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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Oct 04. 2021

이름도 유행이 있나요

  주말에 일을 하는 약국 위에는 소아과가 있다. 보통은 소아과 처방이 그렇게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늘 예외는 있는 법. 딱 어제가 그랬다. 귀여운 한 꼬마를 시작으로 가루약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과 마음이 바쁘다.

  가루약 처방이 나오는 건 별 상관이 없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일반 알약을 조제하는 것과는 노력이 배가 들어서다. 당연히 다른 환자분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게 되니 진땀이 난다.

  또 가루약은 조제하면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위잉- 갈아버리고 나면 확인이 불가하므로 꼭 그전에 두 번, 세 번 체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이 약을 타 갔다. 환절기라 그런지 감기약이 대부분이다. 한숨을 좀 돌릴까 하니 뒤이어 2명의 환아의 처방전이 들어온다. 또 위잉 위잉 갈고, 시럽도 따르고, 꼬마 병도 챙긴다. 사람이 몰려들기 전에 빨리빨리 복약안내를 해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먼저 조제된 환자 약과 처방전을 들고 조제실 밖으로 향한다. 그리고 이름을 부른다.


“박건후 님~”


  역시나 감기약. 네임펜으로 체크하면서 식후 30분에 복용하면 되고, 약간 졸려할 수도 있으며, 시럽약은 항생제고 하루에 2번 복용하면 되며, 냉장고에 보관하시면 되고, 약은 총 3일 치가 나왔으며 약값은 얼마라고 안내를 드린다. 귀여운 환자분은 뽀로로 비타민씨를 들고서 아장아장 걷는다. 환자 보호자분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더니, 이내 감사하다며 인사하시고는 약국을 나가신다. 귀여움에 잠깐 멈칫했다가 또 부랴부랴 조제실로 들어가서 다음 환자의 약을 조제하는데… 또 건후?


  헉. 아차 싶은 상황이다! 아까도 건후였던 거 같은데, 내가 설마 다른 사람 약을 잘못 준 걸까?! 여차하면 약국을 떠난 귀여운 환자와 보호자를 쫓아가야 할 수도 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아장아장하는 걸음으로 멀리는 못 갔을 테지! 하고 이미 불출한 환자의 처방전을 본다. 아, 아장아장 걷던 환자는 ‘박’건후고 새로 조제해야 하는 환자는 ‘문’건후다. 요동치던 심장이 착 가라앉는다. 한숨을 돌린다. 조제를 마치고 약을 들고 나와서 또다시 ‘건후 님’을 부른다.


  “문건후 님~”


  이번에는 알레르기약. 이번 환아는 ‘박’건후 님보다는 어린이에 가깝다. 텐텐을 들고는 개구지게 서 있다. 마찬가지로 무슨 약이고 어떻게 드시면 된다고 안내한다. 문건후 님도, 보호자 분도 꾸벅 인사를 하시고 약국을 나간다. 드디어 잠깐 숨 돌릴 타이밍.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겨 직원 선생님과 한담을 나눈다.


  “아니, 둘 다 이름이 같아서 약 잘못 나간 줄 알고 식겁했지 뭐예요…?”

  “그러게요. 요즘 건후라는 이름이 인기인가 봐요.”


   지나간 다음에 생각하기를,   김건후가 아니었다는 점이 다행이지 뭔가. 동명이인은 많아도 동시간대에 마주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이따금 이렇게 잠깐씩 심장을 철렁이게 만들면서도 문제없이 끝나는, 이른바 요행이 생긴다. 이런 순간이면 ‘다음번에는 이걸  신경 써서 유심히 봐야겠다하는 깨우침이 스리슬쩍 품으로  들어온다. 친절한 연습문제를 푸는 기분이다.  나은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어   ‘건후님들, 완쾌하세요!


* 참고로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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