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만큼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며 그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단어도 없습니다. 기획, 홍보, 영업,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자신들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인식의 차이로 말미암아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마케팅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류 중에 하나가 바로 마케팅은 '기획'베이스로 돌아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업, 세일즈 이런것들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진정한 마케팅은 무언가 대단하고 우아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
물론 이미 성장할만큼 성장해서 브랜드 마케팅을 중심으로 하는 회사의 마케터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회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좀 더 처절하고 거친 느낌의. 영업과 세일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스타트업에서의 마케팅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많운 사람들이 묻습니다. 스타트업에서는 전략이라고 하는 것을 논할 이유가 없다. 스타트업에 어떻게 전략이 붙을 수 있는가. 무조건 실행.실행. 실행이다. 그런 인력을 채용할 여유도, 그만한 여력도 없는 곳에서 전략이란 아무 의미없는것이다. 결국 스타트업이 마케팅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나가 심플하게 고객한명한명 만나며 최선을 다하는것 이상의 방법이 없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 마케팅이야말로 과학적인 방법론에 따라 진행되어야 합니다
스타트업에서의 마케팅은 무엇일까요. 대기업의 마케팅이 데이터분석과 브랜드 마케팅에 가깝다고 하면 스타트업의 마케팅은 현장의 거친 느낌이 묻어나는 세일즈, 영업에 가깝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고 있는 스타트업 서비스 분석도구인 9블록이나 린스타트업 등 공통적인 메시지는 내 서비스를 사용하게 될 최초의 고객 10명, 100명을 만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결국 직접 거리로 나가 10명, 100명 영업하고 세일즈하라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과 관련한 미국에서 건너온 선진이론은 세일즈와 영업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냥 고객을 직접 만나라 이런 표현을 좋아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들이 말하는 고객을 만난다는 개념이 기존에 세일즈와 영업이라고 하는 단어가 갖고 있는 소비된 이미지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똑같이 영업을 하고 세일즈를 한다고 해도 아 모르겠고 일단 그냥 몸으로 부딛혀보자. 못먹어도 고. 이런 생각으로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끝없이 궁리하여 고객인터뷰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것. 제품 또는 서비스를 들고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한다는 것. 몸은 실행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철저하게 전략베이스로 돌아간다는 것. 바로 이 점이 양자간의 차이입니다. 전략이라는 단어가 가진 기존의 이미지로 인해 잊고 있을뿐 이미 스타트업 마케팅은 전략입니다.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말하는 실행안에 이미 전략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플리토는 성균관대야 번역계의 태평성대를 이끌어냈지
제 주관적인 경험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보다는 모두가 알만한 사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한참전. 대학원생신분으로 학내캠퍼스를 걷던 저는 특이한 형태의 현수막을 보고 응?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습니다.
플리토는 성균관대야 번역계의 태평성대를 이루어냈지!
아직도 기억납니다. 하얀색 현수막에 파란색 텍스트. 아니 반대였던가요.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이것이 마케팅 캠페인이라는 생각은 전혀하지못하고 그냥 아- 플리토 대표나 코파운더중에 성대출신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태평성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것이 그러했고 성균관대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대학과 비교하면 이상하게 알려진 창업자가 없는 대학이었기에 그래서 더 효과적이었던것 같았습니다. 마치 고시합격후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걸어주는 세레모니 현수막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아마 그 시절 캠퍼스를 걷던 다른 성대생들 모두 저와 같은 판단을 내렸으리라 짐작합니다.
속았다는 것을 알게된것은 그후로 한참뒤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인들과의 모임에 참석해 정부기관에서 통번역사로 일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번역업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자연스레 플리토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플리토라는 서비스는 제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에 성공했고 그때까지만해도 스타트업에 관심있는 극소수만 아는 서비스를 일반인에게 전파하는 에반젤리스트의 역할을 한것이죠. 그것도 무료로. 아주 열심히.
그런데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분들의 의견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적 혁신을 통해 컨베이어벨트처럼 집단지성번역을 한다는 개념. 결국 영어문장을 쪼개고 쪼개서 분업화하여 업무속도를 높힌다는 것인데아무래도 다들 유학경험에, 전문적인 분야에서 일 한다는 사람들이다보니 이 개념이 갖고 있는 모순점을 너무 잘 알고있었던 탓이죠. 기가막힌 일이지만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상대로 열심히 옹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플리토는 성균관대니까!
좀 더 플리토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내가 더 알아야한다는 생각에 집에 돌아와 플라토에 대한 자료를 모조리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뭐야 이건..하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플리토는 전국주요대학에 비슷한 컨셉으로 마케팅을 진행했던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보통의 마케팅처럼 비용을 때려박는 무식한 마케팅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마케팅 담당자가 치밀하게 단어와 문장을 선택해 오랜시간 고심해 만든 감성적 접근으로 고객과의 소통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일의 진면목을 알게된 순간 분노나 허탈함 보다는 와 얘네 뭐지 이 정도 비용이면 대체 어느정도로 마케팅 비용을 집행한거야. 거의 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집단지성번역에 필요한 써드파티들을 매우 손쉽게 확보하고 나같은 브랜드옹호자까지 키워 낸셈이잖아. 굉장한데. 비용대비 투입효과가 어느정도 나왔을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대단하다. 이런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역기반, 동네기반으로 브랜드를 연결한 사례
배달의 민족과 야놀자를 스타트업이라고 표현하기는 참 그렇습니다만 비슷한 마케팅 사례로 우아한 형제들, 야놀자, 스타필드 등이 존재함을 확인했습니다. 검색결과 플리토의 현수막 마케팅을 진행한 주인공을 확인했습니다. 아쉬운 일이지만 플리토의 내부인력으로 마케팅을 집행한 케이스가 아니었고 해당 대행사 혹은 동종업계에서 초정밀 마케팅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서 이슈몰이를 하고 그 기세에 힘입어 이후로도 비슷한 마케팅을 몇건 더 진행한것으로 판단됩니다.
