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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Aug 04. 2021

코드블루

약사라는 업의 무게

  엄밀히는 약사라는 직업보다 병원 근무라는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병원에 있으면 심심찮게 듣는 방송 멘트(?)가 있으니 바로 '코드 OO'이다. 응급 코드에는 코드 블루(심정지 환자 발생 시), 코드 레드(화재 시), 코드 블랙(지진 및 재난 시), 코드 퍼플(원내 위험 or 이상한 사람이 나타난 경우) 등이 있으며 더 찾아보니 코드 핑크(아동 유괴 발생 시), 코드 오렌지(원내 유해물질 살포 시) 등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직접 들어본 코드는 코드 블루와 코드 퍼플이 전부다.)

 

  아무래도 가장 대표적인 응급 코드는 '코드 블루'다. 코드 블루란 환자가 심정지 상태에 빠진 경우인데, 의학드라마 같은 곳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므로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병원에서 실제로 가장 많이 나오는 코드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는 의사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지?


  학생 시절 병원에서 실습을 막 시작했을 때, 세미나를 듣다가 처음으로 코드블루를 들었을 때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는 느낌을 자아내던 원내 방송. 그러나 병원에서 일주일만 지내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 코드블루에 익숙해지게 된다. 병원이 클수록 코드 블루는 일상적이나, 사실 해당 병동 의료진이나 관계 부서가 아니고서야 그저 자기 맡은 업무를 하기 바쁘다. 약제부 역시 환자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일이 많은 부서는 아니다 보니, 코드 블루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보통 볼 일이 없다.


  학생 시절에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코드 블루가 허다하게 나왔음에도 실제론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었는데,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처음으로 코드 블루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됐다.

  3월의 어느 날, 오전 세미나가 있는 아침이었다. 사물함에서 가운을 갈아입는데 코드 블루가 나왔다. 어느 병동의 일일까 무심코 생각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베드가 놓여있고 응급환자용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있었다. 긴박한 방송은 계속 울려 퍼지는데 엘리베이터는 멈춰 서질 않고, 병동 간호사는 환자 침상 위에서 심폐소생술에 여념이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환자분은 고령의 남성분으로, 환자복 바지 밑단으로 뻗어있던 하얗게 질린 종아리가 보였다. 오전 세미나 시간에 맞추려면 발걸음이 촉박했는데도 불구하고, 응급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이송 사원들 및 간호사들의 다급함 속에 멈춰 서고 말았다. 1시간 같은 1분이 흘렀을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사람들이 우르르 사라졌다. 세미나실에 가서야 놀란 가슴을 추스를 수 있었다.


  사실 학생 실습했던 병원과 비교하자면 우리 병원은 코드 블루 상황이 없다시피 했는데도 아침부터 예상도 못한 채로 환자를 마주하고 나니 놀랐고, 솔직히는 무서웠다. 그렇게 눈앞에서 생명이 꺼져가는 현장을 목도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거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위중한 환자를 마주하는 일이야 심심찮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학부 시절, 교수님께서 병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에 대해 언급하셨던 내용이 자연히 상기됐다. 일반적으로 병원은 환자를 치유해주는 긍정적 공간으로 여겨지나, 환자의 입장에서는 '가기 싫은 곳'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실상 그 서비스의 내용이 유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므로.

  우리 모두는 치과에 가기 싫어하는 어린이로부터 이어진다. 병원은 심정지 환자의 사례처럼 극단적으로 나쁜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고 해도, 일단은 생활에 부적(negative)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일 뿐이지. 그런 측면을 양적(positive) 혹은 최소한 제로 베이스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의료 서비스의 내용이고 말이다. (사실 요즘은 제로 베이스까지만 되면 대박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보건 의료인으로서 막 첫 발을 내디딘 나에게 그날의 경험은 내내 무거운 것이었다. 단순히 죽음을 가깝게 보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의 역할에 대해 재고하고 숙고하게 되었으므로. 자의든 타의든, 몸이든 마음이든 어딘가가 아프다면 어찌 됐건 병원에 온다. 따라서 병원 일을 하는 사람은 타자의 희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실현 가능한, 긍정적인 것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들이 갖는 무게.


  내가 맡은 바는 역량껏 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업(業)의 무게가 면허증에 잉크도 안 마른 신입의 초심에 내려앉았던 3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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