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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Jul 09. 2016

단수이에 비가 내리면

대만 여행 3일 차: 단수이, 대왕 카스텔라, 샤오바이궁, 아게이, 위엔

신베이터우 역을 떠나 다음 향한 곳은 단수이.

단수이야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고, 여러 가지 볼 것들이 많은 곳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 

마치 서울 사람들이 바다가 그리울 때 월미도를 찾듯, 단수이는 대만 사람들이 즐겨 찾는 당일치기 바다 여행지이다. 또한 스페인/네덜란드 식민 시대 건물들의 독특한 경관이 주는 이국적인 느낌을 즐기기에도 좋고,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는 위런마터우에서 감상하는 로맨틱한 분위기의 야경까지...


이 모든 아름다운 볼거리들이 Strider에게는...



... 아이고 의미 없다 ~ !

아니, 단수이는 뭐니 뭐니 해도 먹을 거지 먹을 거 !!! 


몰캉몰캉한 맛으로 자꾸만 손이 가요 손이 가는 할머니 대왕오징어튀김 !!

30분을 기다려야 겨우 살 수 있다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대왕 카스텔라!!

그리고, '여가 ~ 홍합을 대빡으로 주는 바로 그 공작합대왕인기라 ~' ㅡ_ㅡ;; 재미없군. 사투리 미숙자인 서울 촌놈이라 미안하다 !!! 하여간 어마 무시한 양의 홍합찜을 주는 여가공작합대왕 !

그 모든 스트리트 푸드 & 맛집들이 바로 이 단수이에 모여있는 것이다 !


온천욕으로 원기를 회복한 것은 Strider가 아닌 뱃속 거지였다. 마치 밀밭을 쓸고 지나가는 공포의 메뚜기떼 ㅡ_ㅡ;; 처럼, 오늘 나는 이 곳 단수이를 폭살시키겠다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MRT 단수이 역에 내렸다.



[ 단수이 가는 법 ]

뒤도 돌아보지 말고 걍 MRT 2호선의 마지막 역인 단수이 (淡水, Tamsui) 까지 가면 된다.

타이베이 메인스테이션 역에서 단수이 역까지는 대략 40분 소요.



단수이는 바다를 면하고 있는 마을.

바닷물이 들어오는 만을 끼고 예쁜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습이, 데이트하기 딱 좋은 장소다.


Strider가 방문했을 당시 단수이 역은 내부 공사 중이어서 출구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단수이의 메인 거리로 가기 위해서는 1번 출구인 '종젱로 (中正路, 중정로, Zhongzheng Rd.)' 출구로 나가면 된다. 지하철 역의 안내 표지판에 '종젱로'라고 쓰여 있고 밑에 가로 열고 '단수이 라오졔 (淡水老街, Tamsui old street)'라고 쓰여 있으니 이 표지를 따라가자.



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유니클로가 있는 큰 쇼핑몰이 건너편으로 보이는 큰 길이 나오는데, 이 큰길을 건너지 말고 그냥 왼쪽으로 계속 쭉 올라가다 보면 저 멀리에 스타벅스가 나온다.

(이 스타벅스는 그 유명한 단수이 스타벅스가 아니다. ㅡ_ㅡ 속지 말 것.)


그리고 이 스타벅스 왼쪽에 바로 우리가 오늘 초토화시켜야 할 ㅡ_ㅡ; 단수이 라오졔가 있음. 아마 사람들이 대부분 그쪽으로 몰려가고 있을 것이므로, 길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첫 목표로 찾아간 곳은 바로 유명한 초 거대 카스테라 !


여기는 딱히 가게 이름은 없고, '즉석 카스텔라'를 뜻하는 '현고단고 (現烤蛋糕, 시앙카오 단가오, Xiankao Dangao)'라고 되어 있는 가게.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초대형 사이즈의 카스텔라를 즉석에 구워내서, 인심 좋게 뭉텅 썰어 내준다는 바로 그 집이다.