배민과 야놀자의 경우 지역기반, 동네를 중심으로 밀착된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야놀자의 경우 버스에 광고물을 부착하여 재미있는 드립을 통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이나 버스광고를 통해 투입되는 비용이 TV등 매체광고와 비교하여 낮을뿐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생각만큼의 놀라운 느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사가 사실상 광고가 아닌가. 제가 이 마케팅을 진행한 대행사였다면 반드시 이름을 붙여 이슈를 창출했을것 같습니다.
배민과 야놀자는 이러한 마케팅 캠페인을 집행하여 저비용 고효율 타겟마케팅을 진행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투입된 비용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주목할만한 마케팅이기는 하지만 플리토만큼의 파격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행사 기준으로 보면 이러한 마케팅을 집행했다는 것은 꽤나 이슈가 될만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업무 자체가 벽돌 쌓듯이 찍어낼 수 있는 마케팅이 아니고 하나하나 한땀한땀 공들여 작업해는 카피라이팅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초정밀 마케팅이라 이름은 참 잘지은것 같은데 앞으로도 이러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마케팅이 종종 보이게 될것 같은 예감입니다.
최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스타트업 마케팅이 과학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실패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대기업만큼의 리소스 없이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야하는 것이 스타트업이고 스타트업 마케팅입니다. 스타트업의 마케터는 어떠한 외부의 도움이나 지원조직의 서포트 없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200%, 300%의 효율을 달성해야 합니다. 보통의 마케팅이 상당부분 기획베이스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스타트업에서의 마케팅은 분명 영업이고 세일즈이고 현장에서의 실행베이스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검토해본 결과 플리토도 처음부터 딱 이거다하는 방식의 마케팅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좌측의 마케팅과 우측의 마케팅은 퀄리티 측면에서 그 수준이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수막을 기반으로 카피문구의 본질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마케팅을 진행한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노동강도와 싸우는 일입니다. 초정밀마케팅의 핵심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고 해당대학의 대학생과 공감대를 창출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생각과 고민을 요구하는 것일테니까요.
결국 초정밀 마케팅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마케팅을 진행한 '마케터'본인이 중요한 것입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비슷하게 이런 방식을 따라하려고 해봤자 그만한 역량이 안되면 이 캠페인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용을 때려박아 해결하는 방식과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까요.
저는 급하면 급할수록 본질을 생각하고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의 고민과 생각은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 발로 뛰며 세우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플리토의 현수막 마케팅 사례와 같은 마케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요. 책상에 앉아 데스크에 앉아 고민한 결과물은 아닐것입니다. 평소 해당 마케팅을 진행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지 끝없이 고민한 결과물인것이고 글자 하나하나 문구 하나하나를 공들여 정성스럽게 써낼 수 없는 크리에이티브가 없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 방법이 현수막이 되었든 이메일이 되었든, 온라인 상의 배너광고가 되었든 페이스북 콘텐츠가 되었든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가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서 어떤 공감대를 던지고 있는가. 무엇으로 대화를 시도하는가. 최선을 다해 그만한 노력을 다하고 있는가입니다. 최초로 MVP를 만들어내고 시제품을 들고 거리로 나가 고객을 만나 판매를 시도한다면 어떻게 첫마디를 시작해야 할까요. 내가 얼마나 이 제품에 공을 들였는지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지 이 제품이 경쟁제품 대비 얼마나 대단한지 이런건 중요치 않습니다. 그런건 그 이후의 과정에서 일어나게 될 일입니다. 최초의 커뮤니케이션은 고객과의 공감대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렇게 상대의 관심을 끌고 그 다음에 본론으로 넘어가는 것이 영업이고 세일즈인것이죠.
결국 스타트업 마케팅은 이 고객과의 공감대를 어떤 전략을 통해 수립하느냐로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퍼포먼스 마케팅이다 데이터분석이다 다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것은 전략입니다. 전략이 없어도 퍼포먼스 마케팅을 통해 KPI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전략이 있다면 그 비용과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의 전략이란 기존의 전략이라고 하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이미지, 그 스타일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장중심으로 직접 책임을 지고 업무에 뛰어들어 리스크테이킹을 가져가는 생각하는 마케터만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 오직 그 위치에서만 보이는 문제와 해결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아하게 마케팅 하는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마케팅은 손을 담궈야 하는 고된 작업을 수반하는 과정으로부터 비롯되니까요. 현장에 나가 고객을 만나본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을 낼 수 있으며 그것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마케팅은 영업과 세일즈를 동반하는 과정입니다. 아니 영업과 세일즈에서 출발합니다. 바로 내가 나가서 하는 것입니다. 영업팀이나 지원팀이 따로 할일이 아니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