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늦은 퇴근, 혹은 주말의 출근 후 퇴근을 하면, 어김없이 남편은 티브이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있다. 보는 채널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골프, 주식이나 코인 방송. 아니면 토크가 오가는 채널, 술까지 마시며 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아님, 먹방 채널. 부부여행 유튜버 채널이다.
나는 솔직히 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채널은 별로다. 멀쩡한 정신으로 술 마신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굳이 티브이로까지 그런 모습을 보기는 싫다. 이건 전적으로 내가 술을 거의 마시지 않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또한 먹방 채널도 별로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고 싶으니까. '나는 왜 저런 맛집에 가서 사 먹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코인 주식 방송은 더 모르겠다. '그 말 듣고 사면 진짜 돈 버는 건가.' 싶다.
하지만, 부부여행 유튜버 방송은 남편과 같이 종종 보는 채널이다. 해외여행하는 부부들의 채널 중 몇 가지 보는 것들이 있었는데,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이렇게 보면, 다른 방송들도 다 대리만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긴 하다. 그냥 단순히 나의 호불호일 뿐이다.
반면에 나는 주로 '넷플릭스'를 본다. 일단 새로 올라온 시리즈들 중 흥미 있어 보이는 것들은 1편을 정주행 해보는 편이다. 그리고, 계속 볼지 말지를 결정한다.
한 가지만 파는 스타일은 아니고, 이것저것 걸어놓고 찔끔찔끔 보는 편이다. 국내 드라마, 영화, 해외 시리즈, 영화를 가리지 않는다. 장르는 좀 한정적인 편인데, 주로 범죄나 정치 수사물을 좋아하는 편이고 로맨틱 코미디물도 좋아한다.
최근에는 김희애와 설경구의 '돌풍'과, 영국의 시리즈물 '젠틀맨:더 시리즈', '낮과 밤이 다른 그녀', '90년대 쇼'를 동시에 시청 중이다. 이것저것 보고 싶을 때 돌려가며 시간이 날 때마다 본다.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나는 남편과 함께 시리즈를 보고 싶지만, 남편이 호응해 주는 일은 드물다.
차이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바로, 추구하는 ‘이야기’의 차이다. 나는 기승전결을 가진 허구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허구의 이야기 속, 가상의 인물. 그 인물이 겪는 스토리에 빠져드는 것을 즐긴다.
남편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현실적인 얘기를 듣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시시콜콜 수다 떠는 채널, 또는 술 마시면 더 솔직해진다며 술 마시고 수다 떠는 채널을 즐겨 본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의 차이다. 나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다. 드라마 속 이야기에 빠져서 현실을 도피하는 것을 꿈꾼다. 반면, 남편은 계속 현실을 붙잡고 있는 편을 택한다. 남편이 원하는 이야기는 현실 속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머리로 이해는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전히 난, 유튜브 채널 여기저기를 돌려대며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고, 나와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나의 감상평에 맞장구쳐 주기를 바란다.
남편은 역시, 허구의 이야기에 빠져서 훌쩍대는 내가 이해하기 힘들 터. 한바탕 웃어넘길 수 있는 토크 방송이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먹방이나 여행 유튜브가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아주 어렸을 적에 남동생이랑 티브이 리모컨을 가지고 그렇게 싸웠던 기억이 오버랩된다. 동생은 동물의 왕국과 축구 중계를 그렇게 보고 싶어 했다. 나는 그때도 드라마를 보고 싶어 했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각자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으니, 다행인 건가. 그렇지 않았으면 리모컨을 가지고 아직도 싸우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잠깐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