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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Apr 18. 2022

부활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요한복음 11장 25절  

<두 도시 이야기>는 찰스 디킨스가 이미 수많은 작품을 선보인 후 유명세를 떨치던 말년에 썼다. 디킨스가 지명한 두 도시는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가 다스리던 영국과 턱이 큰 왕과 예쁜 왕비가 다스리던 프랑스이다. 둘 다 정치적 혼란, 가난, 굶주림에 허덕이며 살아갔으나, 프랑스가 조금 더 격분의 세월 보냈음을 그의 책을 통해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책은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의 <프랑스 혁명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사실 위에 쓰였다.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인 듯 묘사하는 그의 필체를 통해 우리는 당시의 그림을 들여다볼 수 있다. 굶주림은 "자신과 어울리는 곳이면 어디든 깃들었"고 "가게 수만큼 많은 간판에는 모두 지독한 가난이 그려져 있었다."


비밀이 무성하며 부조리가 만연했던 그들의 . 그는 “볼수록 인간다워지고 심성이 고와지는 '태형 기둥'이라는 형벌 도구, 날카로운 여인의 이름을  기요틴이라는 새로운 발명품"  당시 무시무시하던 형틀에도 풍자를 더해  날을 무디게 만든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해학 넘치는 풍자와 빛나는 묘사 덕에 당시의 어둠은  깊고, 핏빛은  붉게 보인다.  


<두 도시 이야기>는 부활이라는 기독교 중심 교리를 저변에 깔고 전개된다. 서양 인류의 핵심 종교였던 기독교는 죽음과 부활의 종교이다.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으나 그 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살아나셨다. 이후 우리의 역사는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몰아간 악의 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 권세를 이긴 선한 능력 사이에 존재하던 긴장의 두 축이 여전히 끊임없이 삶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 속에서 지속되는 삶을 휘청대는 걸음으로 살아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가 바로 역사인 것이다.


죽지 않으려 몸부림쳐도 때가 되면 모든 사람은 죽는다. 권세가 있어 세도를 떨치며 죽음이 자기 삶에 오지 않을 듯 호기롭게 사는 사람도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 한가운데에서도 역사적 사명을 띤 개인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조금 더 산다. 역사 속 이 진실은 그의 소설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프랑스 파리 감옥 바스티유 '북탑 105호'에 18년간 억울하게 감금되었던 죄수는 프랑스 보베 출신 의사 알렉상드르 마네뜨.


프랑스 감옥에서 겪은 박사의 비밀스러운 기억들은 그의 삶에 어둠을 드리웠고, 그는 18년 동안 분노와 억울함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무런 희망 없이 죽음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그의 딸 루시를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무대는 다시 영국.


루시는 자리를 잃었던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죽었던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비한 힘이 있다. 루시의 신비한 그 힘은 주변의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나게 하며, 오랜 세월 어둠의 그림자로 숨 막히게 살던 아버지도 숨 쉬게 한다.


찰스 다네이는 프랑스 귀족이지만 귀족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며 화려한 생활을 하는 대신,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찰스는 미국의 스파이 노릇을 한 죄로 밀고를 당해 영국의 재판정에 선다. 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아버지 마네뜨와 그의 딸 루시는 그렇게 찰스와 인연을 맺는다.


찰스는 사형선고를 피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분위기의 재판정에서 변호사 스트라이버와 그의 친구 시드니 칼튼의 변호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이 일 후에 찰스는 루시를 사랑하게 되고, 칼튼도 루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루시는 찰스 다네이와 결혼을 한다.


이야기를 더 도드라지게 만드는 주변 인물들은 나름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프랑스에서 마네뜨 박사의 하인이었던 프랑스인 드파르지와 그의 아내 마담 드파르지. 쉴 새 없이 뜨개질을 하면서 모든 정보를 뜨개 질감에 담는 마담 드파르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의 표상이다.


그러나 여주인공 루시를 병아리라 부르며 엄마 없는 아가씨의 엄마 역할을 훌륭히 해낸 보모 미스 프로스는 사랑과 선의 표상으로 자리매김한다. 게다가 딸과 아버지 그리고 모든 위험한 순간, 삶의 사이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성실히 해내는 텔슨 은행 실무자 자비스 로리는 정직과 성실로 그의 삶을 일관한다.



이들을 한 순간 격동의 세월 한가운데로 엮어준 사건: 1789년 7월 프랑스 대혁명.


<두 도시 이야기>는 한 가정과 그와 관계된 인물들이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삶을 얻어내는가를 보여준다.


디킨스는 피를 부르던 혁명 속에 내던져진 인물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의 힘으로 굳게 설 것만 같았던 그들의 자신감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삶은 다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그 물결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채 흔들린다.


결국 역사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또는 개인의 바람을 그대로 이루지는 못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을 뒤바꿀만한 힘은 그저 나약하고 힘없는 개인에게서 나오지 않고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한 분에게서 나옴을 인식하게 한다. 다시 죽음의 그림자가 덮일 때, 그들을 살리는 것은 위로부터 부어진 능력이며, 빛으로 가득한 하늘의 부르심이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도 불사하는, 내면에 고이 간직된 사랑의 힘이다.


그러나 악으로 가득한 자들은 그들에게 보이는 사랑을 애써 부인한다. 그들은 과거부터 자신을 붙들고 있던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자신을 이끄는 무관심과 무자비라는 지옥의 세력 속으로 점점 더 단단히 이끌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그 속박으로 자신들을 점점 더 강하고 단단하게 무장한다. 얽히고설킨 그들의 관계는 때로 연민을 불러일으키나 악은 점점 더 악하게, 사랑은 점점 더 애타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럼에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예수의 말씀 속에서 평안을 얻고, 주어진 운명의 한 걸음을 걷는 칼든 속에서 우리는 부활이 주는 소망을 본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자를 살리기 위해 죽음에 자신을 내던지는 자의 삶은 끝이 없는 영원한 삶을 여는 문, 부활과 맞닿아 있다.


결국 죽음은 끝이 아님을, 그리하여 사랑은 죽음 이후 부활이라는 문을 열고 영원한 삶으로 걸어 들어가 시간의 단절을 넘어 영원까지 이를 것이라 이야기하며 디킨스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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