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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eam Jun 10. 2024

립스틱 하나

  물질에 대한 생각

 민박집을 찾는 젊은 손님들 중에는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실내 난방을 더 세게 켜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 대부분 아파트나 현대식 건물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집 안이 따뜻하여 가벼운 옷차림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은 아직도 추운 집이다. 어렸을 때 자랐던 신암동 집보다는 덜 춥지만. 히터를 켜고 온수매트 온도를 올리면 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에게 겨울은 그야말로 생존의 계절이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연탄을 주문해서 창고에 가득 채워놓고 겨울 내내 열심히도 무거운 연탄을 들어 날랐다. 한겨울에 하루 이틀 집을 비웠다 돌아오면 연탄난로가 꺼져있는 우리 집은 그야말로 꽁꽁 얼어 있었다. 냉난방기를 들여 연탄난로를 탈출한 건 몇 해 되지 않는다. 온수기를 설치해서 싱크대와 욕실 수도에서 온수가 나온 건 그나마 몇 년 더 전의 일이다. 하지만 집 바깥 면에 달아내어 만든 화장실은 겨울에는 바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겨울 화장실 변기는 엉덩이가 얼어붙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차갑다. 샤워할 땐 또 어떻고. 전기세가 무서워 전기 기기를 쓰는 것을 생각도 못하다가 지인이 생각보다 그렇게 전기가 많이 들지는 않더라고 하여 우리도 생활환경을 좀 더 업그레이드하기로 한 것이 온수기와 냉난방기다.     

 우리 가족은 불편함에 대해 좀 무딘 것 같다. 편리함을 그다지 못 누려보아서 그런가? 도시를 쉽게 떠나온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계절에 노출되어 있는 시골집은 겨울에 온갖 조치를 하지 않으면 거의 한 데나 마찬가지로 춥다. 우리는 바보인가? 요즘 얼마나 많은 편리한 난방장치들이 많을 텐데 아직도 기초적인 난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가. 추운 대로 그저 지낼만하다면서. 전에 은교가 놀러 왔을 때 우리 딴엔 손님 대접한다고 연탄난로 2구에 모두 불을 붙여 최대한으로 불 때어 주었다. 그랬더니 난로 가에 둘러앉은 우리 식구들은 더워서 땀이 흐를 지경이었고 그런데도, 은교는 춥다고 몸을 웅크렸다. 그때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더 나이 들면 집 환경을 더 개선할 힘도 없을 텐데 빨리 따뜻한 집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조바심이 생길 때도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하는 건 맞지만.     

 우리가 사실은 무딘 건 아니다. 작년 겨울에도 올해는 꼭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해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다. 또한 보통 가정집에 아직은 꼭 필수품은 아닌 건조기도 민박집을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바로 들여놓았다. 그런데 왜 아직도 춥게 지내고 있는가. 로봇이 청소를 하고 원거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미리 집안을 데워놓는 시대에. 우리만 아직도 신석기시대에 살고 있는가.

 그것은 에너지 총량과도 관계가 있고 우리가 다른 데 더 정신이 팔려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당장의 물질적인 편리함보다 무엇이 오늘의 나를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할까에 더 초점이 가 있어 여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게다가 나는 찬물의 건강상 이점을 알게 되어 아침마다 일어나면 바로 찬물로 향해 2분 동안 찬물세례를 받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밤에 잘 때도 너무 따뜻하게 자는 게 오히려 해롭다 하여 온수매트의 온도도 그리 높게 설정하지 않는다. 아주 따뜻한 것보다는 약간의 차가움이 정신을 깨워주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하여 우리 집 환경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반면, 생활환경에 비해 우리가 문화적으로는 꽤 높은 수준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나는 재미있는 일들은 가능하면 실행해 본다. 파티라든가, 음악회라든가. 숲 속 산책이라든가. 같이 할 사람들이 있으면 적극 초대한다. 표 나게 뭔가 문화적인 경험을 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그저 살면서 생각나는 대로 무언가 도모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풍부하게 느끼며 살려고 하는 게 전부다. 

 조금 불편한 생활환경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 적도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늙어서 차가운 욕실에서 샤워하는 것도 그리 고통스러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일부러 한겨울 계곡을 찾아가 몸을 담그는 건강법을  실행하는 풍습을 지닌 나라도 있지 않은가.

 잘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얼마나 편리하고 안락하게 살고 있는 가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깨어있고 삶을 재미있게 느끼느냐가 중요할 거 같다.     

 며칠 전, 잃어버렸던 립스틱을 찾았다. 올해 초, 내 생일 선물로 큰맘 먹고 비싼 것을 딸이 사준 건데 한 두어 번 쓰고는 집안을 대정리 할 때 잃어버린 것이다. 가방이랑 겉 옷 주머니들, 서랍들을 다 뒤져 봤는데 아무 데도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 둔 걸까. 설마 쓰레기에 휩쓸려 버려진 건 아닐까.

 나는 딸에게 미안했고 외출할 때마다 아쉬웠다. 딸도 립스틱 찾았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랬는데, 자질구레한 게 담긴 작은 나무 상자를 정리하려 하다가 그 안에 들어 있는 립스틱을 발견한 것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외출도 안 하는데 립스틱을 바르고 딸에게 인증 사진을 보냈다. 립스틱 찾았다며. 

 “어디 있었데?” 하며 딸도 반가워했다.

 그 후로 외출할 때마다 립스틱을 바른다. 숙현이가

 “언니 우리 공연할 때도 립스틱 안 바르더니 그때 보다 더 예쁘게 하고 왔노?” 하며

얼마 전 대구공방 오픈 때 와서는 반쯤 핀잔주듯이 말했다. 

 작은 립스틱 하나. 참 소중하다. 나를 생각해 주는 딸의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물질에는 소중함이 담길 수 있다. 하나하나 소중함이 담긴 물질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더 간결하고 더 단아할 것이다. 더 즐거울 것이다.

 물질의 소중함도 물질문명으로 인한 편리함도 그것에 대한 마음과 생각에 달린 것 같다. 

 나날이 변화 발전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나만 후지고 바보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닌지 불안해하며 자꾸 남의 삶을 기웃거리면 늘 남을 쫓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 자신의 좋은 에너지를 헛되이 낭비하게 된다. 남에게 뒤지지 않는 새롭고 더 좋은 것을 갖추려고 강박적으로 노력하기보다는 물질 하나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하루를 풍성하게 보내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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