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aily Novel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르니스트 Jan 18. 2024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16) 열두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에 갇힌 서로를 증오하는 두 사람

    13층 버튼을 누르려다 김한모는 손을 움츠렸다. 박다을도 버튼으로 손을 뻗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한모와 박다을은 같은 층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지금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탔다. 그러므로 같은 층 버튼을 누르려 함께 손을 뻗은 지금 상황은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일상의 해프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광경 속에서 보통 상상할 만한 장면은 누군가 손을 먼저 뻗은 한 명이 버튼을 누르고, 서로 비스듬하게 선 두 사람은 어색한 웃음을 한두번 나누다가 날씨를 평가하는 것 같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면서 목표한 층에 도달할 때까지 엘리베이터 안의 모호한 공기를 견뎌내는 그런 장면일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만약 김한모와 박다을이 아니었다면 응당 그러했을 것이다.

    김한모와 박다을은 도끼눈을 뜨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버튼은 결국 박다을이 눌렀다. 김한모는 그녀가 버튼을 누르는 것을 끝까지 보지도 않고, 엘리베이터의 모서리 쪽으로 가서 더 이상 발을 놓을 공간이 없다고 생각될 만큼 찰싹 달라붙었다. 박다을도 버튼을 누른 후 마주보는 모서리로 가서 김한모를 향해 등을 돌린 후 똑같이 엘리베이터의 벽에 들러붙듯이 섰다. 그 좁은 공간에서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한 셈이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김한모는 박다을을 도끼눈을 하고 꼬나보았다. 비록 박다을이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있었지만, 뒷통수로도 그의 공격적인 시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표정이었다. 엘리베이터가 3층, 4층, 5층을 지나가는 동안 김한모의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시선이 정말 물리적인 힘을 지녔던 것일까. 박다을이 초조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모니터의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 씨발... ..."

    비록 그녀는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말했지만 엘리베이터 안은 그런 속삭임조차 들릴 만큼 충분히 조용했다. 무엇보다 안에 두 사람 밖에 없었기 때문에 박다을의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 퍼지는 것을 방해할 만한 것이 없었다. 당연히 김한모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녀의 말에 즉각 반응했다.

    "뭐라고? 씨발? 이런 썅... ... 지금 나한테 한 소리... ..."

김한모가 박다을의 욕설에 거친 어조로 바로 대거리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 안의 조명이 몇 번 깜빡거렸다. 김한모는 터져나오던 말을 멈추고 천정을 바라보았다.




* 부서 내에서 비밀리에 내연 관계였다가 (안좋게) 헤어진 남녀가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는 상황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재난 스토리로 풀어내면 재미있지 않을까.

* 사진은 MBC 드라마(제목은 '그녀는 예뻤다'라고 한다)의 한 장면. 검색하니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30분,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