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 조각>을 읽고
초등학생 시절 우연히 인상파 화가의 그림들을 보았다. 모네의 <아르장뙤이유 부근의 개양귀비꽃>과 르느와르의 <이레느 깡 단 베르양의 초상>이었다. 그림 감상에 딱히 설명도 필요 없었고 그냥 그림들이 예뻐 보고 또 보았다. 그 후로도 그 그림들은 볼 때마다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그 그림들에 있었다.
이처럼 어떤 그림은 보기만 해도 좋다. 하지만 어떤 그림은 기괴하다 여겨져 내적으로 반감이 드는 그림들도 있다. 마네의 그림은 나에게 있어 호감과 반감 사이의 중간 즈음에 있는 그림이다. 개인적으로 마네의 그림은 그리 기괴하지 않고 평범하나, 볼 때마다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고 마음 설레게 하는 호감 가는 류의 그림은 아니기 때문이다.
확실히 마네의 그림은 인상파에 속한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과는 무언가 다른 감이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그림을 보며 단번에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 해석자의 지혜를 빌려 이해하면 된다. 다행히 사상계를 주름잡던 몇몇 철학가들은 마네의 그림을 사랑했고, 그의 그림에 대한 해석을 정리해 후대에 남겨 두었다.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 조각>의 저자는 푸코와 사르트르 등 프랑스 철학자들의 책 여러 권을 우리글로 옮겨 번역할 정도로 실력 좋은 불문학자이자 저술가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푸코와 프리드, 바타이유 등 여러 사상가들의 시각에서 해석한 마네 그림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네 이전의 회화
마네 이전의 회화의 특징을 먼저 살펴보자. 마네 이전의 회화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선 원근법으로 그림에 깊은 공간을 그려 넣었다. 소실점 너머 어딘가로 우리의 시선을 인도하고 소실점까지 이어지는 사선들을 통해 회화의 깊이를 추구했다. 둘째로, 어디선가 비치는 빛으로 등장인물들과 물체의 음영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빛은 그림 어디선가 항상 비쳤고 빛의 방향에 따른 그림자 묘사로 입체감과 거리감은 더 실제처럼 보이곤 했다. 셋째로, 그림을 보는 자리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그림을 그려낸 화가의 자리는 곧 관객이 서서 그 그림을 보아야 하는 한 자리가 되었다. 그 지점을 벗어나면 그림의 진가를 알아채기 힘들었다. 이처럼 원근법과 내적 조명, 관객의 자리는 고전 회화의 미술사를 통해 전해지는 세 가지 특징이었다.
마네, 논란의 중심
마네 이전의 그림에는 고전 회화의 특징들이 잘 나타난다. 그런데 이제 마네가 역사에 등장한다. 마네는 1863년 <풀밭에서의 점심>을 살롱전에 출품했다가 낙선한다. 살롱전은 프랑스에서 열리던 국가가 관리하던 프랑스 미술 공모전이다. <풀밭에서의 점심> 은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를 마네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그려낸 그림이다. 마네는 1865년 살롱전에 <올랭피아>를 다시 한번 출품하지만 이 또한 낙선한다. 이 그림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변용한 그림이다. 마네는 살롱전에 거듭 낙선했지만 그의 그림들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마네와 함께 살롱전에서 낙선한 사람들은 속칭 '마네파'로 불리며 1874년 낙선한 그림들을 모아 '앙데팡당'(Independant) 전을 연다. 이들은 훗날 인상파로 불리게 된다.
푸코의 시선
미셸 푸코는 1966년에서 68년까지 튀니스 대학에서 4학년을 대상으로 미술사 강의를 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튀니스 대학에서의 푸코의 강연 녹취록이 발견된다. 2004년 이 녹취록을 바탕으로 <마네의 회화>라는 책이 출간된다. 그 안에 실린 마네에 대한 푸코의 시선을 살펴보기로 한다.
