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그러니까 영국>을 읽고
내 인생을 통틀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를 세어 보라고 한다면 무수히 많아 손가락으로 셀 수 없다. 그렇다고 가 본 나라가 없지는 않다. 그럼 가보지 않은 나라 중 제일 가본 것처럼 익숙한 나라를 꼽아보라 한다면 그곳은 바로 영국이다. 어린 시절에는 동화로, 좀 더 커서는 영국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로 그 나라를 접했다. 영화 속에서 본 영국의 모습이 내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는 한, 비록 필름의 영상이 내 눈 망막에 맺힌 것뿐이라 해도 가 본 적 없으나 가보지 않았다고 아예 그 나라를 모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영국이란 나라 이름이나 도시의 풍경, 영국 작가의 이름이나 지명이 그 나라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에게 익숙하다고 해도 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본 사람만큼 그 나라를 잘 알 수 있을까.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보고 그들이 쓰는 언어로 함께 대화해 본 사람들, 또는 그들 고유의 역사적 장소가 주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누려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똑같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 나라 시장을 방문해 물건들을 직접 고르며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사고 파는지, 그 나라의 교통수단과 신호등 체계가 어떤지 그 나라를 방문해 직접 경험한 사람이 더 잘 알 것이다. 또 비가 많이 오고 해를 보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그 나라 기후에 대하여 아는 것은 내가 들었던 그 정도 수준이다.
한 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인종, 문화 등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카테고리의 통합된 과거가 역사이다. 우리가 어떤 나라를 안다고 할 때, 그들이 사는 공간 속에서 현재를 경험해 보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간 과거의 일들을 아는 것을 포함한다. 역사는 세대와 세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건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이것이 한 나라의 역사로 인식되고 사회 공동체 속에 녹아 그들의 문화가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이처럼 한 나라 안에 쌓인 역사는 자연스럽게 그 나라 사람들만의 세계관, 가치관을 형성해 간다. 따라서 한 나라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연구는 지하철을 타보고 시장을 가보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보는 등 그들의 현재적 일상의 표면을 경험해보는 것보다 훨씬 깊은 그들의 내면을 경험하게 해 준다.
우리는 책과 영화, tv다큐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직접 가보지 않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을 연구하며 알아갈 수 있다. 그중 그래도 우리에게 다른 나라를 알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한 연구 자료는 아마 책일 것이다.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등을 지면을 통해 골고루 알려주어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가치와 신념 등을 이루는 주요 생각들을 공부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준다. 거기에 이미 그들의 현재가 되어버려 표면적으로는 알 수 없는 그들의 문화, 관습, 역사를 알아가며 그들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주니 책은 인류에게 참 유용한 도구이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는 책으로 떠나는 여행이 우리의 외국여행에 대한 욕구를 조금이나마 다독여 줄 수 있으니 여행도 가고 지식도 얻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해준다.
물론 책으로 떠나는 여행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 고유의 냄새를 기억할 수 없다는 것과 발과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목적지를 정할 수 없어 책의 저자가 이끄는 길로 밖에 갈 수 없다. 또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자로서의 두근거림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화려한 쇼윈도 너머 우리를 유혹하는 물건들을 차마 지나칠 수 없어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도 없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가벼운 눈인사 속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다정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은 우리가 팬데믹 상황에 가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여행지와 맛볼 수 없는 음식 등을 순간 포착한 감각적인 사진들을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마련해 놓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넓혀주며 역사와 각종 상식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니까 영국>의 저자는 영국에 사는 한국인이다. 영국을 직접 갈 수 없는 코로나 시기. 이 책은 영국이란 나라에 대한 다양한 상식을 두루 알려 준다. 무엇보다 독자들을 위해 한국과 영국을 비교해서 설명해 주는 부분들은 영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우리가 방문하면 좋을 역사적인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문화와 교육, 공동체의 특성도 알려 준다. 이 책의 저자는 이야기의 골이 너무 깊어 흥미를 잃지 않을 만큼, 반대로 깊이가 너무 얄팍해서 지적 호기심을 멈추지 않을 만큼의 깊이로 우리를 인도한다.
"천국에서는 영국인이 경찰을 하고, 프랑스인이 요리를 하며, 독일인이 차를 고친다. 그리고 지옥에서는 독일인이 경찰을 하고, 영국인이 요리를 하며, 프랑스인이 차를 고친다."라는 농담이 있다.(p212)
저자는 영국의 경찰은 배려심이 깊고 친절하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런던의 템즈 강변에 위치한 경찰청은 'New Scotland Yard'라는 간판 뒤에 위치하지만 경찰청의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영국의 권력은 겸손하며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신분증 없이 투표하러 가는 나라, 의회인 웨스트민스터나 정부청사, 국내선 비행기를 탈 때도 신분증이 필요 없는 나라. 면허증을 받기 위해 운전면허시험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이 우편으로 우리나라 면허증을 송부하면 영국 운전면허증이 배달되는 나라. 저자는 우리나라와 다른 영국의 특징을 머리말에 소개한다.
또한 저자는 카자흐스탄에서 살았던 경험과 영국에서의 경험을 비교한다. 경찰이 길거리에서 언제 신분증을 보자고 할지 몰라 항상 신분증을 소지해야 했다던 카자흐스탄. 그는 "길을 걷는 개인에게 불시에 신분증을 요구하는 카자흐스탄이 있고, 신분증 자체가 없는 영국이 있으며,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나라가 있다."(p5) 고 기록한다.
그는 각각의 사회는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그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궁금해졌다. 이러한 질문은 동네 우체국에서 서류를 받은 순간부터 시작되어 그의 '런던 라이프'를 소재로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도 사회가 잘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독자들을 위해.
영국은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는지, 반유대주의는 어떻게 유럽에서 시작되었는지, 영국에서는 왜 관공서를 발견하기 어려운지, 영국 명문학교의 전통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왜 영국인은 로열패밀리를 사랑하는지, 영국과 프랑스는 왜 사이가 안 좋은지.
위의 저자의 질문을 따라 책을 읽어 간다면 영국이란 나라에 대하여 조금 더 친숙해지며 우리의 상식에는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그러니까 영국>이 도대체 어떤 나라라는 건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