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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수 Sep 14. 2022

나에게 돈은 무엇이었나?

#철밥그릇도돈돈합니다#돈은행복한삼시세끼다

돈을 벌지 못했으면 어쩌면 모르는 세계가 있었을 것 같아요. 그나마 버는데 편안한 돈, 철밥그릇 공무원의 월급이었지만 그래도 그렇습니다. 그 돈으로 또 명품가방 하나 사고 취미 삼아 다녔으면 또 모르는 세계가 있었을 것 같아요. 나작가는 그 돈으로 가족의 옷을 사고, 특히 친정아버지를 모셨고 아이 둘을 그래도 철마다 새 옷 사 입히고 길을 가다가 먹고 싶다는 치킨도 사주고 철부지 아이의 엄한 요구도 들어주고 그랬습니다. 결국 생계비였어요. 그러고 보니 유튜브 먹방을 봤는지 어느 날은 먹지도 않을 고추장 게장도 사달라고 떼를 썼네요.

돈을 버는 것. 단 돈 오만 원이라도 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대학시절 아버지가 학비는 감사하게도 마련해 주셨는데 생활비는 늘 쪼들렸어요. 유학생은 거주비와 교통비 생활비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갑니다. 그 당시 과외를 했었고, 임용고시 재수를 하면서는 학원강사도 했었네요. 빵집 아르바이트로 시급도 받았었고, 학원강사는 타임별로 급여를 줬어요. 떼이기도 하고, 그땐 벌어야 옷이라도 사고 신발도 사고 예쁘고 싶어서 벌었던 것 같아요.

젊음을 어떻게 살아냈나 모르겠어요. 치열하게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행복하기도 했고, 더없이 절망스럽기도 했어요. 청춘이 그런 거죠. 결혼하니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는 지극히 안정적이어야 했어요. 아픔도 허용치 않아요. 두 아이는 그래요. 병환의 아버지도 그랬어요. 저는 아픔도 욕망도 없어야 했어요. 김치 국물 무치고 머리는 찔끔 묶고 9시에 한 번 출근해야 했고, 오후 5시면 또 집으로 다시 출근을 해야 했어요.

그 와중에도 급여는 따박따박 들어왔어요. 철밥그릇 직장에서 벌어오는 돈은 나도 모르는 사이 우리 가정의 생계를 유지했고, 나를 이만큼 세워 준 것 같아요. 내 옷 사고 내 구두 사고 신데렐라처럼 쓸 줄 알았던 그 돈은 어느새 생계비가 되었어요. 특별히 계획한 바도 아닌데 고정적인 그 수입이 어느새 그리 중요했어요. 필요한 곳에 그 돈이 다 제 역할을 잘 해냈어요. 두 아이도 이만큼 키웠어요. 아버지도 당당하게 모셨고, 시댁의 요구사항도 늘 있었지만 내 돈에서 풍겨 나오는 당당함에 기가 눌리는지 어느새 힘 빠져 맥없는 요구사항이 됩니다.

시대가 그런 것 같아요. 돈이 그리 중요해요. 돈이 결국 자존감이고 돈이 결국 가족입니다. 가족을 유지해요. 돈이 없으면 일단은 가족이 행복하지 못해요. 마음 편안히 한 곳에 둥지를 틀고 배부른 삼시 세끼를 마음껏 먹을 수 없어요.

철밥그릇 공무원도 공부합니다. 돈이 가족의 삼시 세끼라는 것을 가족을 지키며 알게 되었거든요. 돈을 벌지 않으면 어느새 잃게 되는데 왜 그리 되는지 그 매카니즘은 잘 모르겠어요. 돈을 잃지 않고, 세상을 볼 줄 알고, 흔들리지 않는 법. 적어도 돈의 유혹에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이 공부에 또 담겨있어요. 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겠지요? 돈의 냉정함을 버텨 내는 것도 돈을 버는 것일지 몰라요. 어쨌거나 벌고 있어야 돈의 위기도 버텨내고 돈의 기회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김승호 회장님의 돈의 속성도 읽고, 모건 하우절의 돈의 심리학도 정독하며 파 보았는데 돈을 다스리는 게 저에게는 아직 쉽지 않아요. 여전히 잘 모르기도 해요.

고정적인 수입을 받는 공무원은 사실 부모가 주는 돈을 받는 것과 같아요. 눈치 볼게 부모보다 훨씬 많아요. 품위유지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아직 돈을 벌어서도 안되고 돈을 사랑하는 것도 은밀하게 숨겨야 해요. 그러나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금새 시간은 흘러 수십 년을 다니던 그곳에서 어느 달은 급여가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급여만 중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 나의 자존감도 거기서 중단될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고 한창을 버는 50년의 시간 동안 저도 또 아이 옆에서 자라고 있을 것이기에 그 아이 옆에서 뭐라도 하며 돈 벌고 있으려고요. 아이 옆에서 엄마가 힘들면 아이는 엄마가 신경 쓰이고 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야 하는데 쪼그라들고 기 못 펴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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