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라 무엇이 되는가
오늘이 내게 주는 의미
식물은 식물 자체를 심지 않는다. 씨앗을 심으면 자라서 꽃도 되고 풀도 되고 나무도 된다. 새는 알을 낳는다. 알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부화하여 새끼가 나온다. 새는 자라면서 그 어미의 모습처럼 변한다.
그런데 동물은 동물 그 자체의 모습을 갖춘 새끼로 나온다. 어느 정도의 모습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아직은 미완의 모양새를 띤 동물은 결국 그 모습을 갖춘 동물이 된다. 동물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양새와 속성이 어느 정도 일치하여 자란다. 토끼는 자라서 토끼가 되고 호랑이는 자라서 호랑이가 되고 강아지는 자라서 개가 되고 돼지는 자라서 돼지가 된다.
그럼 사람은? 사람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 사람이 된다. 사람은 동물처럼 여린 생명체로 나온다. 다른 점은 동물들은 며칠이면 걷고 서는데 문제가 없지만 사람은 낳자마자 걷지는 못한다. 천천히 걷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걷기까지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무려 1년 가까이 걸린다. 게다가 몸이 커졌다고 저절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그럼 사람이 안 되는 사람도 있을까? 있다.
세상에는 사람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그 속성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은 여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사람의 모양만으로는 사람이라 인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그럼 사람의 모양새와 달리 사람이 가지는 속성은 무엇일까? 사람이라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속성. 이것들이 없으면 사람이 아닌, 사람 고유의 속성은 무엇일까?
사람 고유의 속성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반대로 이러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고 여겨지는 속성을 찾아 속성이 아닌 것들을 제하고 생각하면 좀 더 쉽다. 사람이 어떤 일을 저질렀을 때, 짐승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가?
존중받아야 할 고귀한 사람의 생명을 의도성을 가지고 해를 입힌 경우, 거짓을 진실처럼 속여 다른 사람의 귀중한 것들을 빼앗는 경우에 사람이 아니라는 취급을 받는다. 또는 자신이 낳은 생명을 돌보지 않는 경우이다. 짐승도 제 새끼는 사랑한다고 하는 속담만 봐도 자식을 낳았으면 사랑으로 돌보고 키워야 하는 것이고, 역으로 짐승도 은혜를 안다는 속담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알아야 사람이라고 한다.
위의 경우에서 볼 때, 사람이 아니고 짐승만도 못하다는 일반적인 인식들은 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해를 입히는 경우,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누군가에게 하지 않았을 때도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사람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정직하게 선을 행함과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 자기 자신 외의 사람들에 대한 내적인 존중과 함께 외적으로 정직하고 선한 태도를 갖추며 더불어 자신이 맡은 사람이나 일들을 책임감 있게 돌볼 때, 그들을 짐승 같지 않고 사람답다고 이야기한다.
그럼 태어나서 자라, 사람이 가진 고유한 속성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은 언제쯤일까? 어린아이를 거쳐 청소년기까지는 주로 성인의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자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사람이 갖추어야 할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자랐다고 하기는 어렵다. 아직은 공사 중이다. 그리고 계속 자라 간다. 끊임없는 자극과 반응 속에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사람 나름의 고유한 속성을 갖춘 사람이 되어간다.
그렇게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평생을 거쳐 이루어진다. 내가 사람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점이 모두 같지 않다. 사람은 끊임없는 삶의 다양성과 연속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그에 비춘 자기 성찰을 통해 성숙하며 자라 간다. 그렇게 사람이 되어 간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내게 오늘이란 날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