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예 Feb 06. 2023

벗으로서의 글쓰기

글쓰기에 대하여

글 쓰는 빈도가 많이 줄었습니다.


완성된 형태의 에세이를 쓰는 일뿐만 아니라 일기를 적는, 그러니까 무언가를 끄적이는 일 자체가 줄었습니다. 굳이 글로 적어 끄집어내야 하는, 요동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요즘의 소박한 일상은 퍽 만족스러워 순간순간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혼잣말을 합니다.


‘아, 좋다—‘하고요.


물론 글 쓰는 일에 소홀해지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게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은 마음먹는 것과는 무관하게 벌어지고 흘러갑니다. 글 쓰는 일과 멀어진 요즘의 일상도 어떤 자연스러운 흐름일까 싶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많은 글을 토해내듯이 썼던 순간은 언제나 불가피하게 만난 캄캄한 터널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기실 글쓰기는 어떤 행위에 불과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글쓰기의 실체를 그렇게만 묘사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글쓰기는 취미 생활도 되어 주었고, 어느 순간엔 조그만 영예도 되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오랜 벗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어쩐지 글쓰기에 모종의 부채의식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타인에게 의존적이지 않은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저는 다른 것에 의존했기 때문에 달리 의존할 타인이 불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화가 나는 순간에는 글을 씁니다. 서글픈 날에도 글을 씁니다.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는 글을 씁니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날도, 하루빨리 잊고 싶은 날도 무언가를 기록합니다. 글쓰기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고, 물기 어린 마음을 닦아내는 위로이며, 등을 토닥여주는 좋은 벗입니다. 기쁜 날에도 참 좋은 친구였지만, 살다 보면 으레 작은 위안에서 거대한 의미를 발견하게 되듯이, 험난한 터널을 빠져나갈 때까지 묵묵히 함께 걸어주었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행위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요즘엔 새해가 밝아도 별 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딱히 계획을 세운다고 지키는 것은 아니니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무계획이 가장 좋은 계획이라는 요령을 터득한 탓일 수도 있으며, 조금은 일상의 안온함에 잠겨있고 싶은 게으른 마음도 반영된 결과입니다. 올해도 별달리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쓸 수 있을 때 뭐라도 쓰자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쩐지 반성문 같기도 하고 사과문 같기도 한 이 글도 씁니다. 쓰지 않은 나날들의 스스로에겐 반성이고, 글쓰기라는 벗에게는 사과문도 되겠지요.


새해에는 터널을 걷는 순간이 아니라도, 그러니까 힘든 순간만 글쓰기를 찾아 위안을 구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그러나 진지하게!) 높고 낮음을 함께 향유하겠다는 그런 다짐을 해 봅니다. 어쩐지 새해의 단단하고 고요한 길잡이가 생겨난 기분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실 스스로를 발굴하는 여정이겠지요. 그러면 저는 또 글을 쓰다 말고 ‘아, 좋다—’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려나요. 그러고 보면 좋은 행위와 친구를 맺는 일은 좋은 사람을 사귀는 것과 맞먹는 큰 행운이지 싶습니다.


진득한 우정을 쌓아보기로 마음먹는 일요일 밤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쿄에는 왜 이리도 비가 자주 내리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