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필, 스페인 예술로 걷다] 중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거리에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있다. 그곳은 프라도 미술관과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에서 각각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다. 레이나 소피아는 소피아 왕비라는 뜻이 있는데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왕비 이름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이곳은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소장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에 별관이 건축되었는데, 그것을 건축한 장 누벨이란 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별관은 누벨관이라고 불린다. 그 별관 앞에는 미국 출신 팝아트 작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RoyLichtenstein, 1923~1997)이 만든 <붓자국>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그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죽은 미국을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이다. 그는 만화책에서 본 그림을 캔버스에 크게 옮겨 그려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을 말풍선 안에 쓰고, 인쇄할 때 자연적으로 생기는 망점(Benday Dots)을 확대하여 그려내 그만의 독특한 회화기법을 만들어냈다.
영국 팝 아트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인 리처드 해밀턴은 팝 아트는 "통속적, 일시적, 소비적, 값싸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재치 있고, 관능적, 선동적, 활기차고, 대기업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팝아트에 대하여 예술을 일상의 선상으로 가져왔다고 호평한다.
리처드 해밀턴이 말한 것처럼 팝아트 작품들이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재치 있고 선동적이며 관능적이기는 하나 그들 작품의 가격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작품이 과연 대중적인지는 의문이다. 그들이 대중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은 맞지만 작품을 대중에게 돌려 주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삼성 비자금 문제로 떠들썩했던 2008년. 홍라희 관장이 소유했다던 '행복한 눈물'의 구입 당시 시가가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715만 9,500달러(당시 환율로 약 87억 원)라 하니, 어떤 평범한 가정이 그의 작품이 좋다 하여 집에 걸어두고 볼만큼 대중적이란 말인가.
그럼 그들의 작품 이후, 예술이 일상화가 되었는가를 따져 본다면 딱히 그렇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그들의 가치가 모든 사람의 생각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체계는 아니었다. 예술은 여전히 일상의 우위를 차지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우러러보는 자리에 서 있곤 한다.
그럼에도, 더 이상 작품 감상자들의 심리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등장한 팝아트 예술가들이 그동안 예술가들이 가졌던 거만한 태도를 내려놓았다는 것까지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자신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대중들 눈높이에 맞춰 일상에서 즐기는 만화 수준으로 예술작품을 제작한 그들로 말미암아 평범한 대중은 그나마 예술작품을 대하기 쉬워졌다. 일상에서 접하는 광고나 만화처럼 말이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누벨관 앞에서 대하는 리히텐슈타인의 <붓자국>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친근하게 물어올 것이다.
전시장의 작품도 만화처럼 재미있게 즐기면 안 되나요?
& 만화도 전시장의 작품처럼 대접해 주면 안 되나요?
-강필, 스페인 예술로 걷다(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