사람들이 워낙 이 집은 한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한 입 맛볼 수 있다고 해서, 단수이에 오자마자 시간 절약을 위해 이 집을 가장 먼저 공략하자고 결정했다. 우리 부부는 그럴듯한 요리 대신 계란내 나는 카스텔라로 점심을 때우게 되었다. 맛집이랍시고 태연한 척 하지만 약간은 속으로 움찔;;; 하는 Strider. 


하지만 이곳은 대만 자유여행의 성지가 아니던가. ㅡ_ㅡ;; 성지 순례를 온 자에게 밥과 카스텔라를 가릴 여유 따위는 없다.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현고단고' 빨간 등에 머리를 조아리고 늘어선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Strider. 몇몇 분들이 이 집 찾기가 힘들다고 울상이시던데 친절한 작가의 대명사 ㅡ_ㅡ;;; Strider가 소개한다. '대왕 카스텔라 찾아가는 길 !'



단수이 라오졔 입구에서 광밍로를 따라 쭉 걸어 들어가다 보면...


거리 끝에서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그럼 삼거리에서 좌회전 !


좌회전하고 나서 또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슬슬 다리가 아파올 때쯤 ㅡ_ㅡ 왼쪽에 단수이 구청 (淡水區公所, 담수구공소) 이 나오지만 당황하지 않 ~ 고 ~ 불굴의 정신으로 직진 또 직진 !


결국 당신의 오른쪽에 빨간 등이 매달린 현고단고가 등장. 

고난의 행군 끝에 현고단고를 발견한 당신의 광대뼈는 한껏 승천하겠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앞으로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카스텔라를 맛볼 수 있다. 이제부터 모든 걸 내려놓고 느려 터진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고통스러워해라 ! 흐흐흐흐흐...



긴 줄 속에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과연, 대기 시간이 기본 30분 옵션 1시간이라던 수많은 블로거들의 탄식은 허세가 아니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생각도 않고 한 번에 10조각씩 사가는 대륙 여행자의 무리가 슬픈 눈망울로 줄 뒤쪽에서 카스텔라를 바라보는 Strider에게 시각적 능욕 ㅡ_ㅡ;; 을 선사하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앞에서 뭉텅뭉텅 썰어가는 바람에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카스텔라 덩어리들을 손 놓고 바라만 봐야 하는 그 나라 잃은 심정은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ㅠㅠ


제길슨,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그들의 손에서 카스텔라를 되찾아 와야 했는데 !!!



여기 현고단고에서는 하루 왠종일 반죽 젓느라 팔에 성난 근육이 들어선 돌근육남 1과, 무겁지도 않은 카스텔라를 들면서 역발산기개세 ㅡ_ㅡ;; 의 자태를 뽐내는 잔근육남 2가, 한숨도 쉴 새 없이 카스텔라를 구워내고 있다.


카스텔라의 사이즈를 보면, 돌근육남 1의 격정적 쉐킷은 반죽질 따위를 넘어선, 생계 최전선을 승리로 이끄는 무산소 운동의 융단폭격... 과연, 저 정도 근육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운동을 강제 면제받은 ㅡ_ㅡ;; 비루한 내 팔뚝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카스텔라 한 판을 구워내는데 대략 15분 여가 걸리는 것 같은데, 당신의 손아귀에 이 카스텔라가 들어오기 전까지 네 판이 사라질지, 다섯 판이 사라질지는 앞에 중국 여행객이 몇 팀이나 있는지에 달려있음...



드... 드디어 등장했다 ! 대왕 카스텔라!!!

Strider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비... 비록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달큰한 맛의 카스텔라이지만... 


이건... 이건...


빵의 역사 그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사내에게 도전의식을 부르는 파이팅 넘치는 사이즈구나 !!!!! 그래, 역시 사내라면 뱃심으로 사는 거지!!!!! ㅡ_ㅡ;;

 

저 한 판에 도대체 계란 몇 개와 우유 몇 통이 들어가는 것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어마무시한 사이즈의 현고단고 카스텔라!!! 대만 사람들이 비록 대륙에서 이 조그만 섬으로 건너왔지만, 카스텔라에서만큼은 대륙의 기상을 저버리지 않은 듯하다!! ㅡ_ㅡ;;



Strider: 감히 내 앞에 저렇게 거대하게 나타나다니... 너 따위 산산이 해체해서 뱃속에 넣어주마 !!!

