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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솔 May 22. 2023

팬과 애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핑크에 대한 두 종류의 사랑

한 사람을 짝사랑하는 이들 또는 누군가의 양다리에 걸쳐진 애인들은 서로 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 명의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들은 똘똘 뭉쳐 원 팀이 되기 쉽지요.


핑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존재를 사랑하는 팬들과 애인들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때는 고등학교 3학년, 대학원에서 미술 심리를 공부하던 담임 선생님은 어느 날 아이들에게 집을 그려 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1:1로 해석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죠.


차례가 되어 교무실에 갔을 때 선생님은 그림보다는 색을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운을 떼셨어요. 역시 주제는 핑크. 선생님은 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핑크색은 어쩌면 병일 수도 있어.


다른 건 다 배제하고 핑크색 물건 들고, 핑크색 외투만 걸치고 다니니 선생님은 걱정하시는 모양이었어요. 핑크색을 통해 가 표현하고 싶은 건 사실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내내 마음이 아렸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뿐인데 이걸 왜 병이라고 하시나 하는 뾰로통한 마음뿐이었죠.


하지만 그 말은 마음에 오래 머무르다 결국 핑크를 좋아하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예컨대 이런 모습을 발견했죠.

1. 다른 옵션이 있어도 생각도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핑크를 고르던 , 당장 필요한 무언가 있어도 핑크색이 아니라면 시무룩해하던 모습


2. 친구들과 커플 모자를 맞추거나 옷을 맞출 때에도 친구들은 ’ 네가 핑크 좋아하니까 핑크색 해.‘라는 말로 내게 양보하곤 했는데,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너는 핑크하고 싶은 마음 없어?‘라고 되묻지 않았던 모습


3. 내심 핑크에 있어선 내가 최고이길 바랐던 마음. (새로운 학년이 되어 만난 같은 반 친구 중 누군가 핑크색 물건을 많이 들고 오면, '쟤도 좋아하는구나, 그래도 내가 여기선 제일 핑크짱이어야 해'와 같은)


다 큰 가 핑크색을 좋아한다는 건 흔히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곤 했고, 그걸 용기 내어 내보이는 비슷한 이미지의 누군가가 주변에 있지 않길 바랐습니다. 핑크색으로 모습이 독보적이고 특별해 보이길 바랐다는 걸 깨달았죠.


어릴 적의 핑크를 독차지해 유일한 연인되어 핑크와 일부일처제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만 알고 싶은 OO, 나만 좋아하고픈 OO처럼 게도 핑크란 그 빈칸에 들어가는 단어였던 거예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누가 핑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마트에서 카트를 타고 지나가는데 건너편 카트에 탄 아이가 보다 핑크색 물건을 많이 담으면 심술이 났습니다.


핑크를 바라보는 마음이 애인일 때는, (물론 핑크가 주는 행복은 정말 빛났지만) 마음속 견제와 경쟁으로 불편할 때가 있곤 했어요. 흔하진 않았지만, 어디서나 갑자기 또 다른 핑크둥*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핑크둥*: 핑크+사랑둥이의 줄임말로, 핑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 내가 지은 말.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핑크의 애인이 아니란 걸요. (물론 애인이더라도 너는 내 거야. 어디도 못 가. 누구도 못 만나! 이러면서 소유욕+집착을 펼치는 건 절대 옳지 않지만요)


핑크는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연예인 같은 존재라는 것도요. 저는 그저 팬이며 핑크색을 좋아하는 이들도 같은 팬일 뿐입니다.


핑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째려보는 적이 아니라 함께 하나의 존재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기뻐하는 무리이죠.


그런 마음을 깨닫고 난 후에는 길을 걷다 분홍색으로 온몸을 꾸민 사람을 보거나 카페에서 마이멜로디 필통을 꺼내놓고 핑크색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도 모르게 미소를 짓습니다. '저 사람도 분홍색이 주는 행복을 아는구나, 내가 겪었던 것처럼 따가운 시선으로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평화로워졌어.


한 사람을 애인으로 둔 여러 명은 슬프고 화나고 잡한 감정이 들 수 있지만, 한 존재의 팬들은 함께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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