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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Dec 10. 2021

뷔페

경우의 수만큼의 함정

연말 일정이 있어 워크숍을 겸해 강남 모 호텔 뷔페에 다녀왔다.


사실 난 뷔페를 썩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릴 때는 분명히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경험적인 체득인 건지는 몰라도 지금은 큰 감흥이 없는지라 돈을 들여가며 가야 한다는 필요를 못 느낀다. 물론 눈이야 휙휙 돌아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막상 떠보면 실속은 별로 없다는 걸 잘 안다. 차라리 좋은 요리를 제값 주고 먹는 편이 여러모로 낫다는 주의다.


그러나 워크숍 장소가 뷔페라는 건 좋은 일이다. 누군가 먹지 못하는 음식의 종류를 고려할 필요도 없고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몹시 민주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워크숍 장소로 정해진 곳은 내가 여태껏 가 본 모든 뷔페 가운데 음식의 가짓수가 가장 많았다.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다. 맛도 괜찮았다.


그리하여 나는 달팽이도 맛보고, 랍스터와 대방어 회, 스테이크와 양갈비도 먹었다.

좋아하는 목이버섯이 들어간 냉채 요리와 표고버섯은 두 접시나 가져다 먹었다.


그러나 기껏 먹어봐야 두 접시가 전부였다. 사실 그 마저도 좀 무리한 식사였다. 이미 한 접시로도 포만감은 96% 정도 채워졌으므로. 최근 식사량이 줄어든 탓인 것도 같았다. 종류도 풍부하고 맛도, 퀄리티도 나쁘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글자는


‘굳이’였다.


굳이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어차피 다 맛볼 수도 없을 거면서. 굳이 한 순간에 모두 탐하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메뉴판에 메뉴가 너무 많은 곳에서는 음식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나를 감동시킨 곳들은 늘 한두 가지 메뉴로 승부를 거는 음식점들이었다.


어쩌면 인생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뷔페처럼 이것저것 펼쳐두고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일견 화려하고 멋진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 둘 담아 맛을 보다 보면 영 불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배가 부르기 십상이다. 배가 부르다 못해 과식의 불쾌감이나 느끼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게 고심하며 무엇을 골라내야 할지 기웃거리는 사이에 접시에 올린 다른 음식들은 식어가고 만다. 맛의 온도를 서서히 잃어가는 것이다.


뷔페의 코너를 돌며 음식을 열심히 골라내고 있던 내게 현장 셰프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미 담아놓은 음식이 식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들여 음식을 고르세요”라고.

하지만 단품요리를 맛보려고 뷔페에 가는 것도 아닌 이상, 그런 일은 약간의 과장을 보태 불가능하다. 그러니 뷔페는 겉보기에만 풍성할 뿐 실상은 욕심에 가려, 본질적으론 음식의 맛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포만감보다는 그냥 뜨끈한 갈비탕 한 그릇이 낫지 않나, 하는 촌스럽고도 배부른 소리를 오늘은 끼적여본다. 아무튼 좋은 연말 마무리였다.

덧. 다만 나만 맛있는 거 먹고 가긴 미안하니 모처럼 멀리까지 나온 김에 엄마가 좋아하는 브라우니를 사 들고 돌아가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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