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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Aug 24. 2023

가수는 아니지만 목 관리는 해야겠어

어쩌면 약사에게 필요한 의외의(?) 자질

두괄식 글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미 정답을 문제 내기도 전에 써버린 것 같기는 한데, 약국에서 일하면서 그 필요성을 더더욱 절감하게 되는 자질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목소리다.


사실 나는 살면서 목소리나 목청, 발성 같은 것에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 예전부터 다른 사람 말하는 소리는 안 들려도 네가 말하는 말은 멀리서부터 무슨 말인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다 알아듣겠다는 말을 들어왔을 정도로, 나의 목소리는 크고 또렷하다. 발음도 정확한 편이라 딕션이 좋다는 말을 들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심지어 학교를 다닐 때는 이 특성을 살리려면 교단에 서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매우 장점인 것 같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살면서는 오히려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곧바로 떠오르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술자리에서 내가 있는 테이블은 높은 확률로 지적을 받는 게 일쑤였다. ‘거, 조금만 조용히 좀 합시다.’ 초반엔 괜찮다가 나중에 얘기에 불이 붙으면 나도 모르게 목청이 커지는 것이다. 그때마다 일행들의 손가락과 눈길은 내게 쏠리곤 했다. 지면을 빌려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미안, 친구들…


2. 1의 반사 효과로 내 친구들도 덩달아(?) 목청이 커지기 시작한다. 일단 목청 큰 놈이 이기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테이블은 또 지적을 받는다. 이젠 나 때문만은 아니게 됐지만, 여튼 우리들은 또 고개를 숙이게 된다.


3. 1, 2의 문제로 우리들은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된다. 누가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면 ‘야, 너 목소리 좀 줄여’라고 남들한테 한소리 듣기 전에 내부적으로 검열을 하는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또 화제성이 높은 대화를 하다 보면 1 또는 2의 상황이 재발한다.


4. 카페에서 비밀 이야기를 할 때 특히나 쥐약이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다.


5. 지하철이나 버스, 내지는 카페 등에서 통화를 할 때도 소곤소곤 작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국가 기밀 등의 수준 있는 얘기를 하기엔 매우 곤란하다. 안보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구적 차원의 안전을 위해… 대의를 위해 입을 다뭅니다.


이외에도 기타 등등…


아무튼 이러한 생활 상의 불편이 있기는 하지만 직업적으로는 내가 가진 자질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상당히 큰 도움이 되어 주었다.


환자에게 복약 안내를 하는 것이 일상인지라 어떤 약을 어떻게 먹고, 왜 먹고, 무슨 작용을 하고,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등등을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목청도 크고 발음도 정확하고 목도 튼튼했기 때문에 — 예전에 노래방에서 3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고도 목이 쉬지 않고 말짱해서 내 목이 튼튼한 줄로만 알았다 — 여태까지는 이게 뭐 그리 감사할 일인 줄도 모르고 나의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휘하며 살았더랬다.


그러다 최근 들어 목 쪽으로 경증의 염증이 생기면서 말을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해졌지 뭔가. 그러고 나니 발음을 명료하게 한다고 하는데 평소처럼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 같지 않고 약간 어눌한 것 같다고 (나 혼자)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뿔싸. 뒤늦게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불러 제껴도 멀쩡하던 목이라고 방심을 단단히 했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아아…


열심히 일한 성대와 기관지에 예우를 갖추지 아니하고, 마구잡이로 살았던 나날을 반성하며 이제라도 기관지 염증을 줄여주는 약과 목의 기운을 보충해 주는 것들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내가 가수도 아닌데 이렇게 목 건강까지 신경 쓰게 될 줄이야…


그런데 말이다. 돌이켜 보니 약사에게 있어 목 건강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말을 하는 것도 업무의 일부라서 그렇다. 그것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단 복약안내만 해도 그렇다. 설명할 게 많으니 말도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소아과는 정말로 말할 게 많다.) 일반약을 판매할 때에도 환자에게 이것저것 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건강 상담을 할 때는 더 많다. 전화 상으로도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생기는데, 약이 많고 복잡할수록 재차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왕왕 발생한다. 그 외에도 매일 약국에 출근 도장을 찍으시는 동네 할머니들이 툭툭 던지는 말에 너스레를 떠는 일도 해야 하고, 조직원들과의 친목 도모를 위한 스몰토크에도 필수이며 기타 등등…


그러니까 그동안 모르는 사이에 목이 굉장히 열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간과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많이 쓰고 챙기지 아니하면 닳기 마련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오래, 그리고 멀리, 꾸준히 가기 위해서야 중요하지 않은 것이 한 터럭 있을 리도 만무하다만.

잘 전달하기 위해서 명료하게 말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더욱이 하루이틀이 아닌, 긴 호흡으로 가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물도 자주 마시고,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도 뿌리고, 맥문동탕도 먹고, 도라지 캔디도 즐기면서, 침묵의 시간도 잘 가져야겠다. 필수 자질이 지속 가능성을 잃지 않도록. 보살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그리고.. 이렇게 튼튼한 목도 간당간당(?)하게 만들다니 약국 일.. 후후.. 만만치 않은 걸..? 두고 봐.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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