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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Jul 30. 2016

쫄깃 ! 상큼 ! MSG .. ?

대만 여행 4일 차: 치싱탄, 쩡지마수 찹쌀떡, 핫스타 지파이


루쉬 트레일을 나와 다시 택시를 타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흔들다리.

오호라, 여기가 바로 꽃보다 할배에 나와서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협곡 위의 흔들다리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다리 위로 내디뎠다.


흔들 흔들 흔들... 흔들 흔들 흔들... 으으으...



... 끝.

ㅡ.ㅡ;;


아니, 뭐, 더 이상 아무것도 없음 !! ㅡ,.ㅡ 그냥 높은 협곡 위의 흔들다리임 !!

다리 밑이 꽤나 깊긴 하지만, 워낙에 세상에는 높은 다리들이 많으니까 요 정도는 사뿐사뿐 지르밟아 주시었다. 그래도 뭐 어쨌든 꼬리뼈가 살짝 짜릿 ~ 할 정도로 높은 흔들다리이긴 하니까 기념사진 한 방씩은 박고 가야지.


비 때문에 우산을 들고 있어서, 우산 들고 다니는 토토로가 된 기분으로 우산 높이 들고 귀욥게 찍어보려고 했는데, 귀욥기는 커녕 욕 나오는 비루한 비주얼의 육신 만이 사진으로 남았다... 그래도 차마 지우지는 못했다. 저것도 추억인데... ㅠㅠ



30대 중반의 추태를 마무리짓고 다리에서 내려오니 이제 슬슬 타이루거를 벗어나야 할 시간이 되어, 들어왔던 타이루거 입구 쪽으로 택시를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갑자기 기사님이 이야기를 꺼내신다.


택시기사님: 양꼬치엔칭따오 족빵뭬야 ~ ^^* (이 근처에 또 가볼만한 곳이 있는데 어떠세요 ?)

Strider: 제 죽빵을 날리신다구요 ? @_@ 제가 뭘 잘못했나요 ?? @_@;;;

동행하신 남편님: ㅡ_ㅡ;; 그게 아니라 여기 나가다가 가볼만한 곳이 있다네요.

택시기사님: 따거 니 쒸팔러마 짜요 ~ ^^* (가는 데 얼마 안 걸리고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들렀다 가시죠 뭐.)

Strider: 아니... 절 언제 보셨다고 그렇게 심한 욕지거리를...

동행하신 남편님: ㅡ_ㅡ;; 그... 그게 아니라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거기 들렀다 가자고...


... 아 진짜... 나도 참 이거 좀 재밌게 써보겠다고 별 짓거리를 다 한다. ㅡ_ㅡ;;;

실제로는 동행하신 남편님과 택시기사님 두 분이서만 중국어로 칭따오칭따오 하셔서 뭔 얘기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ㅡ_ㅡ;;


그렇게 점잖게 아닥 ㅡ_ㅡ; 한 채 도달한 곳은 바로 타이루거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과 공예품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 있는 뿌루오완 (布洛灣, Buluowan, 포락만) 이었다.



타이루거에 살았던 원주민 '아따얄'족의 언어로 "메아리의 계곡"이라는 뜻이라는 이 곳 뿌루오완.

메아리의 계곡이라니, 호옹 ~ 뭔가 동화동화하게 상콤한 이름 ~


계곡 사이에 둥지처럼 들어앉은 뿌루오완에는 아따얄족을 비롯한 타이루거 원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전시와 공연, 영상물 관람 등이 가능. 그리고 박물관 바깥에는 마치 공원처럼 잔디밭과 벤치,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어서, 박물관을 관람한 후 간단한 기념품 쇼핑도 즐길 수 있고, 계곡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와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봄에 온 관광객이라면, 박물관 위쪽으로 올라가면 백합꽃이 가득하게 핀 들판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근방에 많은 대나무들을 활용하여 지은 원주민들의 집과 생활집기들을 둘러보면...

