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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Feb 11. 2022

코로나 진단 키트 구매 분쟁기

전국적으로 코로나 진단 키트가 정말 난리다. 약국마다 품절이고, 심지어 25개입 덕용 키트도 인기가 상당하다. 가격도 15만 원 안팎으로 결코 저렴하다 할 수 없는데도 그러하다. 약국에 전화벨이 울리면 자동 응답으로 '코로나 키트는 품절입니다. 통화를 계속하시겠습니까?'라는 멘트가 나가야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상비약 꾸러미를 찾는 사람들도 어마어마하다. 막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코로나가 퍼져 나가는 걸 통제하는 건 한계에 도달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그런 와중에 또 황당한 일이 있었다.


하루는 25개입 코로나 진단 키트를 판매했다. 마감 시간에 오신 분이었으므로 대강 기억이 난다. 흰 패딩을 입은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 분이었다. 마침 약국에 딱 하나 남은 코로나 진단 키트 재고가 25개입 짜리여서, 그거라도 구매하시겠는지 의사를 여쭙고. 그분은 가격을 문의하셨다. 판매가가 1n만원이었기 때문에 나는 "십n만원 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분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구매해 가셨다. 아마 다른 약국도 돌다가 재고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여기까지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늘. 약국에서 전화가 와서 그 손님이 찾아와서 "여자 약사님이 n만원이라고 했는데, 결제 내역을 확인하니 1n만원이 찍혀있더라"라고 컴플레인을 걸고 있다고 했다. 손님이 아무리 말을 해도 얘기가 되지 않는 상황인데, 판매는 내가 했으니 날더러 전화를 연결해서 통화를 좀 해줄 수 없겠냐는 국장님의 부탁이었다. 국장님도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어쩔 줄 몰라하셨다. 나는 그저 1n만원 짜리를 1n만원에 팔았을 뿐인데(심지어 지금 찾아보니 인터넷 최저가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이런 상황에 무엇을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전화가 연결됐고 손님은 잔뜩 성이 난 목소리로 n만원이라고 해서 샀는데 왜 1n만원이냐고 몰아붙이듯이 얘기를 쏟아냈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저는 1n만원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 약국에서는 키트 2개입을 1n000원에 판매하는데 25개입을 어떻게 n만원에 팔 수가 있겠느냐, 상식적으로도 그건 말이 안 되는 가격이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손님은 막무가내였다. 키트를 사용이라도 안 했다면 물건을 받고 환불이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이지 답답했다. 나는 다시 키트가 1개에 평균적으로 7-8천 원 선이고, 전국적으로 현재 품절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와중에 25개입이 n만원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얘기했다. 그분은 갑자기 알겠다며, 자신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순화한 표현) 그냥 쓰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내게 일을 그렇게 하지 말고, 좋은 하루 보내시란다. 나는 말을 잃었다.


순간 화가 무척 났다.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가를 곰곰이 따져 생각해 보았다. 나는 1n만원 짜리를 1n만원 받고 판매한 일밖에 없는데 뭘 어떻게 하면 안 됐던 것인지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니, 뭘 잘못을 했어야 고치지 않을까? 근데 잘못이 뭔지 모르겠어. 그리고 화가 부글부글 올라왔지. 하지만 나는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또 감정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고로 나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어 속이 끓으니 아무래도 명상을 했다. 어쩌다 명상에 길이 들어 마음에 응급약 처치도 할 수 있게 되었지 뭔가.


그렇게 가부좌를 틀고 한 10여분을 앉아 감정을 잘 여과해 내렸다. 씻은 듯이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게 됐다. 아, 내가 십 n만원이라고 말해서 혹시 그 사람은 n만원이라고 들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n만원이라고 말했으므로 내가 옳다는 주장만 한다. 그 사람은 n만원이라고 들었으므로 제가 옳다는 주장만 한다. 둘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그 사이에는 오로지 착오만 있을 뿐이다. 나 역시 소비자로서 내가 생각한 가격과 실 결제한 가격이 상이하면 놀라고 당혹스럽던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그 사람의 당혹스러움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저는 분명 1n만원이라고 말했습니다'라고 답변부터 한 점이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내 잘못이 맞다고 판단했고, 그 점은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다시 문자를 했다. 안녕하세요, 방금 통화했던 약사인데요, 로 시작하는. 어쨌든 현재 키트는 전국적으로 가격이 얼마 정도고,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상태다. 25개입이 n만원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착오가 있으셔서 당황하셨을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 부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점은 죄송하다. 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짚어주신 부분은 업무에 참고하여 보다 개선해 나가도록 하겠다. 충고 감사드린다. 또 좋은 하루 보내라고 해주셔서 감사하다. 손님도 좋은 하루 보내시라. 가격 때문에 참고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 인터넷 최저가도 25개입 가격은 1n만원 이상인 점 확인 가능하시다. 그러니 가격에 있어서 오해 없으셨으면 좋겠다. 더 좋은 모습으로 뵙기 위해 노력하겠다. 감사하다.


화를 내지 않고 화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런 마음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내가 감정이란 함정에 빠지는지 아닌지 따위를 확인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로서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르고. 좌우간 다들 무언가 알려주려고 애를 쓰고 나는 그저 배우기만 하면 되나 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모든 일이 선생님이다. 좋다.


아무튼 모든 잘잘못의 귀책을 꼽자면 역시 코로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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