푸코는 마네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마네는 '회화 공간'의 성질, 즉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을 표현하곤 했던 그동안의 회화 기법을 탈피했다. 이는 전통 회화의 환영 주의(幻影主義)를 거부한 시도이다. 또한 수직 수평선의 반복 사용과 그림 내부에서 비쳐오던 빛의 음영을 정면에서 비추는 빛에 의지하게 함으로 회화의 평면성과 물질성을 부각한다. 또한 관객의 자리를 그림의 정면에 고정시키는 전통적 회화의 방식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다니며 색채의 조합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관객의 자리를 열어 놓는다.
1. 공간 처리
- 화폭의 공간은 평면이고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는 사각형의 사물일 뿐이다.
마네 이전 회화에서 사선과 소실점으로 보이던 깊이 있는 공간감은 마네의 그림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네 그림 안에서 공간감은 수직 수평선으로 철저히 차단되고 평면화된다. 또 가로와 세로선의 반복 표현으로 마네는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는 단지 사각형 기하학적 모양을 가진 직조된 헝겊조각에 불과한 천일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오브제 이상의 가치가 없음을 말한다. <막시밀리앙의 처형>, <튈르리 공원의 음악회>, <아르장퇴이유>, <온실에서>, <맥주홀 여급>, <철도> 등에서도 마네의 회화기법을 통해 동일한 주장이 나타난다.
2. 조명의 문제
- 마네의 그림에 어딘가에서 비쳐 내려오는 내적 빛은 없다. 따라서 그림자도 없고 그 결과 양감도 없는 인물들의 모습은 납작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림자 없이는 양감의 표현이 불가능하다. 또한 배경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한 그림들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경한 장면이었다. 그의 그림은 여타 당시 다른 화가들의 그림처럼 재현적이었으나, 평면적이었다. <발코니>, <풀밭에서의 점심>, <올랭피아> 등에서도 그림의 내적 조명은 부분적으로 존재하나 거의 사라진다. 빛은 외부에서 들어올 뿐, 그림 내부에 비치는 빛은 없다고 마네는 말한다.
3. 관객의 자리
- 관객이 서 있는 자리는 한 군데가 아니다. 따라서 화가가 그림을 보아야 하는 관객의 자리를 지정해 놓는다는 것은 작가가 그림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마네는 폴리 베르제르 바에서 회화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작가의 주도권을 내려놓는다.
폴리 베르제르 바의 여인은 정면을 응시하고 서 있다. 뒤에 보이는 것은 전면 거울에 비친 상이다. 마네는 광학적 상식을 거부하고 여인의 뒷모습과 그 앞에 서 있는 남성의 모습을 화면의 우측에 자리하게 한다. 상식적으로 여인 뒤에 바로 붙어 있어야 할 여인의 뒷모습이 오른쪽으로 돌아서 있다. 회화를 감상하는 자들의 자리는 오직 한 곳이 아니라고 마네는 그의 생애 마지막 그림을 통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프리드의 시선
마이클 프리드는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교수이며 예술 비평가이다. 그는 미술이 '관객에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마네 이전의 회화들이 애써 감추려 했다는 것에는 푸코의 시선과 일치한다. 그러나 "푸코가 서구 회화가 물질성을 감추기 시작한 시점을 원근법이 발명된 르네상스 이후로 생각하는 반면, 프리드는 18세기 중반 계몽주의 철학자 드니 디드로의 <회화론> 이후라고 생각한다."
디드로는 "연극의 성공은 관객이 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그는 배우는 무대 위의 일을 진실이라는 환영을 관객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배우가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음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배우가 관객을 의식하게 되면 표정과 제스처가 과장되어 극이 부자연스러워진다. 이처럼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여 부자연스러운 '연극'의 대안으로 디드로는 사실에 기반한 연기와 친숙한 소재로 만드는 '드라마'를 제시한다.
그는 '연극'은 좀 더 허구적이고 인위적인 것을 추구하는 반면, '드라마'는 좀 더 사실적이고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위해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만 몰입하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이것은 후에 사실주의 연극 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와 함께 이 이론은 자연스러움과 사실성을 추구하는 회화의 등장에도 영향을 끼친다.