그냥 아무 느낌이 없다. 그냥 '이것은 아따얄족의 전통가옥입니다' 느낌.


물론 남자들에겐 정겹디 지겨운 반합이 걸려있는 나뭇가지가 있어서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역시 이 전시관을 즐기려면 타이루거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영상물을 상영하는 시간에 맞춰서 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영상물은 하루에 총 6번 - 9시 30분, 10시 30분, 11시 30분, 13시 30분, 14시 30분, 15시 30분 - 상영되므로, 시간이 맞는다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


우리 부부는 전시관을 잠깐 둘러본 후, 이제 타이루거를 벗어나 화롄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해변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치싱탄 (七星潭, 칠성담) 에 잠깐 들렀다.



치싱탄은 바닷물의 색깔이 시시때때로 바뀌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예전에 이 주변에 일곱 개의 작은 연못이 있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이쪽으로 오는 길에 있는 공군기지 때문에 없어졌단다. 그래서 이름도 칠성담, 일곱 개의 별 연못 ? 혹자는 북두칠성이 잘 보여서 그런다는 말도 있고...


일곱 개의 별 같은 연못이건, 북두칠성이 잘 보이는 해변이건, 메아리의 계곡 '뿌루오완'과 더불어 말캉말캉 로맨틱한 이름의 이 해변. 하지만 이 모 배우님께서 로맨틱으로 성공적을 노렸다면, 우리 부부는 이 로맨틱한 이름의 해변에서 아주 찰지게 외면받고 있었다.

타이루거를 나올 때쯤 굵어지기 시작한 빗줄기가 이제 아주 우리 부부를 본격 물에 빠진 베이비쥐 (쥐X끼의 아름다운 언어순화 ㅡ_ㅡ;) 만들 기세로 후려치기 시작했기 때문.


아뿔사, 마침 입고 온 옷도 그냥 면 재킷이네 ㅠㅠ 심지어 안에 솜이 후덕하게 들어있어 !!! 젖겠네 ~ 아주 그냥 흠뻑 젖겠어 ~


살인 미소를 광고주에게 팔아 고가의 아웃도어 재킷을 팬들에게 강매 ㅡ_ㅡ? 하는 현빈 씨와 이민호 군을 한낱 장사치로 매도하며 '방수 기능 따위, 언젠가 닳아빠질 옷에게는 사치'라고 외면한 나의 교만했던 지난 날들을 반성합니다.


타이완, 저 맘에 안 들죠? ㅠㅠ



그러나 아... 저렇게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는 치싱탄의 해변은 꼬리꼬리한 날씨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이런 자갈밭 해변은,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과는 역시 다른 느낌이다. 백사장이 사람을 흥분시키는 자극제라면, 자갈밭 해변은 뭔가 심쿵 ! 하면서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달까. 해변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멀리 보이는 가파른 절벽, 그리고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새파란 태평양...


... 이라며 작가적 허세를 떨 때가 아니다.

세찬 빗줄기가 나의 뺨때기를 점점 강하게 때려온다 ! ㅠㅠ '설마 비가 많이 오겠어'라며 반신반의하며 챙겨 온 휘어진 낡은 우산은 이미 거세지는 바람에 아이스께끼 ㅡ_ㅡ;; 당하듯 훌렁 뒤집어진 지 오래다.



결국 비바람 속에서 얼른 치싱탄 인증 남기고 택시로 대피.

매뉴얼 ㅡ_ㅡ? 에 따라 정해진 수순대로 황급히 셀카봉 투입 ! 마눌님 인증샷 !


치싱탄과의 짧았던 만남은 이렇게 끝... ㅠㅠ 안녕 치싱탄의 파란 바다야 ㅠㅠ

해변가에 무슨 가게도 있고 하던데, 혹시나 다음에 날씨 맑을 때 오게 되면 시원한 맥주에 대왕오징어튀김이라도 먹어볼까... 오징어튀김에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 정신 못 차린 나.


