는 것을 10만원에 하거나 아예 비용을 집행하지 않고 물건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왜 이런 기업문화가 전파되지 않는 것일까요?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이런 일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직원들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순간 보상해야 하니까요. 직원들에게 그만한 가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이만큼 월급을 주니까 이런것도 너희들이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라고 고압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지요. 굳이 마케팅 전략뿐만이 아니라 특허개발과 관련해 연구원들에게 어느정도의 보상을 주는지 확인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특허와 기술에 대한 직무발명보상 조차도 거의 인정하지 않는 바닥수준인데 마케팅 전략에 대한 보상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절대 삼성은 애플을 넘어설수 없습니다. 감성마케팅이나 이런저런 이야기 때문이 아니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권한을 구글이 갖고 있고 삼성은 하드웨어만 한다 이래서도 아닙니다. 그냥 조직문화 자체가 인재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닌겁니다. 인재들이 노력해서 성과를 내고 드라이브를 거는 시스템이 아닌것이죠. 그렇다보니 (글로벌 수준의 이야기이지만) 진짜 인재라면 살아남기 힘든 분위기가 되고 그냥 그런 조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제 주변의 인재들을 보면 국내기업 가운데 라인이나 카카오는 어느정도 생각하지만 삼성전자는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비용을 집행하는 마케팅 방식을 고수하는 한 앞으로도 삼성전자에 우수한 마케팅 인재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의 마케팅을 말하다
최근 마케팅과 관련된 포지션에서 퍼포먼스 마케터와 콘텐츠 마케터를 뽑는 팟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케팅 전략과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기능적인 업무를 진행하는 마케터입니다. 위직군이 늘어나게 된 것은 철저하게 시장논리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비용에 대한 투입대비 효과를 설명할 수 있는 퍼포먼스 마케팅과 본래 3인이 한팀으로 돌아가 해내야 할 일을 혼자 콘텐츠도 만들고 SNS마케팅도 하는 콘텐츠 마케터. 조직에서 충분히 뽑을만한 포지션인 것이죠.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직군의 마케터를 본사에서 채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대행사에서 진행해왔던 업무고 본사는 프로세스만 진행하는 마케팅 직원을 둘 뿐이었습니다. 그랬던 상황이 몇몇 업체가 직속으로 마케팅팀을 두고 SNS를 활용해 성공사례를 만들어냈고 그 경험이 우리사회에 퍼져나가면서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마케팅 전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그로스해킹 GrowthHacking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한차례 지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많지만 결국 내용을 줄여놓고 보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 하는 마케팅에 관한 방법론입니다. 오래전부터 이 이야기를 주구장창 이야기해왔던 세스고딘의 보라빛 소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시대는 광고비용을 집행한다고 해서 그만한 매출로 돌아오는 공식이 깨져버린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불확실함속에서 전략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시장이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매체가 포화되어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누구도 대안을 제시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면 조직에 비젼을 비추는 마케팅 인재의 가치는 높아질수밖에 없습니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전략은 지금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주류의 전략펌(맥킨지, 베인앤컴퍼니 등) 출신의 그 전략가들이 아니라 기존의 방법론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전략적 인재. 이를테면 서류능력만 가진 전략가가 아니라 여러가지 스킬적인 능력과 다양한 역량을 가진, 전략을 세우고 뒤로 싹빠지는것이 아니라 직접 세운 전략을 책임지고 실행하는 전략가의 모습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인재를 분류하는 3단계 프로세스를 갖고 있습니다.
1) 스스로 과제를 설정할 수 있는가, 2)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낼 수 있는가, 3)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내고 직접 그 솔루션을 책임지고 실행해 결과를 낼 수 있는가.
저는 개인적으로 첫번째 단계라도 통과하면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과제설정 능력조차 보유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애플은 제가 분류한 3단계 인재프로세스 중 최종단계에 속하는 REAL인재들을 다수 보유한 집단입니다. 이런 조직은 그로스해킹이라고 부르는 비용을 들이지 않는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광고비용을 집행하지 않는다해서 마케팅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인재들을 회사에 충성하도록 하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막대한 자원을 고용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않는 진실입니다.
스스로 과제를 설정하고 솔루션도 내고 직접 책임지고 결과를 낼 수 있는데 왜 조직의 구성원으로 일을 해야 할까요. 얼마든지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이런 인재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의 노력을 날로 먹으려 들었던 일들이 다반사였습니다. 깍아내렸고 짓밟으려 했지요. 뭐 이해합니다. 비용을 집행해 매출로 반환하는 공식을 가진 사회에서 일정수준 이상의 인재들은 냉정히 말하자면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손발이 되어 일이 구멍나지 않게하는 이들만 있으면 얼마든지 회사는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앞으로의 세상은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TV광고를 집행한다고, 신문광고를 집행한다고 해서 매출로 돌아오는 공식이 깨져버린 것입니다. 누구도 정답을 제시할 수 없고 혼란만이 가득한 상황입니다. 이제 법칙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미디어에 광고를 태울것이 아니라 시장에 서서 고객의 반응을 살피며 이슈를 창출해내는 활동이 먼저입니다. 이것을 해낼 수 있는 인재.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직접 실행해 결과를 낼 수 있는 이들. 앞으로 멀지않은 시일에 이러한 마케팅 전략 포지션을 기업에서 찾아보게 될 날이 가까워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