마눌님: 정준하 메소드 연기라도 할 기세로군. 바보 쪽인지 먹보 쪽인지 컨셉은 확실히 해야 돼.

Strider: 흠, 둘 다 매력 있는 역할인걸. 두 역할 모두 해내 보이겠어. 

마눌님: ..... (외면)

Strider: 허니 사랑해.



잔근육남 2는 기계공학과 출신이라도 되는가 봉가. 

카스텔라 장인으로 빙의하여 쇠막대를 들고 대왕 카스텔라를 이리저리 재 보더니, 심혈을 기울여 정확히 10등분으로 잘라낸다.


현고단고 카스텔라는 두 가지 맛이 있는데, 일반 카스텔라와 안에 치즈가 레이어드 되어 있는 치즈맛 카스텔라 두 가지. 융캉제 총좌빙에서 아무것도 넣지 않은 플레인 총좌빙을 강요 ㅡ_ㅡ;; 당했던 Strider는,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치즈에의 열망을 담은 강렬한 눈빛을 마눌님께 반짝였다.


허니, 이건 치즈맛으로 먹으면 안 될까? 응 ? 응 ? 응 ? 응 ? 응 ?


이 어여쁜 눈빛 ㅡ_ㅡ; 을 보고 어찌 아니 긍휼히 여길쏜가. 마눌님은 귀찮음 반 자비 반을 섞어서 널리 베푸셨고, 마눌님의 하해와 같은 은총을 받은 Strider는 알흠다운 노란빛의 치즈 카스텔라를 쟁취했다.


어디, 즉석 카스텔라니까 따뜻할 때 한 입 먹어볼까. 카스텔라 봉다리 안으로 스윽 손을 넣어 보드랍고 폭신한 카스텔라 한 조각을 뚝 떼어서 냠.


... 으음 ? 오오오오오옷 !!! 입안 가득히 퍼지는 이 맛은 !!!



우오오오오오오오옷 !!!

입안 가득히 퍼져 나가는 이 맛은 진정 !!!


... 그냥... 

카스텔라 맛이었다. 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딱 카스텔라 맛... 

굳이 차이를 찾자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팔고 있는 샤닝 카스텔라보다 조금 부드럽다는 거 ?



아.. 아니다. 어마무시한 사이즈를 감안한다면 '카스텔라 곱빼기' 맛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겠다... 물론 역시나 대만다운 착한 가격과 방금 갓 구워낸 따뜻함이 빵 속에 스며있다는 부분은 분명 높이 살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카스텔라를 먹다 먹다 지쳐서 반 이상 남긴 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다가 밤늦게 차게 식은 카스텔라를 먹었더니 그게 더 맛있었다는 게 함정.


여긴 분명 수많은 블로거들이 맛집이라고 했었는데 !!! 30분을 넘게 기다렸는데 !!! 

우리 부부는 의외의 곳에서 찍힌 발등에 넋이 나간 채, 말없이 카스텔라를 목이 메일 때까지 처묵대다가 지쳐 나가떨어졌다.


혹시 배가 부를 때까지 카스텔라를 먹어본 적이 있으신 분... ? 



[ 단수이 현고단고 대왕 카스텔라 ]

맛: ★★☆☆☆

가격: ★★★★★

양: ★★★★★


- 일반 카스텔라 한 덩이 90 NTD (한화 3,300원), 치즈 카스텔라 한 덩이 130 NTD (한화 4,800원)

- 일반 마트에서 파는 카스텔라보다는 훨씬 덜 달고 담백한 맛이다. 하지만 많이 먹다 보면 달큰한 맛에 물릴 수 있으므로 줄 서기 전에 근처 편의점 같은 곳에서 흰 우유라도 사가지고 가자. 아니면 현고단고 맞은편에 유명한 '50란 버블티' 지점이 하나 있으니 거기서 노 슈가 버블 밀크티 하나 사는 것도 추천한다.



