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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Jun 11. 2023

넘어졌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넘어지는 때는 분명히 있다

사람은 애초에 넘어지면서 성장하는 존재다. 무수히 넘어졌기에 비로소 일어서고, 걷고, 달릴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 넘어지는 횟수는 줄어드는 반면 넘어졌을 때의 타격은 커진다. 그래서 안 넘어지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넘어지는 순간은 분명히 온다는 것이다. 양상만 다양히 펼쳐질 뿐.


그렇다면 살다가 고꾸라졌을 때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넘어져서 다친 부위에 피가 난다면 지혈을 해야겠지. 덧나지 않게 소독도 해야 하고, 항생제 연고도 바르고 방수 밴드도 붙여야 한다. 흉터가 생기길 원치 않는다면 메디폼을… 그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면 의사를 만나야 할 수도 있고, 어쩌면 몇 바늘쯤은 꿰매야 할 수도 있고. 이게 오늘날까지 사고의 흐름이었다. 넘어진 상황을 타개할 방책부터 찾아낸다. 과거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결책을 모색한다. (딴말이지만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들 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는 넘어지지 말아야지 하고 예방책을 세울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든 넘어질 일은 생기게 마련이다. 죽어라 죽어라 하고 넘어뜨리는 상황이 있으니까. 재미있는 지점은 죽으라고 한대도 죽을 때가 아니면 죽을 수가 없고 살라고 한대도 살 때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는 점이긴 한데. 좌우간 넘어진 다음에 무릎 툭툭 털고 일어나서 구급상자를 찾는 것도 좋고, 왜 넘어졌는지를 복기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핵심은 내가 넘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데 있다. 요걸 여태껏 못했더랬다.


넘어지니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수도 있고, 어쩌면 엉엉 목 놓아 울 수도 있다. 제각기 다채로운 반응은 튀어나오겠지만, 그보다 일단은 넘어진 사실 자체를 수용하는 게 먼저다. 그런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넘어지고 싶지 않았고 다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고, 나는 넘어지면 안 되고 다치면 안 된다는 관념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넘어질 수 있다. 다칠 수 있다. 넘어져도 된다. 다쳐도 된다. 그러니까 넘어진 상황은 넘어진 상황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뿐이다. 이랬어야 해, 저랬어야 해 하는 의견을 덧붙이지 않고 포용하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을 사랑한다던 고백은 여지껏 위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넘어지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삶을 사랑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만일 넘어지지 않는 일면만을 사랑한다고 하면 코끼리 전부가 아니라 코끼리의 코 정도만 사랑한다는 뜻이 되는 거였다. 인간도 인생도 코끼리도 다면적인 것인데 말이다.


코끼리는 코가 특색이라고는 하지만, 흔들거리는 꼬리도 귀엽고 넓적한 귀가 펄럭이는 모양도 귀엽고… 그러니 이왕이면 거대한 덩어리 자체를 사랑하는 편이 좋은 것 같다. 애초에 일부로서는 전체가 성립할 수가 없기도 하고.


이렇게 굽이 굽이 넘어가야 바다에 닿는다고들 한다. 모퉁이 모퉁이마다 모르는 것이 튀어나오니 심장은 두근거린다. 무슨 모험대라도 된 것 같다. 근데 모험이 아니고야 달리 무엇일까, 삶이. 그러니 이것도 저것도 두 팔 벌려 환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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