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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Jan 29. 2022

오케이 할아버지와 티눈

당뇨 환자와 티눈

  평화로운 약국 근무 중, 문이 스르륵 열리는 소리가 난다. “안녕하세요”하고 활기찬 인사를 하고 보니 키도 크고 흰머리가 성성한 할아버지 한 분이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오셨다. 어르신께 밀당이란 없다. (이 편이 좋다!) 바로 본론.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으시단다.


— 네, 어르신.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 아니 내가 말이야, 당뇨가 있거든? 그런데 당뇨가 있으면 티눈을 제거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맞나? 내가 티눈 약을 샀는데 말이야.


  음. 당뇨 환자의 경우 혈중에 아무래도 당이 돌아다니다 보면 혈액이 끈적해진다. 때문에 손이나 발 같은 말단 부분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특히 상처가 났을 경우는 잘 아물지 않는다. 당분 때문에 균 감염도 잘 되는데 잘 낫지도 않고 덧나기도 쉽고 말이다. 이게 심각해지면 ‘당뇨발 diabetic foot’이라는 당뇨에서 기인한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괴사가 심한 경우 급기야는 족부 절단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당뇨가 그래서 무서운 질환인 것이다.


  비록 티눈과 당뇨의 관계에 대해서 따로 배운 바는 없었으나 당뇨발의 무시무시함에 대해서는 일단 아는 바가 있었으므로 나는 어르신께 그렇다고 대답했다.


— 아, 네 맞아요. 당뇨가 있으시면 발 같은 곳에 있는 티눈도 함부로 제거하시면 안 되세요. 상처 생기면 잘 아물지도 않고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 아 그래? 오케이.


  그렇게 할아버지는 오케이를 연달아 한 다섯 차례 시원하게 말씀하시곤 자신의 궁금증은 말끔히 해소되었다는 듯이 약국을 떠나셨다. 그렇게 한 이틀이 지났다. 어쩐지 데자뷔 같은 발걸음의 할아버지가 그때와 똑같은 옷차림으로 나타났다.


— 아니 내가 말이야. 티눈 액을 발랐는데도 티눈이 안 사라지네. 이게 아주 성가셔.

— 그때 당뇨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 으응, 맞지. 그런데 티눈 밴드로 사야겠어. 안 사라지네.

— 어르신, 그런데 티눈 함부로 제거하시고 상처 내시면 안 되세요. 당뇨 있으셔서 조심하셔야 되는데…

— 오케이.


  어르신은 시원하게 오케이를  연발하시곤 만류엔 아랑곳없이 티눈 밴드를  가셨다. 너무 불편하시면 피부과를  가보시라고 하니 오케이, 그런데 우리 딸이 간호사니까 괜찮지 하는 정보성(?) 멘트를 남기시곤


  당뇨가 있다는 이유로 티눈 같은 귀찮은 존재도 어쩌지 못한다니. 당뇨가 있어도 티눈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일랑 없는 걸까. 약사님들께 질문해 본 결과, 이런 경우는 병원 치료가 원칙이며, 순응하지 않는 환자에게는 티눈 제거로 인한 당뇨발 발생에 대한 경각심을 차라리 심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정 티눈 제품을 쓰려거든 아주 아주 좁게만 적용해야 하고, 상처가 생기면 소독과 항생제 연고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외에도 외국 자료를 좀 더 찾아봤을 때는 티눈을 직접적으로 제거하는 방법보다는 각질 제거용 돌 같은 것으로 미세하게 갈아내는 방법을 사용하는 듯했다. 산성 약물을 통한 제거는 역시 권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명확히 이렇다 할 해결 방법이랄 건 없었다.


  어쩐지 다음번에 또 오케이 할아버지가 오실 것만 같은 직감에 가까운 예감이 든다. 일단 티눈은 각질이 증식되어 생기는 것이므로 뾰족한 것이 아닌 둥그런 것으로 살살 각질 제거만 하는 수준으로 관리해 주실 것과 너무 불편감이 심하시다면 피부를 연화시키는 우레아 크림과 보습제 정도를 권해드려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시면 병원 진료를 꼭 받으시라 해야지. 아무튼 오케이 할아버지가 진짜로 오케이가 되실 때까지 나의 공부도 멈출 수 없을 듯하다. 낫 오케이가 오케이가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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