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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Aug 27. 2023

쓸데없는 사랑

강물은 흘러가야만 한다지만

아끼는 친구와 오늘 작별 인사를 했다.


아마도 당분간은 만날 수가 없을 테니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알고 있었다. 사실 정해진 날짜보다 일정이 늦춰져서 몇 달 더 재미나게 놀 수 있었다. 예정대로라고 하면 진즉에 인사를 했어야 했다.


덤덤한 친구 앞에서 괜한 투정도 부려보다가 어쨌든 가야 하는 시간이니까 발걸음을 뗀다. 나는 항상 이런 순간에 뒤를 돌아보게 된다. 기묘한 기분이 든다. 적응이 안 된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나를 판단했는데 아무래도 아닌가 보다. 감정적인 사람이라 외피를 이성으로 두르려고 애를 썼나? 아니면 이성을 뚫고 감정에 담은 사람들에겐 취약해지고야 마는 걸까.


나는 나랑 평생을 붙어살고 있으면서도 도통 나를 모르겠다.


친구는 마지막이 아닌데 뭘 마지막이라고 하느냐고 웃었다. 딱히 할 말이 더 남은 것도 없으니 시간을 더 끌 것도 없다. 당분간의 마지막이라는 조건을 붙여놓고 혼자 씁쓸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괜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왜 이럴 때는 튀어나오는 말이 없을까. 담백하게 인사를 건넸다. 마음은 울지만 눈은 울지 않는다.


한때는 너도 감정적인 때가 있었는데,라는 말에 친구는 그때는 어렸으니까,라고 했다.


슬픔도 한낱 감정이라 지나가는 줄은 알지만, 지나갈 것을 아니까 지금의 슬픔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어른이 되는 일이라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는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면 일부는, 어쩌면 대부분 필시 잃게 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한 아픔 역시 필연적이 된다. 그런 감각에 무뎌져서 아프지 않은 게 어른이 되는 일이라면,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아픈 일쯤은 어려서 겪는 일로 치부하고 말았으면 싶다.


안다, 이러나 저러나 이 또한 지나간다는 것을. 이 말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커다란 기쁨과 슬픔을 가른다. 그러나 기쁨과 슬픔은 언제나 한 묶음으로 온다. 기쁨만 와 주면 고맙겠는데 그런 법이 없다. 슬픔이란 배경이 없으면 기쁨도 영 힘을 못 써서 그런가 보다. 하여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너무 사랑하는 것이 많아서, 가끔은 이 모든 걸 사랑하는 나만 조용히 빠져나오길 기도하곤 한다. 고이면 썩을 줄 알면서도, 고이길 기도하는 모순 속에는 괴로움이 놓여 있는 줄을 알면서도, 이런다.


친구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했다.

여기가 생각을 자를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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