점점 다가오는 기차 시간, 우리는 화롄역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화롄까지 나왔으니 화롄의 명물을 안 먹어보고 가는 건 화롄에 대한 죄 아니겠어 ? 우리는 마지막으로 화롄 명물 찹쌀떡집인 '쩡지마수'로 향했다.

... 솔직히 죄는 아니다. 그저 방앗간 그냥 못 지나치는 것처럼, 맛집이라는데 안 가보면 뭔가 허전한 참새 본능일 뿐. ㅡ_ㅡ;;


참, 치싱탄은 화롄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으니, 택시기사님께 미리 '타이루거를 갔다가 치싱탄을 잠깐 들르고 싶다'라고 얘기해 놓으면 좋다.



어서옵셔 ! 음흉한 ㅡ_ㅡ;; 미소를 날리고 계신 사장님의 전신 풀샷이 반겨주는 이 곳.

택시를 타고 다시 30여분 정도 와서 화롄역 앞 광장에 있는 화롄 명물 찹쌀떡집 '쩡지마수'(曾記麻糬, 증기마서)에 들렀다.


화롄역에 처음 도착해서 나올 때는 약간 발견하기 어려운데, 화롄역으로 들어갈 때는 찾기 쉽다. 친절병 싱글 앨범 버전 ㅡ_ㅡ; 사진 한 장으로 간단 쩡지마수 위치 안내 !



지난 기차표 예매 안내처럼 질질대지 않고 한 장으로 끝내서 다행이다. ㅡ_ㅡ;; 하여간 이 쩡지마수 찹쌀떡 집의 저 대머리 주인아저씨는 길거리 행상으로 찹쌀떡 장사를 시작해서, 10년 만에 화롄 시내에 10개의 매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물경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와서 인터뷰까지 따갔다고 하는 전설의 떡집. 대만판 '아딸'이나 '봉구스 밥버거' 뭐 그런 건가? ㅡ_ㅡ;


근데 그 전설의 대만 맛집들이 어제 단수이에서 나에게 배신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때렸잖아 ? 아직 입 안에 다시다 or 미원 가루가 씹히는 듯한데, 대만 맛집에 쉽사리 마음을 열어줬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다가왔다. 달달하고 쫄깃한 찹쌀떡을 내 입 속에 넣고 음미하기 전까진 절대 안심할 수 없다.



찹쌀 반죽으로 무협영화를 찍고 계신 사장님이 벽 전체에 자랑스럽게 도배되어 있는 쩡지마수 찹쌀떡집은, 단팥 고명을 넣은 일반적인 찹쌀떡뿐만 아니라 완두콩, 과일, 고구마 등등 다양한 고명은 물론, 참깨 같은 겉면 토핑도 되어 있는 찹쌀떡, 아이스크림을 넣은 찹쌀 아이스, 그리고 과일맛이 나는 동그란 과자까지 정말 다양한 디저트 거리를 팔고 있었다.


달달이들의 등장에 Strider는 마치 헐크라도 된 마냥, 이성으로 애써 억누르고 있던 단 맛에 대한 본능을 일깨웠다. 캬오 !!! 당분이다 !!!


물론 잉여 칼로리는 피하지방에 마이너스 통장 ㅡ_ㅡ; 처럼 쌓여가겠지만, 축 늘어진 뱃살은 예로부터 역시 연륜과 인덕의 증거 아니겠어 ? 이 달콤쟁이들, 모두 뱃속에 넣어주겠어 !


마눌님: 뭘 얼마나 먹어대려고 ? 뱃살 늘어지는 건 어쩌려고 ?

