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스 플랜(Maggie’s Plan, 2017)
매기스 플랜을 보았다. 그레타 거윅을 좋아하지만 정작 그녀가 직접 ‘출연’한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연기마저 좋구나 싶었다. 그녀가 분한 캐릭터는 그녀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편안했으니까.
개봉 당시인 2017년도 겨울에는 독립 영화를 꽤 많이 보았다. 매기스 플랜도 보겠다던 나의 계획은, 때 이른 상영 종료로 인해 역시 이뤄지지 못했는데.
그 영화를 이제야 본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에단 호크와 그레타 거윅의 재기 발랄한 대화를 듣는다. 인공 수정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매기(그레타 거윅)와 그녀에게 불현듯 나타난 존(에단 호크). 둘은 —당연히— 사랑에 빠지고,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예쁜 딸이 생기면서 인공 수정을 통해 아이를 얻겠다던 매기의 계획은 —자연히— 엎어지고 만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불륜이지만 글쎄. 관객은 영화 속에 밀접히 관계하게 되면 될수록 ‘불륜’이라는 단어가 떫게만 느껴진다. 불륜은 불륜인데, 불륜인가? ‘알면 사랑한다’더니 인물들의 내밀한 사정이나 성격을 파악한 이후로는 이해하게 되고야 말아서다. 그들도 인생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존재들에 불과하기에, 나는 그들을 쉬이 공감하고 동정하고 연민하는지도 모른다. 오직 그들을 알게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존과 매기의 사랑은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지만, 삶은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는 동화같은 류의 것이 아니다. 결혼 이후에도 존은 전처인 조젯과의 연락을 계속하고, 소설 작업을 한다는 이유로 많은 생활의 문제들을 매기에게 일임하면서 현실적인 삐걱거림이 나타난다. 매기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존은 ‘당신은 괜찮잖아’라는 말을 하는 데 그친다. ‘당신은 건강한 사람이니까 혼자서도 잘할 수 있잖아’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매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전처에게 남편을 반품(?)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계획’들은 번번이 엎어지고 꼬이기 일쑤다. 가만 보면 매기의 탄생부터가 계획에 없던 일이니까. 계획이 계획대로 이뤄졌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존재조차 할 수 없었을 터이다. 허나 매기의 엄마는 그녀에게 ‘태어날 운명’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계획도 거스르는 운명 같은 것이 삶이며 존재라고.
매기의 계획도 번번이 엎어진다. 인공수정을 하겠다는 결정도, 아이를 홀로 기르겠다는 결심도. 행복한 결혼 생활도, 남편을 원래 있던 자리에 상처 없이 되돌려놓겠다는 심산도.
지켜져야 할 비밀은 지켜지지 않고, 문제들은 교차점마다 엉키고 뒤섞여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 된다. 모든 것은 매기의 계획 아래에 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손을 댈 수가 없어진 마법.
그러나 매기의 탄생이 그러했듯, 삶은 알 수 없는 힘으로 실타래가 풀려나가기도 하는 것이라. 사필귀정인가 싶다. 인물들은 제 자리에서 몇 보쯤 앞서기도 뒤쳐지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제 자리를 찾아낸다. 처음 계획이나 의도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그러나 온전하게.
지지고 볶다가 결국은 맞이하는 엔딩이 최선의 것이라면, 어쩌면 현재란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면 그만인 것이 아닐지.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매기는 미소를 지어 보이지 않던가. 영화는 그렇게 삶에 대한 순박한 위로와 응원을 전해왔다. 작은 통찰과 함께.
계획했던 때는 보지 못했고, 계획에 없던 때에 보게 된 것마저 영화의 일부인가 싶은.
매기스 플랜.
덧. 에단 호크의 그윽하고도 애처로운 그 눈빛을 어떻게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비포 선라이즈부터 매기스 플랜까지 거부할 수 없는 눈빛을 건네는.
극 중에서 따지고 보면 가장 답답한 캐릭터는 에단 호크가 분한 ‘존’이었지만, 미워할 수는 없었으니 이건 분명 배우의 매력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