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순천에 대한 기억 Part. 1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린 밖을 보다가 문득 지금 나서지 않으면 내일 또다시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을 알았다. 지금이어야 했다.
순천으로 향하는 기차는 밤새 달렸다. 억지로 잠깐 눈이라도 붙여야 했지만 쉽지 않았다. 기차에 듬성듬성 앉아 쪽잠을 청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나를 순천으로 이끈 것은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순천만에서 해가 지는 풍경은 나를 압도했다. 그곳에 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어리석게도 그랬다.
새벽 5시에 순천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잠시 두리번거렸다. 이미 와 버렸고 돌이킬 수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선암사로 가는 버스를 멍하니 기다렸다. 정류장 벽에는 친절하게도 순천 곳곳을 갈 방법이 상세히 적혀 있었기에 순천만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계획이 없던 나는 쉽게 목적지를 정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산이라니. 사실 난 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 좌석 어딘가에 몸을 구겨 넣었다. 낯선 곳을 배회하는 동안 그저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중 날이 밝아왔다.
7시가 조금 넘어 선암사 입구에 다다르고 문득 주위에 나뿐임을 알았다. '내가 여기 들어가도 될까?'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망설임이라는 고질병이 없었다. '뭐, 어때 그냥 들어가 보자.' 선암사는 석가 탄신일을 앞두고 꽃단장했는지 여기저기 알록달록 했다. 소박해서 아름다웠다. 사찰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있어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함이 없는 친구를 만나는 듯했다.
멈춰 서서 표지판을 둘러본다. 조계산의 이곳저곳으로 가는데 필요한 거리가 적혀있다. '송광사'가 눈에 들어왔고 8km쯤이란다. 머리를 굴려본다. 1시간에 성인 남자가 4km쯤 갈 수 있으니까 늦어도 두 시간이면 가겠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볼 만하다고 판단하고 송광사를 향한 무모한 여정을 시작했다. 산에 관심이 없던 나는 평지에서의 8km와 산에서의 8km의 차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산길을 따라 오르고 내리며 깊은 산길과 숲이 나오면 움찔거렸고 길이 넓어지고 인적이 느껴지면 안심이 되었다. 걸어도 걸어도 송광사를 향한 거리는 도무지 줄어들지 않았고 내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쩌다 마주치는 등산객들이 어찌나 반갑던지 낯가림이 있던 내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송광사에 도착하기까지 4시간 이상 걸렸다. 8시쯤 선암사에서 어리석은 여정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12시가 훌쩍 넘었다. 송광사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보사찰 중 하나로 승보사찰이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의 귀중한 가르침을 대부분은 잊었지만, 다행히도 이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국사 선생님은 연세가 많으셔서 건강이 좋지 않으신데도 열정적으로 수업하셨고 가끔 우리 역사의 안타까운 장면들 앞에서 구수한 욕설과 입담으로 학생들을 즐겁게 해 주셨다. 당시 교과서에는 선생님을 닮은 것처럼 보이는 분의 사진이 실려있었는데, 우리들은 사진 속 인물이 선생님이 아니냐고 걸핏하면 물어보았고 그때마다 선생님은 그저 씩 웃고 마셨다.
송광사는 선암사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사찰이었다. 원치 않은 긴 산행을 했던 터라 조금 지쳐있었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일이기에 구석구석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날의 일정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딘지 모를 깊은 숲 속에서 들이켰던 잊을 수 없는 공기와 빽빽한 나무 사이로 가늘게 내리쬐던 햇살은 결코 원한다고 해서 만날 수 없던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지 않을까.
송광사에서 내려와 순천역으로 향한다는 버스를 무작정 타고 조계산에서 빠져나왔다. 아침을 대충 챙긴 터라 든든한 식사를 위해 백반집에 갔다. 공깃밥 한 그릇에 함께 나오는 반찬이 왜 이리도 많은지 몹시 놀랐던 것 같다. 몹시 배가 고팠기에 성실히 식사에 임했는데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보시고 잘 먹는다며 밥 한 공기를 더 내어주셨다.
슬슬 해가 질 시간이 되었다. 내가 여기 온 유일한 이유가 아직 남아 있었다. 곧장 순천만으로 향했다. 하루가 이렇게 길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