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요즘은 이메일이 상용화되어 누구나 메일 주소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바야흐로 전자 소통의 시대. 이제 내가 가진 메일 주소 하나면 외국에 사는 사람들과도 직접 그리고 즉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메시지와 메일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오가는 오늘날. 대부분의 메일함은 수많은 스팸들과 자신이 가입한 여러 웹사이트로부터 받기로 동의한 행정 절차상 필요한 메일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전자 소통시대의 상황이다.
이러한 시대에 지우지 않았으나 앞으로 지울 예정인 많은 메일들 사이에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메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그 많은 메일들과 메시지함을 가진 자들 중 자신의 메일함을 기대와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전에는 메일함 비우기를 하며 깔끔한 메일함을 관리하느라 시간을 보낸 적도 있는 사람들 중 이제는 메일을 확인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나뿐일까.
이와 반대로 이전에는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 시절, 편지 한 장은 내가 기다리는 존재 자체를 대변했다. 편지를 대하는 자세도 참 진지했다. 편지를 보낸 자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 자체. 마음 담은 편지 한 장은 목마른 자에게 주는 시원한 물과 같다고 성경의 잠언은 이야기한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잠언 25:25)
복강(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민족 시인 윤동주는 동생 윤일주와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윤일주는 형에게 "붓 끝을 따라온 귀뚜라미 소리에도 벌써 가을을 느낍니다."라고 쓴다. 시인 윤동주는 "너의 귀뚜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라고 답한다. 그가 머물던 독방은 조국의 귀뚜라미 소리조차 그리워했을 정도로 외로웠지만,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자신의 상황을 절망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는 넉넉함이 있음을 그의 편지는 말한다.
여기 편지를 읽는 한 여인. 그녀의 그리움, 기대와 설렘을 포착한 화가가 있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그는 먼 곳에서 온 글을 읽는 그녀의 태도에 집중한다. 편지를 쥔 손 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고 먼 곳에서 온 편지를 읽는 그녀의 태도는 사뭇 진지하다. 편지의 내용을 놓칠세라 글귀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그녀의 눈. 손과 손을 마주 잡을 수 없는 상황에 편지라도 꼭 잡을 수밖에 없는 간절함. 편지는 이처럼 몸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소통이 일상이 된 요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소식을 원하는가? 우리는 편지 한 통으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다는 것을 안다. 전쟁의 소식으로 긴장을 놓지 못하는 요즘. 읽는 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먼 곳으로부터의 좋은 소식 담은 편지 한 통이 그리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