18세기 프랑스 화가들은 회화에서 연극성을 배제하기 위한 시도로 드라마적 회화와 목가적 회화 개념을 도입한다. 드라마적 회화기법은 연기자가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듯 자신들의 사건에만 몰두한다. 그뢰즈와 샤르뎅이 이러한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목가적 개념은 베르네의 풍경화에 잘 나타난다.
사실주의 대가 쿠르베는 <오르낭의 매장>과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등을 이러한 목가적 방식으로 그려 관람객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여 회화의 연극적 요소를 지운다.
쿠르베와 동시대 19세기 프랑스에서 이러한 반연극적 전통은 위기를 맞는다. 몰입은 또 다른 종류의 가장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인식하게 된 것이다. 관객이 앞에 있는데도 "아무도 없는 듯 연기하는 것은 과장적인 연기보다 더 심한 인위성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네는 자기 그림 안에 관객의 존재를 인정하고 통합시킴으로써 반 연극적 전통을 가장 분명하게 끝장낸 화가"이다. 또한 그의 회화는 "과장이 없으므로 반연극적이고,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연극적"이다.
마네 그림 속에는 관객을 바라보는 비어있는 시선이 등장한다. 그들은 마치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원적인 관계를 호소하는 듯하다. 또한 마네는 역사적이고 서사적인 주제를 거부한다. 프리드는 마네의 스캔들의 이유를 관객들의 기대감이 좌절된 당황스러움에서 찾는다. 주제가 있는 스토리를 원하는 관객들은 마네의 그림이 단편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데서 그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바타이유의 시선
바타이유는 마네로부터 현대적 회화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는 푸코처럼 “기대의 좌절로 인한 관객의 당황스러움을 마네의 스캔들로 인식”한다. 관객들은 그림에서 스토리나 에피소드를 기대하나 마네는 아무 의미 없는 물질성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당시는 내용을 형식보다 더 중히 여겼고 이미지의 정확성이 내용을 분명히 지시해 주는 것을 이상적인 회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네는 '있는 그대로의 회화'를 그렸다. 이는 그림으로서의 회화는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며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원시시대 인류는 수렵이나 채집 등의 노동과 도구 제작이나 자원 비축 등의 생계를 위한 활동을 주로 했다. 생산과 연관이 없는 활동은 낭비로 여겨지던 이 시기에 즐거움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놀이의 영역이 등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라스코 동굴벽화라고 한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생명의 유지를 위한 노동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이 예술의 기원이며, “예술은 근원적으로 낭비”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라스코 동굴벽화 이후의 미술은 원래 목적이었던 미의 생산에서 점점 멀어져 인문주의와 결합, 문학이나 역사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고전회화에서 그림에 등장하는 손가락은 지시하는 내용이 있었으며 인물의 자세 또한 역사적 사실을 담는 지시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마네는 그림이 종속되었던 내용으로부터 그림을 해방시킨다. 마네 이후 "인물의 자세는 뭔가를 의미하지 않고, 몸짓들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구도는 그 어떤 스토리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풀밭에서의 점심>에서 인물의 손가락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바타이유는 이것이 혁명이 아닌 예술의 본질로 돌아간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네 이전의 회화는 언어의 시각화, 감동, 교훈, 즐거움 등을 주는 것을 목적했다면 그는 마네 이후 회화의 주권이 회복되었다고 본다.
나가며
마네의 그림을 해석하기 위해 애쓴 철학자들 덕분에 마네는 인상주의 대표화가이자 모더니즘 회화의 선구자로서 그 위상을 얻었다. 당시에는 논란이 있었다 할지라도 해석의 틀을 제공하는 철학자들의 지혜로 한 사람의 화가가 그 탁월함을 후대에라도 인정받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철학자들의 눈은 평범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 이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화가가 자증 할 수 없었으나 시대를 거슬러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그려내었던 행동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살려 내었다. 그들의 펜은 화가의 인생에서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정리해 내어 세상에 언어로 그려냈다. 사상가들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행동과 사상, 문화적인 현상들은 그들의 펜을 통해 힘을 얻는다. 이것이 내가 철학자들의 날카로운 펜을 존경의 시선으로 우러르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