Strider: 으르르르르릉... 캬오 !! 캬오 !! 슈가 !! 슈가 !! 슈가 !! 슈가보이 ~

마눌님: ..... ㅡ_ㅡ^^^


눈꺼풀을 까뒤집고 흰자위를 내보이며 단내를 찾아 이리저리 난동을 부리는 Strider를 막기 위해, 현명하신 우리 마눌님은 일반 찹쌀떡 2개와 미니 찹쌀떡 몇 봉지를 후딱 결재한 후 Strider를 끌고 나왔다. ㅡ_ㅡ;


이 날, 눈 앞의 찹쌀떡을 게걸스레 해치우느라 사진을 미처 남기지 못한 나는 진정 식욕의 노예. 이건 나의 비루한 문필로 쩡지마수 찹쌀떡의 맛을 표현해야 하는 궁극의 도전이로구나... ㅠㅠ



자, 먹을 때 찍은 사진이 없으니 일단 쩡지마수 찹쌀떡 간만 좀 보시라고 집에 사가지고 온 미니 찹쌀떡 사진으로 대신한다... ㅡ_ㅡ;; 여심을 강탈하는 저 파스텔심쿵한 색감을 보라. 다름 아닌 식용색소 ㅡ_ㅡ; 의 힘이다.


쩡지마수의 찹쌀떡은 우리나라 모찌떡보다 떡 부분이 좀 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이빨에 덜 달라붙는다고 해야할까 ?


땅콩맛(花生)과 단팥맛(紅豆) 두 가지를 먹어보았는데, 땅콩맛의 경우엔, 땅콩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그 땅콩엿 가루가 고명으로 들어간다. 역시 달콤하고 맛있는데, 한 입 베어 물면 땅콩엿 가루가 산사태 나듯 우수수 떨어지니 주의 !

단팥맛의 경우, 그냥 우리나라에서 먹던 그 단팥모찌떡이다. 물론 안의 고명은 팥 껍질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좋은 고명이다.


기념으로 사 온 건 위의 사진에 있는 미니 찹쌀떡인데, 미니 찹쌀떡은 굉장히 다양한 맛이 있다. 그중 저 사진에 있는 알록달록한 것이 바로 과일맛 찹쌀떡 ! (水果)



과일맛 찹쌀떡 안에는 매실맛, 파인애플맛, 딸기맛 세 가지 종류의 찹쌀떡이 다 합쳐서 14 ~ 15개가 들어있고 약간의 과일향이 난다. 한 봉지에 107 NTD (한화 4,000원)으로, 회사 사람들에게 선물 대신 돌리기 좋은 부담 없는 가격이다. ㅡ_ㅡ;;


그리고 쩡지마수에서 큰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집이 있는데, 이 집에서는 오른쪽 사진의 고구마 칩을 구입했다.

이건 설탕에 살짝 절인 고구마편을 기름에 튀겨낸 바삭바삭한 과자인데, 정말 달달하다. 한 입 먹으면 당신은 바로 슈가보이. ㅡ_ㅡ;;

당 떨어져서 우울해지면 한 움큼 집어서 입에 털어 넣기 좋다.



[ 화롄 쩡지마수 찹쌀떡집 ]

맛: ★★★★☆

가격: ★★★☆☆

양: ★★★☆☆


- 땅콩 고명 찹쌀떡 1EA 15 NTD (한화 550원), 단팥 고명 찹쌀떡 1EA 14 NTD (한화 520원)

- 과일맛 미니찹쌀떡 한 봉지 107 NTD (한화 4,000원)

- 쩡지마수 건너편 가게의 고구마칩 한 봉지 120 NTD (한화 4,400원)

- 몇몇 찹쌀떡이나 과자는 시식을 할 수 있게 내놓았으니, 최대한 폭풍흡입을 하자. ㅡ_ㅡ;  주인아저씨가 눈치를 주시면 '데헷 ! 니혼진이노 바까데스네 ! 나가사끼우동 반자이 ~' 하며 일본인인 척 멋쩍게 웃자.



씐나 ~ 씐나 ~ 두 떡집을 오가면서 열심히 처묵대는 동안, 어느새 해는 지고 날은 어두워졌다. 길 건너편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산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달달한 찹쌀떡을 곁들이니, 별다방 콩다방에서 비싼 커피에 시폰 케이크 떠먹는 된장남 된장녀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오늘 하루, 타이루거에서는 맑은 공기와 우거진 녹음으로 한껏 힐링. 화롄역 앞에서 산 군것질 거리들은 모두 스위트. 성공적.

