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강아지나 고양이 키우기가 식물 키우기랑 비슷한 줄 알았다.
예쁜 꽃, 윤기 나는 잎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듯 귀여운 동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깐씩 같이 놀기도 하고.
그런데 동물들도 윤기 나고 생생한 모습만 보이는 게 아니다. 내가 좀 더 젊었을 때는 동물들도 늙는다는 생각을 못했다. 나이가 들고 조금씩 노화의 징표들을 맞이하다 보니 반려동물들도 활기를 잃어가고 모습이 초췌해지는 걸 보게 되었다.
병도 들고 게다가 사고까지 당해 불구가 된 토토를 바라보기 안타깝고 속상하다. 제 나름대로는 절망에 빠져있지 않고 자연의 에너지가 이끄는 대로 생명을 위해 먹고, 볼일 보고, 우리를 보면 반기며 다가오고, 햇볕 좋은 자리에 엎드려 시간이 무한정인 듯 낮잠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그저 대견하고 감동스러울 뿐이다.
나이 들어 온갖 노환을 안고도 하루하루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처럼 반려동물도 늙은 시간을 그렇게 하루하루 살 수밖에. 그리고 어쩌면 그게 그리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흐름에 맡기며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을 돌보며 삶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 그게 삶이 아니겠는가.
남편이 말했다.
“우리, 강아지 한 마리 키울까? 어리고 생생한 강아지. 손님들도 오는데 토토는 너무 늙고 초췌하고, 우리도 나이가 많고. 강아지가 뛰어놀면 마당에 더 활기가 차지 않을까?”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가끔 강아지를 데려오는 손님들이 있는데 폴짝폴짝 잘도 뛰고 눈빛이 초롱한 강아지를 보면 토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서글퍼진다. 우리도 다시 어린 동물을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최근, 16살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고양이 다람이와 14살로 늙음을 맞이하고 있는 토토를 보며 늙음의 과정을 보는 게 고통스럽다. 늙어가는 우리 자신과 엄마와 주변 가족들을 돌보는 것도 버거운데 반려동물들까지 같은 과정을 겪는 걸 보며 마음이 어두워질 때가 종종 있다. 어린 강아지도 또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이할 테지.
우리의 관리와 돌봄 아래 두지 않아도 되는 산새나 들꽃들만 바라보며 사는 게 어떨까 싶다.
먹이통을 나뭇가지에 달아 주거나 물통을 한 자리에 마련해 주는 정도는 크게 힘들 것도 없고 재미로 할 수도 있겠지.
불교는 잘 모르지만 인연을 만드는 걸 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물들도 인연이고 식물들도 인연이다. 이미 맺은 인연은 최선을 다해 소중히 돌보되 새로운 인연을 맺는 건 삼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