대왕 카스텔라가 일으킨 대참사에서 허우적대던 우리 부부.

딱히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30분 넘게 기다려서 얻어내야만 하는 Must Have Item이냐에 대해서는 글쎄요. 뭣보다 평범한 맛에 양까지 많으니, 이건 Strider의 특수 스킬인 '뱃속에 욱여넣기' ㅡ_ㅡ; 조차 시전할 수 없는 사면초가적 위기.


이거 느낌이 조금 쎄하다. 어제는 초호평 '키키 레스토랑'이 뒤통수를 후려 치더니, 오늘은 대왕 카스텔라가 싸다구를 날린다. 


어 ? 이거 왜 이렇지 ? 원래 이럴 리가 없는데... 키키 레스토랑에서 매콤함에 사로잡히고, 대왕 카스텔라의 부드러움에 푹 빠질 계획이었는데... 뭐지... ?


두 번의 큰 충격에 어버버버 거리던 우리 부부가 결국 발길을 돌린 곳은, 단수이의 유적지인 '샤오바이궁 (소백궁, 小白宮). 이번 여행에선 유적지 방문을 억제하고 최대한 맛집 순례를 다니기로 하였더랬지만, 뱃속에 열린 카스텔라 큰 잔치 덕분에, 트림과 함께 계란 냄새가 올라오는 새로운 경험 ㅡ_ㅡ 을 겪자 도저히 입 속에 추가로 음식을 투하할 수는 없었다.


샤오바이궁에 가는 방법은, 여행 포스팅의 친절함에 있어서는 양보 없는 슈퍼 프로페셔널 ㅡ_ㅡ;;; 인 본인이 다시 한 번 소개한다.



정말 친절하지 않은 사진 두 장으로 가는 방법 친절한 안내 끝내기;;; 

나도 가끔은 깜찍하게 '안알랴줌'을 외치고 싶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알랴줌'을 외치는 나의 친절한 본성이 원망스럽다... 


뭔 밥맛과 자뻑의 이중주지 이건... 여러분, 미안하다 ! ㅠㅠ


하여간 버스에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넌 후, 왼쪽에 있는 오르막길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유명한 분식집 '문화 아게이'도 있고... 하여간 중학교가 있을법한 우리나라의 어느 골목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간 많으면 문화 아게이에 들러서, 아게이 한 그릇과 위엔탕 한 그릇을 먹고 가도 되겠다. 마치 우리나라 떡볶이와 오뎅 같은 분식집 단골 메뉴라고 함. 하지만 우리 부부의 뱃속엔 카스텔라가 잔뜩 들어있잖아 ? 우린 안될 거야, 아마... 


중간중간에 안내 간판을 만나면서 5분에서 10분 내외로 걸어올라 가면, 드디어 샤오바이궁이 등장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중국어 무식자인 본인도 찾아갈 수 있었으니,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궁'이라고 부르기에 무색할 정도로 깜찍한 사이즈를 자랑하는 샤오바이궁.


영국 통치 시절 세관 공무원의 자택이었던 건물이고, 지금은 내부에 작은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미니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만, 전시물의 관람을 목적으로 하고 오기에는 딱히 전시물의 양이나 질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하얀 외벽이 빛나는 건물 자체의 운치가 좋고, 기둥이 늘어서 있는 복도에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올 때의 비주얼이 아름답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남는다 싶을 때, 여친이나 마눌님을 데리고 가서 건물을 배경으로 알콩달콩 모델놀이하러 가기 딱 좋은 장소.


마눌님. 모델놀이. 로맨틱. 성공적.



사실 여긴 샤오바이궁 자체가 주는 분위기보다도, 주변을 둘러보기에 더 좋은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샤오바이궁 앞의 정원에서는 단수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지고, 건물 뒤편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산책하기 좋다.