우리 부부는 양손에 바리바리 얘네들을 싸가지고, 타이루거에서 받은 좋은 기운과 기분을 안은 채 다시 타이페이행 기차에 올랐다.


타이페이로 돌아가는 Tarko 285호 기차 안. 두 시간 여의 기차여행 동안, 우리 부부는 아래와 같은 논리적 고찰을 시도했다.


Strider: 허니. 우리가 비록 찹쌀떡을 몇 조각 먹긴 했지.

마눌님: '우리가'를 '내가', '몇 조각'을 '쓸어 담듯이'로 정정해 주길 바래.

Strider: 후후후.

마눌님: 거지가 가득 찬 뱃속에서는 도대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계실까 ?

Strider: 아니 뭐... 근데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야 그치 ?

마눌님: '한국사람'을 '나는'으로 정정해 주길 바래.

Strider: 음... 그리고 우리가 내일 지우펀으로 가면 타이베이에서 뭔가 먹을 시간은 전혀 없을 거야 그치 ?

마눌님: 그리고 먹을 거는 지우펀에도 있을 거야 그치 ?

Strider: ..... 인터넷에 떠도는 무적 철벽녀의 이야기는 허니의 이야기인가봉가.

마눌님: ..... 뭐가 먹고 싶은 건데.

Strider: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우리 부부가 기차에서 내려 Strider의 음흉한 웃음과 함께 향한 곳은 다시 시먼딩.


이제 내일은 예류, 진과스를 거쳐 지우펀에서 하룻밤을 묵는 일정이기 때문에 더 이상 타이베이에서 뭔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작은 마을인 예류나 지우펀에는 먹거리가 마땅치 않을 테니까, 오늘 밤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수많은 식당이 몰려있는 시먼딩은 바로 마지막 만찬 최적의 장소.


이제 대만에 온 지 4일째, 슬슬 한국인 유전자가 김치를 갈망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맨 처음에 수많은 블로거가 '김치를 무제한 먹을 수 있어요 !!'라며 흥분하였던 '천외천' 훠궈집을 찾아갔었다.


그러나... 천외천 훠궈집은 시먼딩 역에서 오지게 멀뿐만 아니라, 섣달 그믐날 동네 목욕탕 ㅡ_ㅡ;; 마냥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고 있었다. 참고로 음식도 딱히 신선해 보이지도 않았다. 조명이 어두워서 음식 때깔도 흐리멍텅해보이면서, 시장통처럼 사람이 많다 보니 음식 리필도 많이 늦었고...


그래서 찾아가느라 한 번 지치고, 대기하느라 한 번 더 지치고, 음식 퀄리티와 서비스가 마무으리로 진을 빼는 천외천은 그냥 패스 !!


결국 우리 부부는 늦은 밤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은 시먼딩을 한참 헤매다가, 시먼딩 한복판에 있는 '와타미'라는 일식집에 들어갔다.



내리는 빗속을 헤매고 헤매다가 겨우 찾아 들어간 일식집 와타미. 결국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만찬이, 대만식도 한식도 아닌 일식집이 될 줄이야. ㅠㅠ

이때 시간이 이미 저녁 10시. 우리 부부가 타이베이에 도착한 것이 8시 30분경이었으니, 한 시간 반 동안 식당을 찾아 헤매고 헤매다가 들어간 곳이 이 곳이다.


한국에서도 맨날 갈 수 있는, '점심에 뭐 먹지 ?' 하고 고민 고민하다가 결국 가게 되는 회사 옆 돈가스집 같은 ㅡ_ㅡ;; 이 곳을 가기 위해 한 시간 반을 허비하다니. 이번 여행 우리 부부는 밥집 찾아 헤매는데 너무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


하여간 한 시간 반이나 돌아다니느라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우리 부부는, 가자마자 앉아서 식당 인테리어 이딴 거 찍을 새도 없이 그냥 메뉴판에 있는 것들 중 왠지 당기는 메뉴들을, 가격 생각 않고 그냥 훅훅 찍어서 다 시켜버렸다. 한국에서도 안 하던 돈ㅈㄹ을 대만의 일식집에서 하다니...



