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였나. 결혼에 관한 얘기를 하다 결혼이라는 것은 상대방에게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어주는 일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나는 공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세상엔 너무나 변수가 많으니까. 하나라도 제대로 된 상수를 두고 싶은 마음은 백번이고 천 번이고 납득이 가는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방정식을 풀 때, 상수가 많아지면 풀기가 쉬워지니까. 쉬운 것을 갈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잖아.
그러나 이것은 나라는 존재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상수라는 믿음이 전제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나 나는 이제 나조차도 나에게 변수였음을 퍼뜩 깨닫고야 말았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 변화무쌍한 삶의 방정식이 펼쳐지는 방식이었음을.
나 역시 나 스스로의 변수인 주제에 상수인 타인을 바라는 마음이라니. 그 마음을 두고 나약하다고 타박을 할 심산에서 글을 끼적이는 것은 결코 아니고, 다만, 타인이 내게 상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내가 타인에게 상수가 될 수 있기를 바라기로 태도를 고쳐먹기로 결심했다고나 할까.
어차피 나는 나에게도 변수였고 마찬가지로 이 세상 그 무엇도 변수밖에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상수이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과 같이 커다란 간극을 두고 있으므로. 변수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상수를 찾아 헤맬 게 아니라 나야말로 상수가 되겠다는 마음가짐. 나조차 나에게 변수인 주제에, 어쩌면 호기롭고 맹랑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상향이란 어디까지나 도달할 수는 없되 가까워질 수 있는 어딘가에 위치하기 때문에 방향성만을 정할 수 있다 해도 큰 성과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변수의 세상 속에서 상수를 찾는 일. 기실 모든 것이 변수라는 것이야말로 지당한 상수임을 미처 알아채지 못할 때 해답과는 멀어지게 된다. 삶은 상수를 두고 변수의 정체를 밝혀내는 방정식보다는 다채로운 변수를 대입해서 번번이 다른 답을 내는 함수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좀 이과 같았나. 엣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