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ray Mar 16. 2023

아이의 생각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이 되어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나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는 사람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몸은 오직 하나이다. 그런데 하나의 몸을 가진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수도 없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만나 보일 수 있는 반응들도 다양하다. 나는 별 일 아닌 일에 화를 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누군가에게 소리 내어 말하지 않더라도 하늘을 날듯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화를 내고 나서는 왜 그랬지 후회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누군가에게 한없이 다정해진다.


내가 평생 다른 사람이 되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누군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말이라는 소통의 도구가 있어서 각자의 말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볼 때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이 행동을 한 이유는 왜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이였던 나는 어른들과의 예의 바른 소통 방법을 익히며 자라왔고 이제 어른이 되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아직도 그리 쉽지는 않으나 어른들과 대화하는 것, 나 아닌 누군가의 생각을 나의 경우에 미루어 짐작해 보는 일들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공감 능력이 탁월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나 아닌 누군가의 슬픔과 기쁨, 분노가 마치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으니 그들과의 대화도 그리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직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대화하기 쉽지 않은 대상이 있으니 아직 어른이 아닌 세대들과의 대화이다. 다시 말해 아이들과의 대화는 아직도 미숙하고 낯설기 그지없다. 나도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자라온 환경과 지금 세대가 사는 환경이 많이 다르다. 또 나는 그 시기를 지나온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하는 생각과 행동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들의 관심도 나의 관심과 다르고 그들의 표현 방식은 더더군다나 세련되지 못하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울고 짜증내기 일쑤이고, 기분이 좋으면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좋은 기분을 표현하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어린이라는 세계>의 저자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으로 미루어 어린이라는 세계 들여다보기에 익숙하다. 그저 익숙한 정도가 아니다. 마치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그렇게 아이들의 말과 글로 미루어 짐작한 것들을 어른의 언어로 잘 표현해 준다. 또 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겪었던 사건과 그와 결부되어 느꼈던 감정을 잘 기억한다. 자신이 운영하는 독서교실 어린이들과 나눈 이야기들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다.


저자가 실제 경험한 것들을 재료 삼아 써 내려간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어린이라는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도록 독자들의 손을 잡아 이끈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거나 기분이 나빠도 잘 표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좋고 나쁨을 자기만 간직할 때가 많고 소리 내어 말하기보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법을 경험으로 터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침묵보다 보여주기를 택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잘 열어 보여준다. 때로는 말로, 때로 표정으로, 기분이 좋을 때는 소리 내어 웃기도 잘하고 나쁠 때는 화를 참지 못해 소리 자르기도 한다. 슬플 때는 눈물로 자신들의 세계에 다른 사람들도 기꺼이 함께하자고 초대한다. 그러나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어른들은 그 세계의 언어를 잊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채기에 더디고 무디다.


저자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의 간극을 좁혀주는 일종의 번역가이자 통역사이다. 저자의 시선과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니 이해되지 않는 아이가 없고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가 없다. 저자가 글쓰기 말고 새로운 활력을 찾아 피아노를 치기로 했을 때, 아이들이 보인 반응들은 마치 대학 초년생에게 선배들이 해주는 말들 같다.

"남들 하는 거 멋있어 보여서 하는 거면,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아요" "분명히 지루해질 테니까 마음을 굳게 먹으셔야 돼요." "피아노 연주를 자주 들으세요. 다른 사람들이 연주한 거요." "열심히 하세요. 안 됐는데 갑자기 될 때가 있어요." "연습은 날마다 해야 돼요. 날마다 하는 게 중요해요."
-p.133-134


아이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네 선배님 하는 태도로 경청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들을 마주 보며 눈을 맞추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말을 하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나도 내 어릴 적 그때로 돌아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만 같은 선생님께 내 이야기를 재잘대고 싶어 진다. 그리고 아직도 나의 곁에 머무르는 아이들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듣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게 해 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관점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