위의 사진은 이 날 시킨 메뉴.

여기에 비 오는 선선한 날 몸을 따땃하게 데워줄 시원한 바지락탕과, 캘리포니아롤이 덜 나와있는 테이블이다.


하지만 다 떠나서 이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테이블의 좌중간에서 비록 작은 접시지만 어마무시한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는 김치...


이게 얼마 만에 만나는 고운 빛깔인고. 하얀 배추잎 위에 영롱히 빛나고 있는 붉은 보석 같은 고춧가루와, 코 끝을 향기롭게 감싸는 발효의 향기... 김치 종지에서 직사광선급 광채가 뿜어져 나온 것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던 것인가. ㅡ_ㅡ;; 하지만 계산서에 김치가 두 번 계산된 것을 보니 마눌님도 김치의 광채가 싫지만은 않았나 보다.


아아... 드디어 한 조각 입에 넣은 김치.

매끈하게 목으로 넘어간 아삭한 배추, 너란 녀석.


상콤하고 매콤한 김치즙 ㅡ_ㅡ? 은 엊그제부터 우리 부부의 뱃속을 괴롭히던 기름진 튀김과 MSG의 축제에 종지부를 찍으며 우리 부부의 위장을 한국인의 것으로 돌려놓았다. 아니, 누가 김치에다 꿀을 탔나 ! 왜케 달콤하냐. ㅠㅠ


마눌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치에 자아를 도난당한 Strider는 김치를 한 입 베어 물자 광대가 승천한 채 이렇게 웃었다고 한다.


"으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 으흐흐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 으흐흐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헣 !!!"


물론, 다른 메뉴들의 맛도 딱히 나쁘지 않았음. 아니 모 배고파 죽겠는데, 시장이 깡패... 아니 반찬이니까.



[ 시먼딩 와타미 ]

맛: ★★★☆☆

가격: ★★★★☆

양: ★★★☆☆


- 메인 메뉴: 불고기 덮밥 / 캘리포니아 롤 190 NTD (한화 7,000원), 바지락탕 150 NTD (한화 5,550원), 시저 샐러드 반 접시 130 NTD (한화 4,800원)

- 김치 80 NTD (한화 2,900원), 된장국 30 NTD (한화 1,100원)

- 착하게도 김치에다가 기무치라고 안 쓰고 '한국 김치'라고 쓰고 영어로 Kimchee라고 써놨다. 이런 귀요미들. 이것만으로도 김치를 두 그릇 시켜먹어 줄 이유가 된다... 는 건 오바질. ㅡ_ㅡ; 그냥 속이 니글니글니글니글 할 때 먹어주면 딱 좋을 김치 맛이다. 그냥 배추절임 아니고 꽤 본토 맛을 낸 김치임.

- 와타미 위치는 아래와 같다.


실컷 김치질 ㅡ_ㅡ; 을 마치고 나와서 이제 숙소로 돌아 갈라치니, 뭔가 잊은 듯 찝찝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때 혜성처럼 눈 앞에 나타난 파아란 그 간판 '핫스타 지파이'...


그래, 대만에 오기 전부터 그 광대한 사이즈와 노오란 튀김옷에 나의 먹심 ㅡ_ㅡ; 을 강탈해 간 그 이름,

치킨 한 마리 분량의 통살에 바삭한 튀김옷을 입혀 통째로 튀겨낸 대만 치느님 '지파이' (豪大大雞排, 호대대계배). 내일이면 타이베이를 떠나야 하는 지금까지, 나는 왜 저 녀석을 먹지 않고 있었던 것인가.

