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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석문 May 22. 2020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면 될 일이다

순천에 대한 기억 Part. 2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여전히 낯선 곳에서 버스에 실려 떠돌고 있었다. 순천만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어느새 한산해졌다. 이제 남은 이들은 같은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오전에 갔던 선암사, 송광사와는 다르게 순천만에는 나처럼 홀로 온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은 육중한 카메라를 들고 각자기억을 담아내거나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언덕 위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를 돌아봤다. 멀리 보이던 갈대밭 머무르며 이 아름다운 곳에 사는 낯선 생물들을 관찰했다. 잠시 어린 시절 갯벌에서 놀던 기억을 상기시켰다.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많아졌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더는 예전처럼 갯벌 안을 휘젓고 다니지는 못했다. 그러고 보면 꼬마였을 때 가장 용감. 알고 싶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찼 그 시절에 대한 기억 두려움 자꾸만 삼켜 인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른 새벽부터 숨 가쁘게 오가며 지친 나만큼이나 오늘의 해도 피곤했는지 산등성이에 늘어진 몸을 뉘려 했다. 그 모습 잘 려고 서둘러 언덕을 올랐다. 꼭대기에 다다르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 있었다. 자리에 앉아 한참을 바라봤다. 꽤 오랜 시간이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그 순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었으니까.


   순천만에지는 해를 바라보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어딘가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이곳은 나를 여기로 이끌었던 그 사진 속의 모습은 아니었다. 사진에서 보았을 때만큼 황홀하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그랬다. 아름다운 장소가 행복한 나를 만들지 다. 사라져 가는 해를 바라보던 그 시간이 지금까지도 나를 웃음 짓게 했다면 그 정도 충분하다.


   어느덧 주위는 어둠으로 가득 찼다. 언덕 위에서 함께 같은 곳을 바라봤던 사람들은 이내 뿔뿔이 흩어져갔다. 그들 뒤를 따라 길을 내려왔다. 당장 돌아갈 곳은 없었지만 잠시나마 쉴 곳을 찾아갔다. 그 후로 며칠간 벌교, 여수를 지나 내가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의 나는 처음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같은 두려움과 근심, 떨쳐내지 못할 기억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해도 상관없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면 될 일이다.

   

   어쩌면 여행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본래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의 출발지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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