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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Dec 28. 2023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5) 죽어가는 화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 설명하기

    넌 이 집에 이사왔을 때부터 눈에 거슬렸지. 그래, 그 때 너를 뽑아버려야 했어. 안그래도 번화가보다 십년은 더 퇴락한 듯한 거리의 모습, 회칠이 드문드문 벗겨져 낡은 집들의 벽. 그 위에 마치 갈라진 틈새처럼, 혹은 땅에서 기어올라온 마물의 손아귀처럼 벽 곳곳에 뻗어있던 담쟁이 넝쿨. 그게 바로 너였어.

    이곳이 예술가의 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거리에 발을 딛자 마자 나는 깨달을 수 있었어. 이 거리에 얽혀 사는 사람들의 재력으로는 - 그게 집주인이던 우리 같은 세입자이건 - 거리를 화려하게 바꿀 수가 없기에, 말이라도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줘야 했기 때문임을. 하루를 벌어도 하루를 먹고 살 수 없는 이 거리의 사람들은 언제나 이마나 어깨 위에 커다란 먹구름을 이고 다니는 것 같았지. 활기를 잃고 돌아다니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 너처럼 아름답지 않은 생물이 배경처럼 얽혀있는 것이 너무 꼴보기 싫었어. 가을이면 또 같잖은 낙엽을 떨구는 모습이 얼마나 지저분하던지.

    오늘 나는 널 일찌감치 뽑아버리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후회했어. 바보 같은 존시는 네 잎사귀가 모두 떨어지는 날 자기도 죽을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지.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병간호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었어. 떡갈나무처럼 우듬지가 무성히 뻗은 나무도 아니고, 단풍처럼 낙엽이 아름답고 활기찬 나무도 아닌, 벽을 타지 않으면 꼿꼿이 서있지조차 못하는 너를 자기처럼 여겼다는 소리에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바보스러움에 속이 터져나갈 거 같았지.


     하지만... ...

     나는 그 이야기를 베어먼 씨에게 털어놓지 말았어야 했어. 겉으로는 사나운 척 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다정한 베어먼 씨. 자기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아침 식사를 거른 날이면 어김없이 빵 한 조각을 나눠주었던 베어먼 씨. 그는 너의 마지막 잎사귀가 떨어지면 자기도 죽을 거라는 존시의 말을 전해듣고는 불같이 화를 냈지. 무슨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냐며.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상냥한 마음 속에는 아마 세상 어느 누구도 가져본 적이 없을 창조의 힘이 샘솟은 것 같아. 그 따뜻한 마음씨의 할아버지는 어젯밤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어. 영원히 지지 않을 너의 마지막 잎새를 벽에다, 그리고 존시의 마음에다 그려넣고 말이야.

    지금 이 순간, 널 진작에 뽑아버리지 않은 나의 어리석음을 후회해.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저딴 음침해 보이는 식물은 눈 앞에서 없어지면 좋겠다고 하면서 베어버렸어야 했어. 그랬다면 존시의 마음에 어리석은 생각을 깃들게 하지도, 그 이야기를 들은 베어먼 씨가 존시의 어리석은 믿음을 지켜줄 빛나는 잎새를 남기려고 폭풍우 속에서 덜덜 떨지도 않았을텐데.



* '죽어가는 화초'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죽어가는'과 '화초'라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분리해서 보았다.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등장인물이었던 '수'가, 친구인 '존시'에게 어리석은 생각 -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나도 죽을꺼야 - 을 갖게 하고 결국엔 아랫층 노인 베어먼 씨까지 죽게 만든 그 담쟁이 넝쿨에게 하는 말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어만 씨의 목숨을 가져가고 존시에게 살아갈 희망을 준 담쟁이 넝쿨에게, 죽지 말고 번성해서 많은 잎새를 틔우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 다자이 오사무의 '유다의 고백'을 읽은 후, 기존 작품의 등장인물이 다른 관점의 서술을 하는 작품을 한 번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습 삼아 한 번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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