뭔가 핫도그에서 빵만 발라먹으며 제일 마지막까지 소시지를 아끼고 아껴놨다가 한 입에 소시지를 입 속에 털어 넣는 그런 느낌인데 ? ㅋㅋㅋ


'지파이'라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고, 이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다양한 나라에까지 지점을 낸 바로 그 '핫스타 지파이'에서, 우리 부부는 타이베이의 마지막 먹방을 찍기로 했다.



이미 뱃속엔 김치의 세례를 받아 폭식한 수많은 음식들이 가득 차 있었지만 대만 스트리트 푸드의 최강자 '핫스타 지파이'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릴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미 들어찬 음식들을 한쪽으로 잘 밀어 넣어서 뱃속에 추가 공간을 만들어 낼 자신이 있었다.


지파이를 먹지 않고 어찌 대만을 다녀왔다 할 수 있으리오 !!

비록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핫스타 지파이 앞에는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기다리며 짹짹대는 아기새마냥 ㅡ_ㅡ;; 수많은 사람들이 입맛을 다시며 지파이가 튀김통에서 튀어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 나도 이제 그 아기새 중 한 마리다 !!

짹짹 !!



계산대 앞에 가서 메뉴판을 가리키며 주문을 마친 후 돈을 내고 나면, 뒤에 있는 튀김통에서 어마무시한 속도로 척척 닭을 튀겨내기 시작한다. 뼈가 없는 거의 닭 한 마리 분량의 살코기만 가지고 튀김옷을 입혀 통째로 튀겨내는 어마무시한 방식 !


우리나라 동대문이 '닭 한 마리 칼국수'로 유명하다면, 여기 시먼딩은 '닭 한 마리 튀김'이랄까. ㅡ_ㅡ;; 자, 그리고... 튀김옷 위에는 어김없이 붉은 가루, 노란 가루, 하얀 가루, 3종 세트가 거침없이 아낌없이 투하된다. 풀어서 쓰자면 '다시다' + '감치미' + '미원' MSG 3종 세트.


여러분의 미각을 행복하게 마비시킬 궁극의 비기이자 대만 사람들의 넉넉한 조미료 인심이랄까... 뭐 그런 거다. ㅡ_ㅡ; 스트리트 푸드에게 너무 많은 걸 따지지 말자.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핫스타 지파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주문을 마치면 번호표를 준다. 단, 문제는 번호를 부를 때 중국어로 부른다는 것. ㅡ_ㅡ;; 중국어를 잘 모를 경우 아래와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니 조심하자.


점원: 족빵뭬야 ! (369번 !)

Strider: (뭐... 뭐지... 내 번호인가...) ... 저... 여... 여기 번호표...

점원: (힐끗 보더니) 꺼쥐라야 ~ 꺼쥐라야 ~ ! (아직 아니에요 ~ 좀 이따 와요 ~)

Strider: 아... 아니면 아닌 거지... 그렇다고 꺼지랄 것 까진 없잖아요 ! ㅠㅠ

점원: 군시뢍 군시뢍 시부리지말라이야 ~ (아직 한참 많이 남았으니 기다리세요 ~)

Strider: 흑 !! 중국어 무서워... ㅠㅠㅠㅠㅠㅠ


실제로는 이렇게까지 구석에 몰리진 않는다... ㅡ_ㅡ;; 좀 듣다 보면 대략 어떤 번호를 부르는 건지 감이 오니까 귀를 쫑긋해서 잘 들어보자. 이얼산쓰 알잖아 ??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핫스타 지파이...

저 어마무시한 사이즈가 보이는가... 자신 있게 가게 이름에다가 클 대(大)자를 두 개나 넣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갓 튀겨서 나온 따뜻함과 콧속으로 살살 빨려 들어오는 질펀한 기름 냄새... 크, 폭풍흡입을 부르는 너, 핫스타 지파이 !!!


