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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Dec 27. 2023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4) 말이 안통하는 이국에서 길을 잃은 후 대처하고 길을 찾는 방법

    빙글거리던 가이드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만 해도 그는 내 앞 한 발자국 거리에서 걷고 있었다. 그는 화려하다 못해 눈에 거슬릴 정도로 꽃무늬가 덕지덕지 수놓인 셔츠를 입고 있었기에 놓칠래야 놓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찌는 듯한 더위에 지쳐 잠깐 아이스크림 가게로 눈을 돌린 새, 그는 북적이는 광장의 인파 속에서 마치 증발해 버린 듯 사라졌다.

    눈 앞이 어질거렸다. 마치 아스팔트가 녹아 증발하는 듯한 강렬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이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길거리의 표지판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씨들이 사방으로 꼬불거리고 있었다. 세계일주 중 비행기 스케쥴이 맞지 않아 육로로 움직일 수 있는 다음 행선지를 고르다가 우연히 고른 나라가 바로 여기였는데, 세상에 영어 한 마디가 통하지 않는 나라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국경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자기네 말 외에는 어떤 언어도 알아듣지 못했다.

    한참 동안 거리를 헤메다가 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말았는데, 거리에는 거적을 둘러쓴 홈리스들이 수없이 서성이고 있었다. 졸렸지만 무슨 해꼬지를 당할지 몰라 바닥에 등을 대고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짐을 끌어안고 벤치에 앉아 꾸벅이며 밤을 샜다. 그 가수면 상태 속에서,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강한 위기감이 홈리스의 형상이 되어 목덜미를 붙드는 환상을 보았다. 결국 새벽이슬을 맞으며 일어나서는, 'English'라고 쓴 피켓을 든, 지금은 사라진 가이드를 발견하고는 - 정확히는 그가 든 피켓을 보고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다운타운으로 가자고 외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오케이를 외쳤는데, 택시에 올라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사람인가 싶어 이것저것 말을 걸어보았는데, 그는 의문문에도 '오케이'를 외쳤고 평서문에도 '오케이'를 외쳤다. 그가 할 줄 아는 영어는 '오케이'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경 세관을 통과할 때 영어가 통하지 않아 배낭에 꾸린 짐을 낱낱히 풀어헤쳤을 때 진작 되돌아서야 했다고, 이 나라에 발을 들인 것을 그 때 처음 후회했다.

    그는 왜 날 버려두고 간 것일까. 그 짧은 순간, 그저 잠깐 나를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간단한 생각부터, 말도 안될 만큼 음흉한 음모론이 점철된 비관적인 생각까지 한꺼번에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이곳에서 무능했다. 말 한 마디 못하는 신생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신생아보다 안좋은 조건이 있다면 적당한 돈을 가지고, 만만해 보이는 적당한 체격을 지닌, 적당해 보이는 외모의 여성이라는 것.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그냥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관심 어린 눈초리로.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아주 필사적으로. 하지만 신생아에게 무슨 다른 방법이 있을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다. 아까 지나왔던 국경 세관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적어도 영어가 한두 마디는 통하는 나라로 다시 건너갈 수 있을 터였다. 오로지 그 생각 하나만이, 나의 전신을 훑는 눈초리들의 태풍 건너에서 바스코 다 가마의 희망봉처럼 확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 길을 찾아 가야 한다면, 그가 들어온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았을테니. 그래서 국경의 세관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스토리를 생각했는데, 그 방법이 무엇일지는 어렴풋하다. 아마도 그림을 그리거나, 아니면 만국 공통으로 통할 수 있는 사물의 이름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그 사물로부터 시작하여 차츰 실마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등장한 가이드를 활용한 스릴러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30분 제한으로 결국...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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