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반려동물 키우기에 대해 쓴 글을 보여주었다.
묵묵히 읽던 남편은 다 읽고 나더니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 글이 맘에 안 들어?”
했더니,
“아니, 글은 잘 썼는데 평소 자기 글하고 좀 달라서.”
란다. ‘뭐가 다르다는 거지?’
“부정적이어서?”
“응.”
“음,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게 삶이 아닌가? 늙어가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운가?
나는 요즘 좋은데. 자기는 이십 대 때 좋기만 했어? 나는 참 힘들었는데.”
란다.
생각해 보니 나도 젊었을 때 좋았던 거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은 거 같다. 좋았던 건 의식 없이 흘러가버려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이 들어서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족저근막염에 걸려 발이 아프고 나니 발의 소중함을 정말로 알게 되었지. 그전에는 누가 발이 아프다고 하면 발이 왜 아픈지 이해를 못 했으니까.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진리인 게 내가 아프고 보니 다른 사람의 아픔에 진짜로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듯, 오래된 속담이나 격언들도 ‘아하, 정말 그렇구나.’ 하며 깨닫게 되는 경우 산다는 게 참 재미있기도 하다. 삶의 비밀들을 진정으로 깨우쳐가는 즐거움은 나이 들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내 귀가 얇은 건가? 남편의 한 마디를 듣고 나니 귀여운 강아지를 다시 키워도 좋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드니. 늙는 걸 보는 게 싫어서 우리 딸을 낳지 않았다면 딸과 함께 나눈 그 수 많았던 순간들을 만나지 못했겠지. 순하고 착한 토토도 얼마나 많은 손님들과 기쁘게 뛰어놀았던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생의 과정은 고통이면서도 그런 생을 맞이할 수 있어서 또 축복이니.
귀여운 강아지와 새로운 인연을 맺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면서 사는 거지.
강아지를 키운다고 생각하니 지난번 글을 맺을 때보다 기분이 밝다. 밝은 쪽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