우리 부부가 건물에서 나와 이 정원에 내려섰을 때쯤, 흐릿하게 구름이 내려앉은 하늘이 조금씩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우린 단수이 여행에 아직은 낙관적이었다. 뭐, 이 정도 비쯤이야 금세 그치고, 저녁때가 되면 그 아름답다던 석양이 구름을 가르고 빨간 홍시처럼 나타나겠지 싶었다. 원래, 석양이라는 것이 맑은 하늘보다는, 약간 구름 낀 하늘에서 보는 것이 더욱 붉은빛으로 타오르는 법이니까.



샤오바이궁에서 조금 걸어가면 있는 옛 영국대사관이었던 훙마오청(紅毛城, 홍모성)에도 산책 겸 잠시 들렀다가, 큰길로 내려와서 강변을 따라 나 있는 길을 천천히 걸었다.


사락사락 빗방울이 떨어지는 단수이 강변.

한쪽으로는 살짝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탁 트인 강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조명으로 장식된 말캉말캉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이 곳.


아. 정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ㅡ_ㅡ^


키가 큰 나에게 비 오는 날은 그냥 '바지 젖는 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예전부터 비 오는 날 '어맛 비가 오네'라며 머리카락 날리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같은 반 여자애들을 '광년이 원투쓰리'라 부르며 손가락질 ㅡ_ㅡ; 했던 나였다.


게다가 옆에 아무리 고급진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어도, 지금은 뱃속에 2014년 연말 시상식이라도 되는 양 카스텔라 큰 잔치가 크게 한 판 벌어지고 있었으니, 다 부질없는 그림의 떡이다.


결정적으로, 저녁시간은 슬슬 다가오는데, 이놈의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아니, 위런마터우 석양은 어쩌라고 ?



추적추적 비는 오고, 바람은 씽씽 불어서 춥고, 마눌님은 걷다 지쳐서 말이 없고, 이때를 떠올리며 포스팅하는 나도 우울하고 ㅡ_ㅡ; 자세한 설명 따윈 사치이니 생략하고 사진만 올리고 있는 Strider... ㅠㅠ


결국 걷다 걷다 길바닥에 널브러질 때쯤이 돼서야 단수이 라오졔 입구 근처에 도달했고, 이 고난의 빗속 행군은 결과적으로 뱃속에 열린 카스텔라 큰 잔치를 강제 종료시킨 후 깨끗하게 소화시켜주었다.


뭐지...

억지로 입 속에 우겨넣은 카스텔라를, 고난의 행군을 통해 위장 아래쪽으로 밀어내는, 똥 공장 기계 ㅡ_ㅡ;; 라도 된 듯한 이 얄구진 기분은.


똥 공장 기계 1호기...


이렇게 카스텔라 같은 Strider의 부드러운 멘탈이 우수수 부스러진 채 단수이 주변을 유령처럼 스스슥 헤매고 있을 때 들어온 마눌님의 극적 제안.


"허니. 뭐라도 먹자. 이제 배가 고파... "


그... 그래. 기왕 똥 공장 기계가 된 거, 주야간 2교대 집중 생산을 통해 천연비료 산업의 부흥에 기여해 보겠어 !!



우리 부부가 찾아간 곳은 단수이 강변에서 단수이 라오졔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정종 아급노점' (正宗 阿給老店). 유부 속에 당면을 넣어 시큼한 국물과 함께 내오는 아게이 (阿給, 아급) 를 파는 집이다.


가게의 비주얼은 그냥 우리나라 어디 뒷골목쯤에 있는 주먹 고기 가게. ㅡ_ㅡ;; 안에서는 대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열심히 처묵처묵. 밖에서도 사람들이 쭉 늘어서서 열심히 처묵처묵.


딱히 이 곳을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대만식 오뎅탕이라고 하는 '위엔탕' (魚丸湯, 어환탕) 을 먹으려고 했는데 단수이 라오졔 입구에 이 가게가 있어서 들어갔음. 사실 대만 여행 첫날부터 대만 현지인들이 바글대는 집을 선택하면 적어도 맛에 있어 실패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맛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일단 아게이 한 그릇을 시키고, 추운 날씨에 차갑게 식어버린 속을 풀어줄 위엔탕 한 그릇도 함께 시켰다.



