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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Aug 27. 2021

이러려고 맹장을 뗐나

  사실 내가 병원에 취직하기로 마음이 기우고야 만 데에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비밀스러운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때는 9월이었다. 슬슬 국가고시라는 것을 준비를 해야 하나 하며 의자에 오래 앉아있곤 하던. 그러던 어느 날, 몸이 으슬으슬했다. 환절기마다 인후염에 곧잘 걸리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열이 나다가 목이 칼칼하니 아프고. 내 몸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이비인후과에 갔다. 이때는 학교에서 공부를 한답시고 평소에 다니던 동네 병원이 아닌, 학교 인근의 의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들어갔을 때부터 분위기가 좀 유별났다. 내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이비인후과의 느낌이 아니었다. 목소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병원이란다. 일단은 어딘가 미심쩍은 마음은 접어두고 진료를 보았다. 의사 선생님이 내 후두개를 영상으로 보여주며 말했다.


“염증 소견은 없고요, 목에 자극이 가는 습관이 있으신가 보네요?”

“아, 인후염 아니에요?”

“보면 염증이 없어요. 그런데 목소리가 허스키하시거든요, 지금. 평소에 목을 긁는 식으로 발성을 하시나요?”

“아... 염증이 아니에요? 열도 나는데...”

“목에는 염증이 없고요. 목소리를 잘 관리를 하셔야 하는데요...”


  나는 열이 나고 으슬으슬한데 염증이 아니라니 무슨 일이지 의아하고. 의사 선생님은 염증 소견은 없어 항생제 처방은 불필요하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으니 관리를 잘하란다. 목소리가 우려된다고만 하는 것이다.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상의 대화만 이어졌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병원을 나와서 생각했다.


“돌팔이 아냐...?”


  미심쩍어진 나는 처방전으로 약을 짓지도 않았다. 항생제도 없고, 그저 진해거담제 정도라 먹는다고 해도 차도도 없을 것 같았다. 이렇다 할 해결책도 없이 기운은 없는 채로 귀가를 했다. 자고 일어나면 좀 나아지겠거니, 장판을 뜨뜻하게 틀고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 잤을까...


  배가 아파서 눈을 떴다. 몸에는 오한이 마구 일고 있었다. 아랫배가 알 수 없이 묵직한 것이 변비라기엔 예사롭지 않았다. 마침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왔길래 부스스한 몰골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아파...”

“어디가? 어떻게?”

“배에 뭐가 들어있는 것 같이 묵직해...”


엄마는 흐음,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갑자기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은 가 봤어? 변비 아냐 변비? 똥이 묵직한 거 아냐?”


그러나 나는 웃을 힘도 없어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화장실은 가봤는데 소용없어... 아무래도 이상해. 병원에 가 봐야겠어...”


  그제야 엄마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부랴부랴 동네의 2차 병원 응급실로 나를 싣고 갔다. 가면서 나의 컨디션은 더욱 엉망이 되어갔다. 그렇게 인생 처음으로 응급실에 도착했다. 침상에 가만히 누워 문진을 했다. 사실 이때의 기억은 대체로 흐리멍덩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고 가며 차트에 무언가를 마구 적었다. 윗배가 아프냐, 아랫배가 아프냐... 배를 직접 쿡쿡 눌러보면서 나에게 질문했고 나는 힘없이 ‘아파요...’만 중얼중얼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CT 촬영을 하게 됐다. 가뜩이나 배도 아파 죽을 맛인데 조영제까지 넣으니 울렁거리고 메스꺼움마저 추가됐다. 영상이 판독되기까지 또 하염없는 기다림만이 이어졌다. 응급실엔 대체로 아주 소아이거나 아주 노인인 사람 말고 나같이 어중간한 사람은 나뿐이라 나의 처지를 스스로 동정할 무렵이었다.


“맹장염이시네요.”


  맹장염이라. 그건 소꿉놀이하다가 흙 파먹고 그러면 걸리는 거 아니었나...? 맹장염은 초등학생 때나 걸리는 건 줄 알았는데. 무슨 일로 갑자기 맹장이 이렇게 맹렬히 화가 난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맹장에게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튼 일단 원인은 감별했고, 그러면 대체 언제쯤 수술을 할 수 있냐니까 지금 당직의가 없어서 다음날 아침 출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단다.


  1분 1초가 죽을 맛인데 8시간 가까이를 이러고 뜬 눈으로 고통을 온전히 맛보며 기다리라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하게 부푼 시한폭탄 같은 맹장을 움켜쥐고서... 당장 수술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 다른 병원에 가면 가능할 수도 있단다. 그렇게 가게 된 병원은 — 바로 내가 취직하게 되는 — 3차 병원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응급실에서는 신속하게 내게서 맹장을 분리하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해주었다. 사실 전신마취를 했으므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복강경 수술로 배꼽에 구멍을 내서 맹장을 떼어내는지라 상처도 없이 감쪽같다. 병실에 누워 있는데 아빠는 네 맹장을 보았다며 적출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징그럽다기보다, 있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인 것만 같은... 시뻘겋고 커다랗게 부풀어있는 내 맹장은 과연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고 했다. 크기가 10cm 하고도 몇이라던가... 나를 며칠씩 고통스럽게 했던, 이제는 내게서 떨어져 나간 조직은 고작 10cm의 남짓에 불과하다니. 인생은 생각보다 작은 것으로도 크게 고통받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문득 했다.


  몸이 제법 빠르게 회복되었으므로 불쑥 나는 궁금해졌다. 이 병원의 약국은 어떤지가.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조금 움직일 겸, 병동 약국을 슬쩍 둘러보기로 했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곳이지만, 그때는 어쩐지 선망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나를 잘 치료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했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도움의 일부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루하고 반나절의 짧은 주말의 입원 기간을 마치곤 곧장 일상으로 돌아갔다. 몇 번인가의 외래 내원을 통해 복강경 마감 부위에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소독작업만 하며 경과를 관찰했다. 고통은 수술과 동시에 사라졌고, 그렇게 무사히 별 탈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국가고시도 잘 치를 수 있었고 말이다. 나름대로 잘 치료된 좋은 기억 덕분인지 때문인지, 병원에 원서까지 쓰게 됐고. 실은 약사고시 합격 사실이 발표되기도 전부터, 졸업도 하기 전인 2월부터 병원에 출근을 시작했다. 그렇게 약사로서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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