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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Aug 20. 2023

뭣이 중헌디

사랑, 기쁨 그리고 의욕

나의 참새방앗간

나는 특별히 볼 일이 없어도 곧잘 서점에 들르곤 한다. 살 책이 있어도 서점에 가지만 살 책이 없어도 서점에 간다. 그저 발길을 한다. 왜냐하면 빽빽한 서가에 채워진 책들이 풍기는 향이 좋고, 반듯이 놓인 책들이 좋고, 우연히 만나게 될 책들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는 (거짓말은 아니지만) 방금 막 지어낸 것들이고… 서점에 가는 이유는 사실 따로 없다. ‘그냥’이 유일한 이유다. 참새방앗간처럼 꼭 발도장을 찍는 것은 몸에 새겨진 습관인 것도 같다, 이제는.


서점에 가서 매대며 책장을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책들이 빼곡히도 놓여 있다. 나는 어쩌면 문장과의 우연한 만남을, 실은 몹시 고대하며, 책을 들춰본다. 그런데 책을 들춰보는 행위에는 어느새 묘한 미신적 사고가 가미된다. 펼치다 보면 희한하게 가슴에 울림을 주는 글귀를 우연히 만나는 날이 적지 않아서다. 한때 ‘답’을 알려준다던 책이 있었다. 고민을 생각하고, 책을 펼쳐보면, 그 고민에 대한 답이 나온다는 약간은 미신적 사고에 기반한 상술(?)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그런데 나는 자체적으로 이미 그런 미신적 행위를 서점에서 알음알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히 무슨 고민에 대한 답을 바라고 책을 펼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결론적으로 그렇게 된다.


아무튼 오늘도 그렇게 교보문고에 발길을 해서 서가를 둘러보다가 한 때 읽었던 책이 매대에 놓여 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한가운데를 펼쳤다. 마이클 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이라는 서적으로, 단번에 열어 본 대목은 83쪽이었다.


당신은 자신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유일한 것은 기쁨과 사랑과 의욕을 느끼는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것을 항상 느낄 수만 있다면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언제나 고양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순간의 경험에 늘 짜릿한 흥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경험이 어떤 것인지는 상관없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내면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름답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항상 열려 있는 법을 배운다. (중략)
진정으로 열려 있기를 원한다면, 사랑과 열의를 느낄 때 주의 깊게 살펴보라. 이 기분을 왜 언제나 느끼지 못하는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것은 왜 다시 사라져야 하는가? 대답은 분명하다. 당신이 가슴을 닫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다.


갑자기 띵—하는 소리가 뇌리에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첫째로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라는 낱말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고, 둘째로 어쩐지 나는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라는 세 단어를 한데 모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는 게 다소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며, 셋째로 분명히 한 번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대목은 처음 접하는 것처럼 신선했기 때문이다.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입 안에 굴려보았다.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라. 사랑과 기쁨과 의욕…


언젠가 인간은 딱 세 가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관계, 돈, 건강’이라고 했다. 읽자마자 ’아—‘하는 소리가 나왔다. 관계와 돈과 건강이 이미 충분하다면 삶에 달리 불만족할 이유가 있을까. 내 삶만 둘러봐도 그랬다. 그 누구의 삶에 대입한다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관계와 돈과 건강은 사랑과 기쁨과 의욕에 수반되는 보너스 상품 정도인 것은 아닐까.


물론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 관계와 돈과 건강을 담보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 있다고 한다면, 삶의 모양이 어떤 게 뭐가 중요할까. 마음속에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 있다고 하면, 관계와 돈과 건강이 담보되지 않을 지언정, ‘불구하고 행복’은 담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행복’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 말이다.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라는 세 단어는 정말이지 아름다워서 가만히 머금고 있어도 좋다. 요즘 들어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부쩍 생각한다. 그런데 사랑과 기쁨과 의욕이 삶의 정수에 아무래도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닿아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질 수가 없다. 한편 그것은 내 마음 내기에 달렸다는 것도 신비롭다. 주려고 해도 받을 재간이 없고, 받고자 해도 줄 재간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안에는 만연해 있는 것들.


원천이 안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까먹기 쉬운 일이다. 마음에 관한 한 원시안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만 활자를 만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서점을 별 용무도 없으면서 괜스레 들락날락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전해주는 문장을 돋보기 삼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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