역시 분식집이라서 초고속 서빙. 시키자마자 1분 만에 척척 대령한 위엔탕과 아게이.


위엔탕은 맑은 국물에 하얀 오뎅 다섯 알이 들어있는 전형적인 오뎅탕 스타일. 아게이는 간간하고 걸쭉한 국물 속에, 당면이 가득 찬 네모난 유부가 들어있는 색다른 요리.


근데 아게이는, 사진 상에는 마치 맑은 국물처럼 나왔지만, 저 분홍색 그릇 색깔이 국물 색깔과 비슷해서 저렇게 사진이 나온 것... ㅡ0ㅡ;; 유부로부터 삐져나와서 국물 속에서 살랑살랑거리는 당면들 덕분에 뭔가 오징어 외계인 한 마리 ㅡ_ㅡ;; 가 분홍색 바다에 풍덩 빠진 듯한, 참으로 탈우주적 비주얼을 자랑하는 음식.


부슬부슬 내리는 비 속에서 무너진 멘탈로 인해 수전증스럽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스푼을 잡고... 어디... 한 입 먹어볼까.


으흠...

위엔탕 국물은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우리나라 오뎅 국물과 비슷하여 차갑게 식은 속을 부드럽게 덥혀줬고, 쫀쫀한 오뎅의 식감도 우리 오뎅과 큰 차이가 없어서 우리 부부는 금세 게눈 감추듯 위엔탕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아게이도, 당면과 유부 자체는 마치 유부주머니를 먹는 듯해서 맛이 나쁘지 않았는데, 비주얼이 참으로 인터스텔라하고 있어서 먹는데 심히 거슬린다. 당신이 가만히 눈을 감고 먹는다면 충분히 우주여행 없이 맛을 즐길 수 있을 듯...



[ 단수이 정종 아급노점 ]

맛: ★★★★☆

가격: ★★★★★

양: ★★☆☆☆


- 위엔탕, 아게이 모두 35 NTD (한화 1,300원)

- 양은 참으로 부족하다. 위엔탕은 오뎅 다섯 알, 아게이는 유부 한 덩어리. 만약 배가 고프다면 볶음밥이나 볶음면 등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으므로 도전해 보자.



결국 위엔탕과 아게이를 다 먹을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고, 구름은 계속 단수이를 뒤덮고 있었다. 아침만 해도 쨍하게 맑은 날씨 속에서 신베이터우의 힐링 온천을 즐겼는데, 어쩌다 반나절 만에 이렇게 된 거지... 


태양은 결국 구름 너머고 내려가 버리고, 주변은 점점 더 어두워져 왔다. 


대만 관광청의 단수이 소개 페이지에는 낭만, 첫사랑, 로맨틱, 성공적.

Strider의 단수이는 계란 트림, 행군, 멘붕, 실패적.


단수이의 그 아름답다는 석양은 그냥 포기해 버렸다. 

이제 Strider에게 남은 것은, 강 건너 빠리 (팔리, 八理) 에 있다는 그 유명한 '할머니 대왕 오징어튀김'. 이 대왕 오징어튀김은 이미 너무나 유명하여 타이베이 곳곳에 유사한 집이 많이 있었지만, 원조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빠리의 그 '할머니 대왕 오징어튀김'이라고 하였다.


저 강 건너, 단수이의 마지막 희망이 쫀득쫀득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 그렇겠지 ? 모든 것을 내려놓은 Stirder의 떨리는 동공이, 저녁을 맞아 하나둘씩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 빠리 마을을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9편 예고)


맛있는 게 죄라면 너는 무죄.

맛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에겐 누명.

빠리의 대왕 오징어튀김에게 씌워진 누명을 벗기기 위해 Strider가 출동한다.


예쁜 야경 몇 컷으로 겨우 아쉬움을 달래고 찾아간 스린 야시장에서 만난 왕자님은, 의외로 훌륭한 분이었다.


단수이와 빠리의 야경, 그리고 스린 야시장을 거치는 대만 여행 3일차 야간 스케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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