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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Jun 03. 2022

도쿄에는 왜 이리도 비가 자주 내리는 걸까

내가 도쿄에 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노트북의 영혼이 아무래도 도쿄에 있는 것만 같기에 쓴다. 언제부터 영혼이 도쿄에 있었냐면, 처음부터 그랬다. 노트북을 켜자마자 마주한 것은 도쿄의 날씨. 비. 노트북의 영혼은 좀처럼 도쿄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잠깐은 종로구 어딘가에 머무른 적도 있었지만, 여행객이 그렇듯 금세 도쿄로 회귀해 버린 노트북의 영혼.


그래서일까. 나는 네이버를 켜면 의도치 않게 도쿄의 날씨부터 보게 된다. 할 수 없이. (능동형이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이다.) 보려고 보는 건 아닌데, 보기 좋은 위치에 놓여있으니 보는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도쿄의 날씨 정보만큼이나 지금의 내게 쓸모없는 것이 또 있을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을 한 밤의 축제만큼이나 무관하다. 날씨란 것은 몇 시간이 지나면 훌쩍 뒤바뀌어 버리는 지극히 순간적인 것. 도쿄라는 물리적 공간은 날씨를 넘어 도달하기엔 어쩐지 조금 먼 곳. 비가 내린다는 것은 한 지역을 온통 축축한 수분으로 적시고 있는 대규모 사건인데도 그렇다. 도쿄에 비가 내리는 것은 나와 하등의 상관이 없다. 지금 이곳의 바깥은 화창하기 그지없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쿄의 날씨를 훔쳐본다.


내가 도쿄에 특별한 상사(相思)의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도, 특별한 추억을 흘리고 왔기 때문도 아니다. 도쿄에 두고 온 인연이 따로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오, 이렇다 할 동경(憧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수학여행이랍시고 신주쿠 일대를 조금 쏘다닌 것이 그나마 빈약한 기억의 전부인 것을. 다만 나는 노트북과 매일을 동행하게 되었으므로, 노트북의 영혼이 나를 인도하는 대로 도쿄에도 얼마쯤은 발을 걸치게 된 셈이다. 그래서 오늘 도쿄는 맑은지, 흐린지, 비가 내리는지를 살피고야 만다. 어쩌면 그것은 내 마음의 날씨와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한동안 도쿄에는 꽤나 자주 비가 내렸다. 내가 사는 곳은 내내 화창했는데. 노트북의 영혼은 타국의 거리에서 비를 맞고 있겠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묘했다. 실상 내가 상상하는 도쿄는 2010년에 머문다. 그때 보았던 창밖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던 풍경 어디쯤의 차양 아래에 노트북의 영혼이 멈추어 있을까. 지금 비가 내리는 도쿄의 풍경은 내 기억 속에 사진처럼 박제된 풍경과는 분명히 다를 테지. 나는 영영 무엇이 다른지 모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줄 안다. 이런 상상은 도쿄에 지금 비가 내린다는 사실만큼이나 실없고, 덧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하고 만다.


도쿄에는  이리도 비가 자주 내리는 건가요. 기후 변화 때문인가요. 원래 비가 잦은 동네인가요. 장마기에 접어들었나요. 아니면 아무 이유도 없는 건가요. 예보가 말없이 도쿄에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알릴 때면 마음속에 놓인 도쿄의 풍경 위로 나는 비를 흩뿌린다. 정말 도쿄에 비가 오는 걸까? 그런 사실은 사실 전혀 중요한 문제가 더는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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