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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Dec 26. 2021

직업이라는 세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직업에 대한 고찰

황선우 작가의 신간인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읽었다. 제목만 봐서는 아무래도 사랑에 관한 글인가 할 테지만, 정작 내용은 업과 태에 관한 얘기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과 ‘용기’라는 방대한 단어들이 왜 등장하는 걸까, 하고 갸우뚱했다. 제목만 보고 장바구니에 넣은 사람은 필시 난처하리라.

아니. 풋풋하거나 농밀한 연애담을 기대했는데 일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한 권씩이나 엮을 수 있어?! 하며 잔 푸념을 늘어놓게 될는지도.


그러게나 말이다. 어떻게 일에 대한 이야기로 한 권의 책까지 엮어낼까. 자고로 일이란 익숙해진 다음에는 어떤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쳇바퀴 굴리기 같은 것이라, 돌고 돌면 연료가 고갈되듯이 이야깃감도 사그라들기 마련인데. (보다 정확히는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하였는데.) 사랑이니, 용기니 하는 대단한 수사들을 곁들이면서까지 말할 게 있을까? 이런 의구심은 업을 두고도 업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되는 나의 고민과 엉뚱하게 맞물려 피어났다.


그러나 생활의 달인에서도 일에 10년쯤 골몰하면 달인으로 인정을  지 않던가. 각자의 업에서 달인의 경지에 도달하면 전달하고 싶은 노하우랄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달인의 경지에 이르려면 한참 멀었으니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원거리의 이야기를 감사한 마음으로 귀담아,  담아 보기로 했다. 단순히 일에 대한 책이라기엔 삶에 대한 그만의 시각이 간결하고도 매력적으로 담겨있어 읽기 잘했다 싶었다. 비록 업종은 다를지언정, 일에 대해 어떤 관점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같았기에 결국 내게는 선배의 애정 어린 문장들이 다가왔던 셈이다.


일에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까지 필요한 이유가 뭘까? 나는 문득 나를 휘감은 자본주의를 생각한다. 가끔은 딛고 싶지 않은 땅을 딛고, 참가한 적 없는 레이스 위에서 달리는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황금빛 사상을.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는가, 일을 하다 보니 돈이 벌어지는가? 가끔 후자에서 전자로 전락한 것만 같은 스스로를 마주하는 기분은, 어쩌면 타락한 자신을 바라보는 천사의 심정 같은 걸까 상상한다. (물론 내가 천사라는 뜻은 아니다… ㅋㅋㅋ)


세태가 이러하다 보니 우리에게는 일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때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나 보다. 다수가 월요일과 병을 자동완성 하는 와중에 ‘나 사실은 일을 사랑하고 월요일도 사랑해’라는 자기 고백은 기만처럼 들리기가 쉬우니까. 만인이 핍박하는 대상을 사실 나는 몹시도 사랑해,라고 토로하는 것에는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건물주를 꿈꾸고 파이어족을 꿈꾸며 자본이 자본을 버는 현실은 모르고 하는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얘기로 치부된대도 할 말 없다. 어느 정도 예리한 현실 감각은 분명히 필요하니까.


나도 고백하자면 건물주를 꿈꾸고 파이어족을 꿈꾼다. 자본주의 시대의 자유시민으로서 더 광활한 자유를 꿈꾼다. 시간이라는 묶음 속에서의 탈피를 꿈꾼다. 그러나 어떤 욕구를 생각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면, ‘왜’라는 물음이다. 본질적으로 왜 건물주가, 파이어족이 되어야만 하는지. 그러면 나는 정말 행복할 것인지. 그것으로 충분한지. 내면에서 어떤 만족감을 찾아낼 것인지.


이런저런 탐험도 여행도 마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 다음에도 나는 다시 같은 일상을 살아가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반드시 멈추지 않아도 되는 업을 가졌다는 건 내 운명과도 잘 어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캐릭터로 태어났는지, 성장했는지,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가끔 월요일은 싫고,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때도 있는데 그럼에도 이제는 수줍게 말해볼까. 나는 내 일을 ㅅ.. 사.. 좋아한다고. 다만 약간의 자기 신념과 철학을 곁들인. 그런 자기 효능감은 어떤 명약보다 나를 건강하게 만드니까. 그러니 적절한 균형 위에서 정체되지 않는 새벽을 가꾸고 싶다는 것이 오늘의 소망. 그리고 나는 그런 나의 소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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