Strider의 뱃속엔 이미 지파이를 위한 공간이 자연스레 마련되었다. 이런 데까지 자율신경이 관여하고 있을 줄이야... ㅡ.ㅡ;;;


자, 한 입 양껏 깨물어볼까 !


으하하하하하하하핫 !

으아앙 ~


바삭 !

.

..

...

.... 으으음 ~ 입 안에 퍼지는 이 익숙하고도 친숙하면서도... 고향에서 만난 것 같은 이 감칠맛은...

.... 어김없이 짠 조미료 맛이로구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입 안에 휘몰아치는 염화나트륨의 폭풍 !!!


어제 대왕오징어튀김이 폭풍 MSG로 눈 앞에 다시다 염전을 펼쳐주더니, 이번엔 마지막까지 믿고 믿었던 지파이마저 짜다 !!! 대만은 주요 특산품이 소금과 조미료라도 되는 거냐!!!


캬아아아아아아아악 !!!

지파이를 영접하기 전,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ㅡ_ㅡ 가득 찬 음식물을 가르고 새로운 저장공간;;이 생겨났던 Strider의 위장 속은 지파이의 진입과 함께 다시 강제 폐쇄.


대만 마지막 먹방 망했어 ㅠㅠㅠㅠㅠ


마치 대만 치느님인 척 메소드 연기를 펼친 지파이 녀석 !

피해갈 수 없는 주홍글씨 같은 Strider의 별점 낙인을 너의 튀김옷에 박아주마 !!! 받아라 !!!



[ 시먼딩 핫스타 지파이 ] 

맛: ★★☆☆☆

가격: ★★★★★

양: ★★★★★


- 지파이 60 NTD (한화 2,200원)

- 지파이를 손에 든 당신에겐 맥주의 축복이 필요하다. 다행히 대만 사람들의 발명품 중 단연 10위 안에 들 만한 과일맥주가 편의점에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 계산할 때 아마 뭐라 뭐라 물어볼 건데, '매운 가루 뿌려줄까 ?'라는 뜻이니까 지파이를 삼단 짠맛 ㅡ_ㅡ; 으로 즐기고 싶으면 'OK'라고 외치자.



하아... 김치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어쩌다 최고의 기대주 지파이가 자살골을 넣는 이런 비극적 상황이...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대차게 인공위성 슛을 쏘아 올린 축구선수를 바라보는 감독의 심정이 이러할까.


산산이 부서진 나의 사랑 나의 치느님 나의 지파이...


우리 부부는 지파이를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다 먹지 못하고 ㅠㅠㅠㅠㅠㅠ 이후의 상세한 설명은 너무나 잔인하고 슬퍼서 생략한다.

(그... 그냥 반쯤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음 ㅠㅠ 한국에선 절대 음식 안 남기고 싹싹 긁어먹는 나에게 이런 치명적 오점을 남기다니 ㅠㅠ 지파이 놈...)


하지만 이렇게 비록 지파이한테 강렬하게 배신의 싸다구를 맞았을지언정, 오늘 대만 여행 4일 차는 타이루거에서부터 김치까지 비교적 만족스러운 시간들로 가득 채웠다. 뭐, 여행의 모든 순간이 항상 아름답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수만은 없는 거니까 ~


우리 부부는 이제 내일 아침, 대만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예류' - '진과스' - '지우펀' 1박 2일 일정을 준비하기 위해 긴긴 하루를 마무리하고 숙소로 복귀했다.




12편 예고 


본격 빗 속에서 쫄딱 젖는 우비 남매... 아니 우비 부부 이야기.


예류의 바닷바람을 헤치고 여왕 머리를 도촬 시도 !

진과스의 삼엄한 경비를 헤치고 220kg짜리 금괴 강탈 시도 !

지우펀 홍등가의 빽빽한 인파를 헤치고 최고의 야경 촬영 시도 !


대만 여행의 막바지를 향해 모든 어려움을 '어거지로' 헤치고 나아가는 30대 중반 식물 부부의 고군분투를 담은, 대만 여행 5일 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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