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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Dec 29. 2023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6) 우주 비행사인 당신의 완벽한 하루

    눈을 떴다. 돔의 천장에 붙은 쪽창으로 태양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낮이었다. 수면캡슐의 캐노피를 열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밤이 되려면, 즉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지려면 아직 삼십 시간쯤 남아있었다. 여기에 혼자 남은 후 수면 시간이 열 시간 정도로 길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두 번은 더 잠들어야 밤이 찾아올 것이었다. 그래야 간신히 이곳의 하루가 지나는 것이다. 비록 밤에는 끔찍한 추위와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한 암흑이 찾아오지만 그래도 우주복을 입으면 잠깐이나마 돔 밖에 나가 활동할 수 있었다. 낮에는 태양이 뿌려대는 방사선을 피해 돔 안에 숨어있어야만 하고 돔의 면적은 작물을 키우는 곳까지 포함해도 100평방미터 남짓이었다. 돔의 벽을 따라 일 초에 한 발자국씩 걷는, 누가 봐도 한심해 보이는 산책이 낮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유희였다. 물론, 밤이 되어 밖에 나간다고 해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 외에 썩 흥미로운 즐길거리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관리구역으로 가서 태양광 발전판의 효율을 체크했다. 말로는 관리구역이라고 해도 수면캡슐에서 세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관제용 시스템과 의자가 있는 공간이었다. 이 원형의 돔 안에는 그렇게 관리구역도 있었고 주거구역도 있었고 생산구역도 있었다. 모든 구역은 한 가운데 있는 수면캡슐을 중심으로 돔의 벽을 따라 튜브처럼 둘러서 있었다. 나는 100평방미터밖에 안되는 공간을 쪼개고 또 쪼개었다. 살면서 하나의 필요가 생기면 기존의 공간을 나누어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공간을 나누는 편집증에라도 걸린 것이 아닌지 의심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인식상으로나마 구획을 지어놓지 않으면 일상의 매 순간을 매듭짓는 경계선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시간의 감각을 흐트러트릴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것이 인생을 구성하는데 그런 시작과 끝맺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얼마 전에 새롭게 깨달았다. 29일이 걸리는 달에서의 하루를, 혼자 보내기 시작하면서.



* '우주'라는 단어와 '하루'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구에서는 하루가 24시간이지만 달에서는 하루가 29일이다. 한 달이 지나야 간신히 하루가 지나는 곳에서의 감각은 어떨지 생각하면서, 사고로 달의 뒷편에 혼자 남겨진 우주 비행사의 하루를 써보려 했다. 아마도 시간의 감각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상상하는데는 영화 '마션'의 이미지들이 도움이 되었다.


* 가족여행으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밤에 홀로 쓰려니 지치고 피곤했다. 아들은 낯선 곳에서의 잠자리가 생경한지 칭얼거리다 간신히 잠들었다. 작게 코를 곤다. 고막을 간지럽히듯 기분 좋은 귀여운 소리다.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구가 아닌 어떤 곳을 상상하면 소름이 돋는다. 아마도 그곳은 죽음의 공간일 것이다. 이 시간이 가능한 것, 생명체로서 사유가 가능한 것은 내가 지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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