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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Dec 26. 2023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3) 1초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

     A가 그 능력을 깨닫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 덕분이었다. 그날은 예보에도 없던 비가 갑자기 늦은 오후부터 쏟아지고, 거리에 떨어진 낙엽이 배수구를 막은 덕에 도로에 작은 실개울이 생길 정도로 퇴근길 사정이 좋지 않게 된, 그런 어느 늦은 가을날이었다. 사무실 창 밖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폭우로 교통경찰이 일찌감치 철수한 사거리에서, 교차로 신호에 걸린 차들은 속수무책으로 경적만 울려대고 있었다.

    팀장인 B는 점심시간 직후 급하게 회의 자료 작성을 지시했다. 하지만 팀장이 제시한 자료 제출 시한은 그의 퇴근시간 직전인 여섯 시였다. A는 외통수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제 기분에 따라 아랫사람들을 쥐고 흔드는 B는 원리원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나 여섯 시 십 분이면 어김없이 퇴근하는 생활습관 만큼은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여섯 시에 가지고 간 자료가 팀장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여섯 시 십 분까지 함축적으로 깨진 후 내일 아침부터 다시 하루 종일 들들 볶일 것임이 분명했다. A가 그 자료를 만들기 시작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것이 왠지 좋지 않은 징조로 여겨졌다. 팀장의 퇴근길이 힘들어지면 내일 아침 그에게는 험난한 하루가 예비되어 있을 것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결국 여섯 시가 되었다. A는 한숨을 내쉬며 뽑아든 자료를 들고 B의 책상으로 찾아갔다. B는 네모진 슈트케이스에 서류들을 넣으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A는 팀장의 이모저모를 곁눈질로 슬그머니 살폈다. 좋지 않았다. B는 하필 그가 평소에 가장 아끼던 스웨이드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이 빗줄기 속을 저 구두로 헤치고 나아간다면 구두는 백 퍼센트 엉망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하필 오늘이라니. 하지만 B가 제시한 기한을 넘겨서 자료를 제출한다면 그 역시 좋지 않은 일이 펼쳐질 것임을 A는 평소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러나 저러나 방법이 없었다. A는 B에게 말을 걸었다.

    "팀장님, 말씀 하신 자료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슈트케이스를 정리하던 B가 고개를 휙 쳐들며 A를 꼬나보았다. 아,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팀장 B는 A가 그를 만난 이래 가장 화가 응축된 표정을 하고 있었다. X됐군, 그냥 보고를 내일 아침에 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를 부르지 말걸, 이라는 일생 일대의 후회감이 밀려오던 찰나... ...

     그 일이 일어났다.

     A가 팀장 자리로 가서 쭈볏대며 섰던 그 순간으로 갑자기 주변이 바뀌어 있었다.



* 1초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된 회사원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30분 한계로 인해 역시 절단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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