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와 펭귄 이야기 <긴긴밤>을 읽고
루리, <긴긴밤>을 읽고
코뿔소 한 마리가 코끼리의 보살핌 가운데서 자라난다.
자신이 코끼리인 줄 알다가 코뿔소임을 알게 된다.
그 코뿔소의 이름은 노든.
그는 코끼리의 무리에서 나와 코뿔소로 살아간다.
아내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인간에게 아내와 딸이 무참히 살해된다.
노든은 그 후 동물원에 잡혀가
동물원에서 태어난 코뿔소 앙가부를 만난다.
앙가부는 노든에게 바깥세상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노든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인간들에게
복수를 꿈꾸지만 앙가부는 노든에게
사람들이 꼭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준다.
둘은 동물원을 탈출하기로 하고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탈출하기로 시도하기로 계획 세운 전날
노든의 다리가 아파서 치료받으러 간 밤 사이,
앙가부는 코뿔소 밀렵 군들에게 뿔을 잘리고 살해된다.
다시 혼자가 된 노든은 이제
세계에서 유일한 흰바위 코뿔소다.
그러던 사이 동물원에서 태어난 펭귄 치쿠와 윔버는 낯선 알을 하나 발견하고 품는데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 윔버는 죽고
치쿠는 품던 알을 바구니에 담아 바구니 끈을 입으로 물고 도망간다.
노든은 탈출을 원했지만 탈출하지 못했었는데
전쟁으로 담장이 무너져 동물원을 누구의 저지도 없이 빠져나온다.
코뿔소 노든과 펭귄 치쿠는 그렇게 만나게 된다.
코뿔소 노든은 펭귄 치쿠와 함께 바다로 가기로 한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둘은
어디로 가야 바다인지도 모른 채 그저 걷는다.
풀 사이에서 잠도 자고 걷다가
전갈도 만나 위기도 모면하고 함께 먹을 것을 먹으며
긴긴밤 이야기도 나누며 그렇게 함께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치쿠는 힘이 다해 죽고 알은 깨어난다.
알에서 깨어난 펭귄을 바다로 데려다주겠다고 치쿠에게 약속한 노든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끼 펭귄을 정성껏 데리고 바다로 간다.
긴긴밤에는 아기에게 이야기를 해 주며 재우고
낮에는 끝도 없어 보이는 길을 걷는다.
그러던 어느 날 노든도 힘이 다하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치쿠는 노든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함께 있다가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 바다로 떠난다.
노든이 해 주었던 이야기들과 함께.
노든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눈을 감고 긴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p81
"내가 아프거나 무서워서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악몽을 꾸지 않는 방법이라며 옛날 얘기를 해 주었다. 나는 노든의 가족과 코끼리들, 앙가부, 치쿠와 윔보의 얘기를 들으면서 밤을 견뎠다. 그러다가 내가 잠이 들면 노든은 나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p83
아이들을 재우는 것은 엄마들에겐 종종 하루 중 마지막에 해야 하는 숙제 같은 의식이다. 아이가 잠을 잘 안자는 아이들일 경우, 이것은 때로 곤혹스럽기도 하다. 아기가 분유나 젖을 먹는 경우엔 등을 두드리며 트림을 시켜야 하고 아기를 밤새 안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조금 더 크면 잠을 청해야 하는 시간인데 물 마시러 캄캄한 식당을 왔다 갔다, 화장실도 들락날락하며 도통 잠잘 생각이 없는 아이도 있다. 잠자기는 이렇게 아이들에게는 참 힘든 영역이다. 그 기나긴 밤 캄캄한 곳에서 홀로 밤을 지내기는 어른들도 쉽지 않다. 하물며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이 경우 잠자리에서 엄마 아빠가 해 주는 이야기가 아이들이 잘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잘 알려져 있는 작가들 중 아이들 잠자리 이야기로 해 주었던 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 유명해진 경우가 많은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잠자리 이야기들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들을 씻기고 자리에 뉘어 몸을 비비며 나긋나긋한 소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면 어느새 아이들은 잠자리로 빠져 들어가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어떤 때는 아이들은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하지만 이미 엄마 아빠는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드는 경우도 많다.
내가 아는 어떤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주어도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분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꽤 긴 판타지 소설을 읽어가며 해 주었다고 하니 아이들마다 특성이 있고 가족마다 특색이 있다.
긴긴밤의 주인공 코뿔소 노든은 아기 재우기의 달인이다. 얼떨결에 떠안고 키우는 펭귄이지만 노든은 아기에게 정성을 다한다. 긴긴밤 동안 노든은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를 밤마다 해 준다. 코끼리 이야기, 아내와 딸의 이야기, 앙가부, 치쿠와 윔버, 그리고 검은 점이 박힌 불운한 알의 이야기를. 어떤 것은 이미 들었고 어떤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자라난 펭귄은 이제 자신이 홀로 맞아야 할 긴긴밤을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들과 함께 살아내기로 다짐한다.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가 해주었던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고 세상에 발을 디딜 것이다. 오늘 밤도 우리가 재우는 아이들 속에 아름다운 이야기들 새겨지도록, 부모님들 마음속에 아이들에게 들려줄 새로운 이야기들이 샘솟듯 솟아나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