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유행이 있나요

by 오예

주말에 일을 하는 약국 위에는 소아과가 있다. 보통은 소아과 처방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 딱 어제가 그랬다. 귀여운 한 꼬마를 시작으로 가루약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과 마음이 바쁘다.

가루약 처방이 나오는 건 별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일반 알약을 조제하는 것과는 노력이 배가 들어서다. 당연히 다른 환자분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게 되니 진땀이 난다.

또 가루약은 조제하면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위잉- 갈아버리고 나면 확인이 불가하므로 꼭 그전에 두 번, 세 번 체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이 약을 타 갔다. 환절기라 그런지 감기약이 대부분이다. 한숨을 좀 돌릴까 하니 뒤이어 2명의 환아의 처방전이 들어온다. 또 위잉 위잉 갈고, 시럽도 따르고, 꼬마 병도 챙긴다. 사람이 몰려들기 전에 빨리빨리 복약안내를 해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먼저 조제된 환자 약과 처방전을 들고 조제실 밖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름을 부른다.


“박건후 님~”


역시나 감기약. 네임펜으로 체크하면서 식후 30분에 복용하면 되고, 약간 졸려할 수도 있으며, 시럽약은 항생제고 하루에 2번 복용하면 되며, 냉장고에 보관하시면 되고, 약은 총 3일 치가 나왔으며 약값은 얼마라고 안내를 드린다. 귀여운 환자분은 뽀로로 비타민씨를 들고서 아장아장 걷는다. 환자 보호자분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더니, 이내 감사하다며 인사하시고는 약국을 나가신다. 귀여움에 잠깐 멈칫했다가 또 부랴부랴 조제실로 들어가서 다음 환자의 약을 조제하는데… 또 건후?


헉. 아차 싶은 상황이다! 아까도 건후였던 거 같은데, 내가 설마 다른 사람 약을 잘못 준 걸까?! 여차하면 약국을 떠난 귀여운 환자와 보호자를 쫓아가야 할 수도 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아장아장하는 걸음으로 멀리는 못 갔을 테지! 하고 이미 불출한 환자의 처방전을 본다. 아, 아장아장 걷던 환자는 ‘박’건후고 새로 조제해야 하는 환자는 ‘문’건후다. 요동치던 심장이 착 가라앉는다. 한숨을 돌린다. 조제를 마치고 약을 들고 나와서 또다시 ‘건후 님’을 부른다.


“문건후 님~”


이번에는 알레르기약. 이번 환아는 ‘박’건후 님보다는 어린이에 가깝다. 텐텐을 들고는 개구지게 서 있다. 마찬가지로 무슨 약이고 어떻게 드시면 된다고 안내한다. 문건후 님도, 보호자 분도 꾸벅 인사를 하시고 약국을 나간다. 드디어 잠깐 숨 돌릴 타이밍.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겨 직원 선생님과 한담을 나눈다.


“아니, 둘 다 이름이 같아서 약 잘못 나간 줄 알고 식겁했지 뭐예요…?”

“그러게요. 요즘 건후라는 이름이 인기인가 봐요.”


다 지나간 다음에 생각하기를, 둘 다 김건후가 아니었다는 점이 다행이지 뭔가. 동명이인은 많아도 동시간대에 마주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이따금 이렇게 잠깐씩 심장을 철렁이게 만들면서도 문제없이 끝나는, 이른바 요행이 생긴다. 이런 순간이면 ‘다음번에는 이걸 더 신경 써서 유심히 봐야겠다’하는 깨우침이 스리슬쩍 품으로 쏙 들어온다. 친절한 연습문제를 푸는 기분이다.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어 준 두 ‘건후’님들, 완쾌하세요!


* 참고로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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