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ray Sep 11. 2020

관점의 차이

책으로부터 듣다: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옳다.(p189)


인간이란 땅을 딛고 살아야 하는, 제한적 능력의 소유자이다. 능력이 아무리 많아도 물속에 집을 지을  없고 하늘을  힘으로   없다. 육체의 크기 또한 제한적이다. 키가 아무리 커도 3미터를 훌쩍 넘길  없고 아무리 작다고 개미처럼 작아질  없다. 이처럼 사람의 능력과 크기는 제한적이지만 생각은 제한받지 않을  있다. 인간의 생각은 관점에 따라 높이도 크기도 달라진다. 관점은 사물이나 상태를  때에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 처지를 뜻한다. 하늘 편에서 보면 우리의 공간은 땅까지지만 땅에서 보면 하늘을 넘어 우주까지 우리의 공간을 넓힐  있다. 이것이 관점의 차이이고 어디에 서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생각은 많은 차이가 나게 된다.

정약용.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있는 힘이 있었다. 그에게 세상이란 어떤 곳이었을까. 세상은 그에게 분에 넘치는 은혜보다 깊이를   없는 형벌과 고난을 선사했다. 한때 임금에게 충성했던 자로서 임금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고난은 그에게 가혹하고 냉정했다. 그가 인생의 어느  갑자기 만난 불운한 운명을 탓하며 원망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원망과 불평으로 자신의 남은 인생을 보내기엔  일이 너무 많았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었고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있다는 생각을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 때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꺽지 않는' 자였다.

그가 당한 억울한 일들에 대하여 한을 운운하는 폐족이 아닌, 독서를 통해 삶을 이롭게 하도록 자녀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아버지. 그의 글에는 한때 세상이 우러르는 높은 자리에서 내동댕이 쳐진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도 억울함도 없다. 그에게는 붓과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는 없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자신에게 남겨진 것을 사용했다. 그것으로 그저 아버지로서,  임금에게 충성했던 신하로서, 학문을 연구했던 학자로서, 백성을 관직에서 다스렸던 관리로서, 가족의 가장으로서 마땅히 당부해야 하는 말들을 절절히 적었다. 때로  글들은 그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 되기도 했고, 편지로 자신의 글이 필요한 자들에게 보내지기도 했다.

그가  편지에는 오로지 그의 기상과 지식의 방대함과 연륜의 깊이가 보일 ,  어디에도 복수의 날이  있지 않다. 또한 편지를 읽을  드러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당부들은 그가 어디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마음은 망한 집안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 자식들에 대한 염려와 홀로 있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애절하다. 그러나   뙈기 물려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없다. 오히려 자녀들에게  가난한 자를 돌보라 당부하며 닳거나 잃을 염려 없는  글자 ‘ ‘ 부적으로 지니라고 한다.

정약용은 책을 스승 삼아 공부한 학자이다. 자신이 공부하여 깨우친 것이 많은 만큼 그도 자녀들 곁에 있어서 직접 가르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오히려 자녀들에게 이때가 독서로 좋은 스승을 만날 때라고 관점을 바꿔준다. 자신의 빈자리를 책들이 대신 채워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편지에 적어 보내는 당부의 글들로 그들이 책을 멀리하지 않도록 이끈다.

그의 편지를 읽었던 자녀들은 오직 독서만이 살길이라고 하는 아버지의 권유에 반감이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아버지의 글들을 보면,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할  없는 글의 힘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당부의 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있는 힘을 주었겠고, 읽기 어려운 책들을 힘을 내어 읽을  있게 도전받았을 것이다. 폐족이라 느끼는 서러움과 누구 하나 보살펴 주지 않는 상황 속에서 힘겨운 살이를 해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불호령 같은 편지를 받을 때마다 그의 기상과 호연지기를 배워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배웠겠다.

우리가 세상을   그에게서 배워야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이끌어낸 그의 생각들이  좋다.


다산이 처음부터 이렇게 호기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까? 자신을 어려움에 빠지게 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여러 날을 울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의 어려운 처지는 그를 좁고 작은 세상에 머물도록 잡아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형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 중 가장 선하고 옳은 것을 택해 마음을 다잡고 좁고 작은 생각들은 버리고 크고 넓은 생각들로 그의 삶을 가득 채웠다.


 나에게 누군가 무엇을 배워야 한다면 나도 그들에게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 중 크고 넓은 생각을 택할 줄 알도록 말해 주고 싶다. 유배지라 여겨지는 장소가 오히려 다산이 수많은 저작을 가능하게 했던 휴양지, 은둔지, 피난처가 되었던 것처럼,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견디기 힘든 시간과 장소는 그들이 다시 태어나게 되는 시간과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넓은 세상 속에서 그들만의 큰 뜻을 이루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모험이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